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죤에게 박수를

 

예전에 와이프와 함께 마트에 가서 와이프가 브랜드 매니저로 있는 샴푸 브랜드를 하나 산 적이 있었다. 와이프가 회사에서 샘플 하나쯤 가져다 줄 수도 있었지만, 그냥 소비자로서 하나 사고 싶었다. 그래서 매대에 가서 샴푸를 하나 집어다가 카트에 담았더니 와이프가 깜짝 놀랐다.

프로모션 팩으로 샴푸+샴푸+컨디셔너 같은 조합을 거의 같은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싱글팩은 거의 안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보고 프로모션 팩을 사라고 살짝 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많이 안쓸꺼라면서 그냥 하나만 샀다. 와이프도 마케터이지만, 막상 매대 앞에 서니까 소비자 입장으로 변하는 모양이었다.

매장에 있는 언니들과 잘 네고쳐서 하나라도 더 받아내려는 우리의 알뜰하고 스마트한 우리나라 소비자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너무 똑똑해서 절대로 회사들에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 것 같다. 알뜰한 와이프를 둬서 좋긴 했지만, 프로모션 전쟁으로 매일매일 밤 늦게까지 고생하는 와이프 스스로도 막상 매대 앞에선 프로모션 팩을 사라고 하니,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구나… 싶었다.

아래 링크된 기사는 피죤이 1+1 행사를 그만두고 나서 시장점유율이 엄청나게 하락했다는 글이다.

’1+1 패키지’ 없앤지 한달만에…피죤, 30년 아성 ‘휘청

워낙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1+1 정도 되어야 싸게 샀다고 느낀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미국에서 온 매니저가 한명 있었는데, 그는 이런 한국을 보면서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사실 이런 현상에는 이런 관행을 부추긴 유통업체의 탓이 크지만, 그것을 모두 맞춰줘 온 제조업체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피죤이 1+1 행사를 그만 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피죤은 국내 생활용품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죤은 그나마 브랜드 가치가 큰 국내 브랜드이다. (피죤 브랜드 가치 1위 기사) 비록 피죤의 이번 결정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자발적인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터로서는 시장을 정화하려는 피죤의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을 그만두자마자 50% 넘던 시장 점유율이 10%대로 추락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얼마나 가격에 민감하며,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얼마나 낮은지 잘 알 수 있다. 어떻게보면 굉장히 스마트한 소비자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섬유유연제를 ml당 가격으로 비교하면서 사는 소비자는 우리나라 소비자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경쟁에서 이기거나, 아주 다른 방법으로 포지셔닝하거나 둘중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1+1 행사도 어떻게 보면 처음에는 차별화이고, 말 그대로 ‘특별기획’, ‘행사’였을 수도 있지만, 사실 말이 ‘기획팩’ 이고 ‘행사’ 이지, 위에서 말한대로 우리나라는 1년 내내 행사요 특별기획이다. 결국에 이런 1+1 관행의 폐해이자 기회를 보여준 것이 바로 이번 사건에 대한 이마트 등 일부 업체의 반응이다. 그들은 피죤의 새로운 제품을 더 공급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1+1 상품이 아니면 팔지 않겠다는 생각인듯 하다. 아니면 제조업체 길들이기일 수도 있고, 혹은 그 뒤에 더 경제관념없는 이명박 정부의 물가잡기 압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별 차이 없는 섬유유연제, 피죤이나 샤프란이나 똑같으니 제일 싼거 사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런 관행 때문에 많은 제조업체들이 제살깎아먹기 경쟁만 하게 되고, 결국은 위에 링크된 기사에서 말하는 것 처럼 우리나라에 생활용품 제조업체는 LG와 아모레퍼시픽 정도만 남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상황이 폐해이자 기회라고 한 이유는, 바로 이런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될 수록,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유통업체들과 제조업체들에게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이제는 대동소이한 제품의 가격 경쟁이 아니라, 뭔가 다르고 혁신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제품들이 등장할 때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시장이 좀 더 크고, 중소 기업의 창업문화가 발달되었고, 소비자가 좀 더 다양했더라면 진작에 좀 더 다양한 제품과 유통채널을 볼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모든 사람들이 마트가서 쇼핑하고 똑같은 제품으로 빨래하는 것 보다는 좀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회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피죤은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새로운 제품도 채널도 필요 없으니, 그냥 이마트에서 샤프란을 제일 싼 값에 사서 쓰는 것에 더 행복해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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