‘당신에게 XXX란 무엇입니까?’ – 왜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자꾸 의미를 물을까?

 

주말 동안에 예능 프로그램들을 좀 다운로드 받아서 봤다. 그동안 못 본 것들도 좀 봤다.(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더 땡긴다는..)

황금어장, 무한도전, 놀러와는 꼭 빼놓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들인데, ‘나는 가수다’까지 더해져서 한층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한국TV를 더 보는 것 같다는 자기 반성이 또 다시 밀려온다. 아무튼..

다른때와 달리 유독 이번에 볼 때는 귀에 거슬리는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독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정의(definition)’ 혹은 ‘의미(meaning)’ 을 묻는 질문을 사회자들이 게스트들에게 많이 던지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XXX란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XXX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한 분야의 대가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특히 그런 대가께서 인생의 말미에 접어드셔서,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보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에는 누구나 귀가 쫑긋 세워질 것이다. 예컨대 이번에 나온 무릎팍 도사의 임권택 감독같은 경우, 그런 분에게 과연 영화란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궁금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 이런 질문을 마구 던지다 보니 조금 식상하다는 생각도 들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궁색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도대체 이런 질문들은 왜 그토록 많이 던지는 것일까?

에 대해서 생각이 미쳤다.

나의 생각에는
1) 사람들은 뭔가에 대한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2) 사람들이 쉬운 답을 원한다.
3) 게스트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싶어한다. (이유야 어쨌거나..)
4) 사회자의 질문하는 기술이 부족하다.

나는 네가지 모두가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4)번의 경우에는 짜증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맥락과 의미도 없이 다짜고짜 가수에게 ‘가수란 뭐라고 생각하냐?’, 감독에게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이냐?’고 묻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정제된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 가끔 Larry King Live 를 예전에 보면서 래리 킹 아저씨가 게스트들에게 답을 이끌어내는 능력 – 이른바 밀땅(밀고 땅기기)를 잘 하면서 때로는 칭찬하고 때로는 밀어붙이기도 하는 것 -을 보고 감탄할 때가 있었다. 래리킹도 Yes/ No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 open ended question 을 많이 던지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방송이 끝날 때가 되었으니 던져볼까? 라고 하면서 ‘XXX란 너에게 뭐냐?’라는 질문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좀 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질문으로 정제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문맥’과 ‘상황’을 좀 더 고려해서 질문했으면 한다. 예컨대 가수에게 ‘가수란 무엇이냐?’ 라고 물어보는 것은 뜬금없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건을 보면서, 어떤 읽을 겪을 때, 혹은 ‘가수를 꿈꾸는 다른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으로 좀 더 정제하면 어떨까?

MBA 지원을 하면서 에세이를 쓰게 되는데, 가장 재미있었던 질문은 역시 Stanford의 ‘What matters most to you and why?’라는 질문이었다.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왜 그렇냐? 라는 질문은 MBA 를 지원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그냥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많은 대화와 상호 interaction 의 여지를 둘 수도 있다. MBA 지원이라는 맥락에서 이처럼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은 없었던것 같다.

이쯤 생각해 보니, 이런 정제된 질문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나 하는게 낫겠다. 그냥주말 예능을 보면서 해 본 잡생각이었다. 혹시 다른 답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좀 알려주시길 바란다.

CD, Hulu, Netflix 그리고 가수들의 수익에 대한 나의 생각

 

3월 8일에 미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인 R.E.M 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 Amazon에서 pre-order를 해더니 오늘 바로 도착했다. 그리고 내가 Keith Jarrett 다음으로 좋아하는 Brad Mehldau 의 라이브 독주 앨범도 나와서 함께 구매했다.

 

나에게는 새로운 CD가 나왔을때마다 꼭 사는 그런 아티스트들이 있는데, REM, Brad Mehldau, Keith Jarrett 등이 그런 아티스트들인 것이다. 이렇게 음악을 들어보지도 않고 나올때마다 꼬박꼬박 사는 경우에는 저작권이라기보다는 그들에 대한 Respect측면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CD 를 사는 행위는 나를 Old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혹시 누군가가 나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과거 어디선가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MP3를 다운받거나 iTunes에서 음악을 사서 듣는 경우가 많고, 나도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한다.

 

그러다가 어제 나의 FB에서 박정현이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서 부른 ‘꿈에’에 대해서 링크를 건 것에 대해서 Lea누님께서 따끔한 충고를 주셨다. 그래서 저작권이나 가수들의 수익에 대한 몇가지 생각을 정리해본다.

 

요즘 미국에 살면서는 hulu.com도 이용하고, Netflix.com 도 이용하다보니, 미국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TV 프로그램도 돈을 내고 보는 경우가 많다.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보니 그냥 사이트에서 스트리밍으로 보는데, 그런 경우도 그냥 돈을 내고 본다. 무료 방송을 찾느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고, Hulu와  Netflix의 스트리밍에 만족하기 때문에, 한달에 $10 ~$15 정도는 기꺼이 낸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방송들은 돈을 안내고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내가 이용하는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다운로드를 받으면, 어떤 경우는 저작권이 걸려 있는 파일이라서 500원 혹은 700원을 내라고 나오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 생각해보건대 저작권에 대한 나의 행동에는 일관성이 없는 것 같았다. 저작권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피부로 와 닿지 않다보니, 그냥 편한대로 행동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작권료를 내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내야 하는 경우가 오면 대부분 기꺼이 낸다. 나에게는 그렇게 큰 돈도 아니고, 그런 돈을 피하려고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이 오히려 아까우므로. 그렇다고 공짜로 다운받는 곳을 발견했을때의 기쁨이 엄청 큰 것도 아니고…

 

하지만 결국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그러하고,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공짜 다운로드를 꼭 찾아헤매서라기 보다는 그냥 있으니까 다운받아서 보고 듣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와이프랑 마지막으로 간 콘서트가 박정현 콘서트였다. 그런 공연을 보는 것은 삶의 즐거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수들중에서 적자를 내면서 공연한다는 사람들이 간혹있다. 이승환, 김장훈 등 그나마 공연 정말 잘하고 볼만하다고 하는 가수들이 그런 이야기할 때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아티스트가 ‘자본주의’적인 면을 보이는 것이 순수 예술혼에 반대되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걸까? 잘 모르겠으나, 마케터로서 그리고 미래의 경영인으로서 나는 그들이 그런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런 훌륭한 가수들이 공연 많이해서 돈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CD나 MP3로 샘플링을 하고, 정말 멋진 무대를 보여줘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면, 더 많은 가수들이 더 좋은 공연 하려고 경쟁하고 노력하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마케터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First Trial을 해봐야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알 수 있는 경우, 그리고 그 Trial의 기회가 너무 쉽게 많이 널려 있는 경우에는 결국 돈은 Repeat에서 벌게 되는 것이지 First Trial에서 버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돈을 벌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질 좋은 제품의Trial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서 repeat을 유도하는 쪽으로, 그리고 Down-scale에서 자꾸만 소비자들을 up-scale로 trade-up시키는 것이 고객의lifetime value 를 최대한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MP3가 down scale이었다면, 콘서트가 up-scale이고, CD가 Trial generation이었다면, concert가 repeat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 시장은 너무 작아서, 너가 생각하는 것 처럼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기 어렵고, 또 다양한 공연 시장이 생겨나기 어려우니, TV에 나와야 돈을 벌고, 극소수의 아티스트만 살아남을꺼야’ 라고 누군가 반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숫자만이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럴 것 같은 느낌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왠지 이제는 그렇지 않은 다양한 음악 장르와 segment 도 슬슬 보이는 것 같으므로…

 

피죤에게 박수를

 

예전에 와이프와 함께 마트에 가서 와이프가 브랜드 매니저로 있는 샴푸 브랜드를 하나 산 적이 있었다. 와이프가 회사에서 샘플 하나쯤 가져다 줄 수도 있었지만, 그냥 소비자로서 하나 사고 싶었다. 그래서 매대에 가서 샴푸를 하나 집어다가 카트에 담았더니 와이프가 깜짝 놀랐다.

프로모션 팩으로 샴푸+샴푸+컨디셔너 같은 조합을 거의 같은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싱글팩은 거의 안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보고 프로모션 팩을 사라고 살짝 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많이 안쓸꺼라면서 그냥 하나만 샀다. 와이프도 마케터이지만, 막상 매대 앞에 서니까 소비자 입장으로 변하는 모양이었다.

매장에 있는 언니들과 잘 네고쳐서 하나라도 더 받아내려는 우리의 알뜰하고 스마트한 우리나라 소비자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너무 똑똑해서 절대로 회사들에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 것 같다. 알뜰한 와이프를 둬서 좋긴 했지만, 프로모션 전쟁으로 매일매일 밤 늦게까지 고생하는 와이프 스스로도 막상 매대 앞에선 프로모션 팩을 사라고 하니,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구나… 싶었다.

아래 링크된 기사는 피죤이 1+1 행사를 그만두고 나서 시장점유율이 엄청나게 하락했다는 글이다.

’1+1 패키지’ 없앤지 한달만에…피죤, 30년 아성 ‘휘청

워낙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1+1 정도 되어야 싸게 샀다고 느낀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미국에서 온 매니저가 한명 있었는데, 그는 이런 한국을 보면서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사실 이런 현상에는 이런 관행을 부추긴 유통업체의 탓이 크지만, 그것을 모두 맞춰줘 온 제조업체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피죤이 1+1 행사를 그만 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피죤은 국내 생활용품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죤은 그나마 브랜드 가치가 큰 국내 브랜드이다. (피죤 브랜드 가치 1위 기사) 비록 피죤의 이번 결정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자발적인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터로서는 시장을 정화하려는 피죤의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을 그만두자마자 50% 넘던 시장 점유율이 10%대로 추락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얼마나 가격에 민감하며,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얼마나 낮은지 잘 알 수 있다. 어떻게보면 굉장히 스마트한 소비자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섬유유연제를 ml당 가격으로 비교하면서 사는 소비자는 우리나라 소비자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경쟁에서 이기거나, 아주 다른 방법으로 포지셔닝하거나 둘중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1+1 행사도 어떻게 보면 처음에는 차별화이고, 말 그대로 ‘특별기획’, ‘행사’였을 수도 있지만, 사실 말이 ‘기획팩’ 이고 ‘행사’ 이지, 위에서 말한대로 우리나라는 1년 내내 행사요 특별기획이다. 결국에 이런 1+1 관행의 폐해이자 기회를 보여준 것이 바로 이번 사건에 대한 이마트 등 일부 업체의 반응이다. 그들은 피죤의 새로운 제품을 더 공급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1+1 상품이 아니면 팔지 않겠다는 생각인듯 하다. 아니면 제조업체 길들이기일 수도 있고, 혹은 그 뒤에 더 경제관념없는 이명박 정부의 물가잡기 압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별 차이 없는 섬유유연제, 피죤이나 샤프란이나 똑같으니 제일 싼거 사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런 관행 때문에 많은 제조업체들이 제살깎아먹기 경쟁만 하게 되고, 결국은 위에 링크된 기사에서 말하는 것 처럼 우리나라에 생활용품 제조업체는 LG와 아모레퍼시픽 정도만 남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상황이 폐해이자 기회라고 한 이유는, 바로 이런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될 수록,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유통업체들과 제조업체들에게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이제는 대동소이한 제품의 가격 경쟁이 아니라, 뭔가 다르고 혁신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제품들이 등장할 때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시장이 좀 더 크고, 중소 기업의 창업문화가 발달되었고, 소비자가 좀 더 다양했더라면 진작에 좀 더 다양한 제품과 유통채널을 볼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모든 사람들이 마트가서 쇼핑하고 똑같은 제품으로 빨래하는 것 보다는 좀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회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피죤은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새로운 제품도 채널도 필요 없으니, 그냥 이마트에서 샤프란을 제일 싼 값에 사서 쓰는 것에 더 행복해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The Whole Foods Market – 당장 한국에서 시작하고 싶은 비즈니스

 

지난 8월 에반스톤에 처음 도착했을 때, 집에서 한블록 떨어져있는 홀푸드(The Whole Foods Market)에 가보고 감동했다. 이곳이야말로 내가 그토 록애타게 찾던 리테일 스토어였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2년간의 MBA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가지고 들어가고 싶은 사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않고 홀푸드를 꼽을 것 같다.

미국의 리테일 산업은 굉장히 다양하게 나눠져 있다. Segmentation이 잘 되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리테일이라고 해 봤자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이렇게 세군데면 50% 이상, 그리고 7 Eleven/FamilayMart/GS25 등 편의점까지 하면 대략 70~80%가 커버되겠지만, 미국은 우리나라의 대형마트에 해당하는 Walmart, Target같은 곳 뿐 아니라 Up scale, down scale, CVS, Wholesaler(Costco같은 창고형), 그리고 문방구, 전자제품, DIY용품 등등 카테고리 별로도 다양한 리테일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곳이자, 앞으로 한국에서도 가장 적용가능한 모델이 바로 홀푸드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1) 한국에서 성장하는 유기농 및 건강식품 시장, 2) 대형할인마트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커지는 소비자 트랜드 로 볼 수 있다. 한국 시장에서도 조금 비싼 돈을 주더라도 유기농이나 지역 농가에서 생산되는 신선식품에 대한 니즈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리고 대형마트에서 파는 몇개 안되는 SKU들과 그들의 품질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음도 사실이다. 그리고 아래 설명하는 홀푸드의 모델의 강점을 잘 살리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는 듯 하다.

홀푸드 모델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다.
1)지역 밀착형 – 동네 수퍼이면서도 어느정도의 규모의 경제 확보
2)사전 소비자/지역환경 조사 – 점포를 세우기 전에 그 지역의 소비수준 및 교육수준을 정확히 측정해 봄 (그래서 홀푸드가 있는 동네는 어느정도 잘 사는 동네라는 인식이 있음)
3)유기농/ 친환경 제품군 – 단순히 유기농 제품들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제품이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뭔가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
4)종업원 차별화 – Cashier에 있는 직원들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거나 대학에 다니고 있는 젊은 친구들인것 같고, 물건을 담아주는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많음 (이것 역시 지역의 장애인 고용이라는 문제를 고려한 듯). 하지만 물건 담아주고 카트 다시 제자리에 놓고 하는 등의 단순 업무를 하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다.
5)지역 사회에 대한 공헌 –가끔 계산할때 지역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1를 Donation하겠냐고 묻기도 한다. 그리고 신선식품은 인근 농장에서 재배한 것들을 파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우리나라의 대형 마트들이 SSM과 빚었던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대조적인.
6)식품/ 와인/ 샐러드 바 등, 차별화된 Retail Experience: 나도 홀푸드에서 가끔 반찬과 와인, 샐러드 등을 사는데, 음식들도 너무 맛있고, 이런 것들은 다른 매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특히 와인 셀렉션은 비용대비 맛이 좋은 것들 위주로 되어 있음.

아마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기존 비즈니스와 충돌 때문에 이 모델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매장 내에 조그맣게 자꾸 유기농 코너를 만드는 것인데, 이렇게 해서는 부족하다. CJ나 풀무원 같은 식품제조업체들이 하면 좋겠지만, 이들도 결국 대형 유통업체 눈치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쉽사리 유통업에 뛰어들지 못할 것이다. 홀푸드가 우리나라에 직접 진출할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홀푸드는 굉장히 느리게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델로서 지금 현재 미국/캐나다/영국에만 있는 정도이다. 따라서, 조만간 제4의 업체가 나와서 비슷한 모델로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 시작하기 전에 빨리 하고 싶긴 한데, 문제는 이런 리테일 비즈니스는 초기에 투자비용이 크다는 것. 내가 꼭 아니더라도 누군가 한국에서 시작해 주었으면 하는 비즈니스다.

한국 사람들이 부족한 능력 – “남을 이해하기”

 

(참고로 이 포스팅은 얼마전에 썼던, 분열된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의 후속편이다. 같은 클래스에 있는 한국 형님과 이야기하다가 영감을 받아서 쓴다.)

마케터로서 일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Consumer Understanding 이다. P&G에서는 항상 Consumer Is Boss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일했다. 나의 상사가 내 일의 컨텐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Target 이 결정한다는 ‘정신(Spirit)’은 그것이 100% 지켜졌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런 정신을 가지고 일하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인가? 라는 것이다.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는데, 정성적(Qualitative)인 방법과 정량적(Quantitative) 방법이다.

상대적으로 쉬운 정량적 방법을 먼저 생각해보자. 정량적 방법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survey), 관찰하거나 (observation) 아니면 그들이 남기고간 흔적인 데이터를 분석해 보는 것이다. (data analysis) 여기에는 몇 가지 질문이 남는데, 1)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2) 어떤 질문, 어떤 포인트를 볼 것인가?, 3)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그때그때의 문제점과 알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서 ‘잘’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정성적 방법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눈치를 본다는 것, 남에게 대우를 잘 해주는 것, 혹은 분위기를 맞춰 주는 것 등과는 다르다. 정말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사람이 하는, 혹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내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의 분열된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서였다. 서로 다른 이야기만 하면서 서로를 이해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우리나라의 교육으로 다소 엉뚱한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그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인데, 너무 기술적인(Technical) 문제와 국/영/수 중심의 지식(Knowledge), 그리고 자기 중심적 표현(Expression)과 발전(Development)만을 강조하다보니 우리들은 남을 이해하려는 여유조차 없이 자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잣대에 맞춰져서, 하나의 시험만을 위해서 줄세워지다보니, 다른 사람이 줄밖으로 나가서 다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게 자란 것이 아닐까? 슬프지만, 진실인것 같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으면 나는 교육의 Balance를 맞추고 싶다. 기술적인 것들(경영학, 공학, 언어)과 감성적인 것들(문학, 미술, 음악)을 골고루 가르치되, ‘나를 표현하는 것(Expression)’이 아니라 ‘남을 이해하는 것(Understanding)’에 초점을 맞추리라. 미술을 가르치려고 미술학원에 보내기보다 미술관에 데려가고, 음악을 가르치려고 피아노학원에 보내기보다 음악비평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리라. 경영학보다는 리더십과 팀웍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젊었을 때는 인문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몸을 움직이는 운동과 춤을 하라고 이르고 싶다.

이 글을 적어놓고 나서 보니, 나도 어렸을때 이렇게 살지 못했던 이유는 어릴때는 이런 것들의 중요성을 모르고 답답하게 느껴지기 때문인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해 봐야겠다. 어떻게 하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잘 전달하면서 그/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가 나의 숙제인것 같다.

참고로 얼마전부터 늘 아이를 낳으면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 학교에 대한 Ted Talk를 하나 첨부한다.

Zeitgeist를 생각하다. –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을 읽고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을 읽었다.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읽었고,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다른 리차드 도킨스 책처럼 재미있지는 않았다. 작년 12월 말경부터 읽기 시작했고, 3월이 되어서야 읽기를 마쳤으니, 거의 2개월에 걸쳐서 읽은 셈이다. 이기적 유전자같이 지적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기독교’라는 대상에 대해서 일방적인 비판만 하다보니, 조금 식상하기도 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반기독교적 책이라기보다는 인간 행동과 심리에 대해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 반면, 이 책은 관점이 불명확하게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게 비판에 치우쳐서 그런건 아닐까?

이 책은 유신론에 대해서, 그 중에서도 기독교와 유대교 및 이슬람교에 대해서 조목조목 비판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유일신 종교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면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이 책은, 사실 설득력이 있고, 과학적이며 논리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거듭)

도킨스라는 극단적인 무신론자의 얘기를 듣다보면, 확실히 나는 유신론자는 물론 아니지만, 무신론자도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즈음, 한국에서 기독교에 대한 논쟁(?)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오늘 아침, 이명박 대통령의 무릎꿇고 기도하는 사진이 온 인터넷을 도배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바로 Zeitgeist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었다.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해석조차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고, 우리의 윤리관과 종교관이라는 것도 진화하고 시대상과 여러 다른 요소에 영향을 받으므로, 너무 절대적 진리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도킨스는 이러한 경향이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일어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성경에 대한 해석과 윤리관도 시대상황에 따라서 계속 변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른 종교간의 상대성을 인정하기가 원론적으로 어려우면, 기독교 내부에서 시대에 따른 변화와 상대성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터 관점에서 본 MB의 관치물가 – 원가 이야기는 이제 그만.

 

MB정부의 ‘관치물가론’
요즘 한국에서 물가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는 것을 각종 뉴스를 통해서 본다. 물가를 잡기 위한 MB정부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MB정부의 접근법, 이른바 ‘관치물가’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특히 불만인 부분이 바로 공정위를 통한 물가 잡기와 원가 공개를 들먹이는 방법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 이명박 정부에서 자꾸만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제재를 들먹이는데, 이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공거위는 말 그대로 담합 등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지 전혀 물가를 잡기 위한 기관이 아니다. 정부 기관들의 역할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없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공무원들이야 말로 이명박 정부에서 마음을 잡아야할 가장 중요한 대상이 아닐까? 한국은행이나 공정거래 위원회에서 일하는 분들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불만들이 쌓여가는 것 같은데, 이런 점을 고려는 하고 있을까?

Price down 보다는 Value Up을..
마케터로서 가장 불만인 점은 바로 뻑하면 원가를 들먹이는 부분이다. 물가가 올라가므로 원가를 까보면 폭리를 취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 그 요지인데, 이것은 말이 안된다. 도대체 ‘폭리’ 라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얼마전에 소개한 윤석철 교수님의 생존 부등식에 대입시켜서 생각해 보자면, Value > Price > Cost 에서 ‘Price – Cost’ 를 관리하겠다는 것은 매우 반자본주의적 접근이 아닌가 생각된다. 경제학적으로 소비자잉여 (consumer surplus)라는 것은 소비자의 willingness to pay – price 의 합인데, willingness to pay 가 높은 소비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고, 기업들 Value – Price 부분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다양하고 부가가치가 많은 제품을 통해서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된다.

몇몇 생필품들이나 정유사들의 제품들에 얼마나 Value의 차이가 있을까? 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정부의 이러한 행동 자체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시그널이 엄청난 것 같다. 또 하나는 국민들이 이러한 ‘원가 까봐라’ 라는 자세에 대해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걱정이다. 원가라는 것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기밀이다. 이런 기밀을 수시로 정부에서 까보겠다고 하다니..… 이건 자본주의 사회인지 사회주의 사회인지 좀 의심이 되기도 한다.

가격으로 경쟁하게 하자니 자꾸만 대형 유통업체들이 제조업체들을 쪼아대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 같아서 진퇴양란인 듯도 하다. 나도 유통업체들의 쪼임을 당해보기는 했으나, 그래도 비교적 대형 제조사여서 버틸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영세 업체들은 아마도 큰 고민일 것이다.

이럴때일수록 유통업체들의 다변화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가 발전할 수록 Segment가 다양해지고, 경제가 어려워도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는 소비자들은 항상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그들이 다양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유통업체들이 다양한 사업을 추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들을 입안해보면 어떨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보고나면 건졌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가 있다. 바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괜찮았던 영화들에 우리는 그런 표현을 쓴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이 영화는 답답하다가 손발이 찌릿찌릿하다가 슬프게 끝난다.

이 영화에는 유명배우도 나오지 않는다. 서영희라는 배우가 그나마 가장 유명한 배우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서영희의 연기는 빛을 발하고, 다른 조연들의 연기도 탄탄히 뒷받침이 잘 되고 있다. 마파도의 호러 버전에 가까운 이 영화의 메시지는 아마도 현대인의 무관심과 개인주의가 아닐까?

영화의 대사에서도 나오는 ‘너는 너무 불친절해’ 라는 복남이의 대사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표현해 준다.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오마주인지 김복남의 살인 동기는 ‘태양’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지만, 심약하거나 피가 흥건한 영화를 싫어하시는 분들에겐 권하지 않고, 절대로 스테이크나 와인과 함께 보면 안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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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질낮은 무료뉴스보다 질높은 유료 뉴스를 보고 싶다.

 

이 글은 도저히 못참겠어서 쓰는 글이다. 포털에 올라오는 뉴스들은 질이 너무 낮아서 도저히 못 읽을 지경이다. 포털 뿐 아니다. 요즘은 대형 신문사들의 뉴스들도 그 언론사들의 질을 의심할만큼 엉망이다. 아마도 뉴스매체가 증가하고, 인터넷의 발달로 뉴스의 Quality 보다는 Timing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어서 질 낮은 뉴스가 대량생산 되어서 그런것 같다. 뉴스는 이제 새로운 소식을 전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형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클릭수를 늘리고, 트래픽을 더 끌고 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몇몇 블로거가 이런 행동을 한다면 클릭하는 사람들의 선택의 문제라고 이야기하겠지만, 대형 언론사마저 이렇다면 그들은 스스로 망하는 길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뉴스들의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대략 유형화를 해 보자면 몇가지로 요약된다.

1.선정성을 추구하다보니 제목과 내용이 아무 관련는 기사
2.뉴스(News; 새로운 소식)로서의 가치가 없는 추측과 상상 기사
3.관점 없는 기사

1. 선정성추구에 열올려서 제목과 내용이 아무 관련없는 기사
이런 기사들을 한마디로 낚시 기사라고 하는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기자들의 명성 (reputation)을 쌓는 방법을 마련하는 법 – 평점/별점 제도로서 기자들의 기사의 질을 평가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포털들에서 뉴스를 제공할 때, 제발 어떤 신문사의 어떤 기자가 쓰는지 표기하고, 그 옆에 그자의 별점을 꼭 넣었으면 한다. 기사에 대한 별점도 넣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2. 뉴스로서의 가치가 없는 추측/상상 기사
예전에 기자 친구로부터 현장에 가지 않고 TV로만 본 내용에 대해서 글을 쓰는 기자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기자가 현장취재 없이 글을 쓴다. TV보고 나서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에 대해서 글을 쓰는 연예부 기자는 그래도 이해가 간다고 치자 (이것도 꽤나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정치, 경제의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최소한의 사실 확인을 하던지, 아니면 전문가의 의견이라도 좀 들어보고 글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막 던지는 기사에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의 나래를 펴는 경우가 있음을 명심하자.

3. 관점 없는 기사
이 경우는 그래도 용납이 어느정도 된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 굴지의 언론사라면 자신들의 관점이라도 좀 제공하라는 것이 부탁이다. 다 읽고 나서 허무한 기사가 너무 많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 한쪽의 관점을 소개하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들이 존재하는지,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일이 가고 있는지 알려줘야 할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제발 신문사 사이트에서 뉴스를 볼때 뉴스 기사 자체를 가리는 광고는 띄우지 말자. 본분을 망각한 짓이다. 어느 선진국의 대형 신문사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을 본적 있는가? 한심한 행태다. 매경 사이트를 띄워놓고, 이것이 가장 한국에서 유력한 경제신문의 사이트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세계 모두가 이 사이트의 디자인만으로도 얼마나 경제 관념이 없는 사이트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이 글의 제목이 메시지다.
나는 질낮은 무료뉴스보다 질높은 유료 뉴스를 보고 싶다.

<참고>
경제신문에서 이런 기사가 나온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의 경제관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http://bit.ly/eqbTOf

Polarizing Korea

 

Polarizing 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양극화되다’ 라는 뜻에 가깝다. 나는 이 단어를 들을 때 마다, 온 지구상의 한 무리의 사람들은 북극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은 남극의 끝으로 몰리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요즘 한국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미국에서 뉴스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분야에서 그런 점을 느껴서 더욱 서글프다. 그 세가지 분야는 바로 정치, 종교, 경제이다.

정치이론적으로는 정당들이 조금 더 중립에 더 가까워지려고 서로 노력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서로 중립, 혹은 중도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사람들의 표를 더 많이 얻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모든 현안에 대해서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과연 정당정치라는 것이 필요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요즘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그녀가 어떤 정당 출신인가? 라는 것 보다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평가하려는 경향이 더 큰 것 같다. 리더십, 논리적 사고력, 경재에 대한 이해력, 추진력 등 초당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차라리 정당이 없이, 사람들의 캐릭터나 논리, 리더십, 추진력을 경쟁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보다는 오히려 정성적 접근과 정량적 접근, 혹은 장기적 접근과 단기적 접근, 이성적 접근과 감정적 접근, 환경친화적 접근과 경제 중심적 접근과 같이 보다 논리적, 이성적, 세계관적으로 질 높은 논쟁을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두번째 종교적 논쟁. 요즘은 사실 불교에 대한 비판보다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더 많은데, 그 비판에는 ‘일부 극단적 기독교에 대한’ 이라는 형용어가 반드시 붙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용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고 든다. 그것이 그들의 종교관에 어긋나는 모양이다. 최근 조용기 목사의 발언을 보면서, 눈물보다는 웃음이 나왔던 이유는 ‘정말 내가 이 사람과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게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경제적 관념이다. 얼마전 아는 형이 Facebook에 링크건 기사를 두고 경악을 한 적이 있다. 그 기사는 기업주들이 엄청난 배당이익을 챙겼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신문도 아닌 경제신문의 기사였던 이 기사의 논조를 보고 우리는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기업의 주주가 정당하게 모든 세금을 내고 경영진이 내린 결정에 따라서 받은 배당금이 ‘많다’ 라는 이유로 뭇매를 맞는 기사였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가 맞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이 들게 한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고,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사람들이 한 나라안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본분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 이해조차 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