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izing Korea

 

Polarizing 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양극화되다’ 라는 뜻에 가깝다. 나는 이 단어를 들을 때 마다, 온 지구상의 한 무리의 사람들은 북극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은 남극의 끝으로 몰리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요즘 한국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미국에서 뉴스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분야에서 그런 점을 느껴서 더욱 서글프다. 그 세가지 분야는 바로 정치, 종교, 경제이다.

정치이론적으로는 정당들이 조금 더 중립에 더 가까워지려고 서로 노력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서로 중립, 혹은 중도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사람들의 표를 더 많이 얻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모든 현안에 대해서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과연 정당정치라는 것이 필요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요즘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그녀가 어떤 정당 출신인가? 라는 것 보다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평가하려는 경향이 더 큰 것 같다. 리더십, 논리적 사고력, 경재에 대한 이해력, 추진력 등 초당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차라리 정당이 없이, 사람들의 캐릭터나 논리, 리더십, 추진력을 경쟁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보다는 오히려 정성적 접근과 정량적 접근, 혹은 장기적 접근과 단기적 접근, 이성적 접근과 감정적 접근, 환경친화적 접근과 경제 중심적 접근과 같이 보다 논리적, 이성적, 세계관적으로 질 높은 논쟁을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두번째 종교적 논쟁. 요즘은 사실 불교에 대한 비판보다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더 많은데, 그 비판에는 ‘일부 극단적 기독교에 대한’ 이라는 형용어가 반드시 붙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용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고 든다. 그것이 그들의 종교관에 어긋나는 모양이다. 최근 조용기 목사의 발언을 보면서, 눈물보다는 웃음이 나왔던 이유는 ‘정말 내가 이 사람과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게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경제적 관념이다. 얼마전 아는 형이 Facebook에 링크건 기사를 두고 경악을 한 적이 있다. 그 기사는 기업주들이 엄청난 배당이익을 챙겼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신문도 아닌 경제신문의 기사였던 이 기사의 논조를 보고 우리는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기업의 주주가 정당하게 모든 세금을 내고 경영진이 내린 결정에 따라서 받은 배당금이 ‘많다’ 라는 이유로 뭇매를 맞는 기사였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가 맞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이 들게 한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고,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사람들이 한 나라안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본분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 이해조차 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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