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서 켈로그에서의 3번째 학기가 끝났다. 켈로그는 쿼터제이므로 정확하게 1학년이 끝난셈이다. 오늘 있었던 Gad Allon교수의 operation 수업을 마지막으로 모든 수업이 끝났다.
집에 돌아오면서 든 생각은 세가지이다.
1. MBA 무용론의 불식
MBA는 1) 단순히 학벌을 따기 위한 방편이거나, 2) 커리어의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탈출구로 사용되거나, 아니면 3) 2년 간의 job searching 기간일 뿐 아무런 배움이 없다는 것이 MBA 무용론의 골자이다. 나 스스로도 학부를 경영학과를 나온 이유만으로 불과 얼마 전까지 ‘과연 내가 MBA에서 얼마나 많이 배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은 모두 불식되었다. 확실하게. 오히려 시간과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1년쯤 학교를 더 다녀야 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용한 지식을 많이 배우게 되었고, 앞으로 나의 커리어에 관련된 영감을 듬뿍 얻었다.
이번학기 내가 들었던 과목은 Technology Marketing, Research Methodology in Marketing, Operations, Business Law 이렇게 네 과목이다.
Tech Marketing 은 소비재 마케팅 출신에다가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 허우적거리던 나에게 확실히 보다 넓은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Tech Marketing과 내가 P&G에서 경험했던 전통적인 마케팅과의 가장 큰 차이점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도 Ecosystem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echnology 산업에서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전통산업과는 많이 다름을 느꼈다. 특히 혼자 잘한다고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구성하는 다양한 기업들이 한편을 먹고 열심히 경쟁과 협력을 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매니저들이 조율해 나가야 한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Research Methodology 과목은 주로 회귀분석(regression)을 사용한 마케팅 조사방법론 수업이라고 보면된다. clustering, factor analysis, conjoint analysis 등의 주요 조사 방법론을 배웠다. 솔직히, 그리고 부끄럽게도, 내가 이 수업에서 배우는 회귀분석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도 모르고 그 동안 어떻게 마케팅을 했지?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마케터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이라고 새삼 느낀다.
Business Law 과목은 미국의 상법, 그 중에서도 Corporation 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배웠다. Presser 교수는 corporation의 발명이야말로 미국이 전 세계 경제에게 선물한 가장 큰 공헌이며,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corporation 을 꼽았다. 그리고 그 corporation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와 문제들에 대해서 법적인 시각에서 배웠고, 교수는 이 수업이 앞으로 우리들이 경영 일선에서 일하는 동안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이 수업의 내용을 실무에 사용할지는 몰라도, 정신적으로 많은 inspiration을 주었던 수업임에 100% 확신한다.
Operation 과목을 가르친 Gad Allon 교수는 미국에서 가장 기대되는 40세 이하 교수 40명에 들었던 교수이다. 그의 수업은 구조화(structured) 되어 있다. 항상 컨설턴트들이 좋아하는 구조화나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같은 접근법이 강의에도 사용되면 좋을텐데…라고 생각했는데, 앨론 교수의 수업은 상대적으로 매우 체계적이어서 이런 면에서 쏙쏙 이해되는 수업이었다. 이 수업은 improvement, risk, trade-off 와 같은 생산관리에 있어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 하나씩 깊은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 수업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세 쿼터를 끝낸 지금에야 드는 이유는 Kellogg 의 학사일정이 처음 두 학기에는 대부분 core에 맞춰져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경영학과 학부를 나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많은 내용이 중복되는 것이 사실이라서, 사실 core 수업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빨리 elective들을 많이 들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MBA 의 효용을 항상 투자 내지는 학비(비용) 대비 분석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의 효용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이 주는 inspiration 과 knowledge는 단순히 몸값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꿈의 크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로 측정되어야 한다.
나의 꿈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바뀌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지금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지만, 허황된 꿈일지언정 자꾸만 큰 꿈을 꾸게 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MBA를 오기 전에는 꿈이 작아지더라도 구체화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재미있다.
2. 불안감의 극대화
문득 생각해보니,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은 내가 6살때 아차산에서 친구들과 길을 잃었을 때의 마음과 비슷했다.
한없이 불안했고, 한없이 막막했다.
이런 기분은 내 미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 스스로도 아무런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늘 이런 불안함과 막막함은 한동안의 집중력의 원천이 된다. 이런 불안함과 막막한 시간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어떤 한가지 일에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나 힘들게 찾은 일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성격상 그렇게 힘들게 찾을 일 조차도 오래 지나지 않아서 싫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지금의 방황들은 그 이전까지의 것들과 다른 면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이 나이에 이렇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도로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에반스톤의 한적한 삶을 즐기는 지금은 나에게 매우 아이러니한 휴가이다.
첫번째 생각도 그렇고, 두번째 생각도 그렇고… 아무튼 MBA라는 곳은 참 나에게 많은 아이러니를 안겨준다.
3. 후반전에는 분발한다.
1년간의 켈로그 생활을 100% 즐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솔직하게 좋은 점도 많았지만, 나쁜 점도 많았다. 생각했던 문제들 – 언어, job, 문화 – 등도 있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문제들도 많이 있었다.
당분간의 휴식이 끝나면 다시 후반전의 휘슬이 울릴것이다. 그러면 전반전에 2-1 로 지고 있는 축구팀의 선수와 같은 기분으로 학교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구장의 잔디도 슬슬 적응이 되었고, 상대편 선수들도 낯이 익은 것이다. 후반전에는 꼭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의 후반전은 45분이 아니라 30분이다. 그 이유는 내가 12월 말에야 다시 에반스톤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미운정 고운정이 많이 든 에반스톤. 떠날 생각을 하니 많이 그리울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