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많은 여가시간이 존재한다. 상대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예전에 회사를 다닐때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나의 여가 시간의 변화는 매우 심했다. 물론 한가할때는 매우 한가할 때도 있었지만, 정말 빡세게 일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흔히 말하는 표현으로 ‘토나오게’ 일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일할까? 도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야근을 한거지?
‘일이 많아서?’ 라고 단순화 하기에는 마음 속에서 수많은 다른 이유들이 꿈틀댄다.
‘일을 못해서?’ 라고 말하기에는 인정할 수 없는 자존심도 있고, 단지 그래서만은 아니었던것 같은 막연한 느낌도 있다.
무엇이 정말 가장 큰 이유였을까 생각해봤다.
내가 생각해 보건대 밤 늦게까지 (혹은 새벽까지) 일을 많이 한 것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이유들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일찍 집에 갈 수 있으리라.
1) 갑/을 관계의 역학으로 인한 업무 발생 빈도 및 load의 비예측성
2) 매니저 혹은 고객의 변심으로 인한 업무 scope 변경
3) 조직 내의 bottle neck 존재
4) 나의 업무 처리의 비효율성
5) 예측할 수 없는 외부효과
6) 회사에 오래 있고 싶어서
7) 문화적인 요인들 (기업, 국가, 산업)
1)번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고객사가 존재하고, 우리가 고객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단순히 우리가 에이전시 비즈니스를 하거나, 클라이언트 서비스를 한다고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내가 P&G에서 일할 때도 생각해보면, 분명 제조업체는 갑에 해당할 것 같지만, 비즈니스 관계상 을에 놓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이 이유는 단순히 회사가 어떤 업종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되지만은 않는다.
이 경우의 해결책은 좀 더 예측 가능하면서 게으른 ‘갑’을 만나야 한다는 것 밖에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즈니스에서 이런 ‘갑’을 선택할 수 있는 ‘을’은 없다. 복불복처럼 좋은 ‘갑’을 만나기를 고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갑’을 길들일 수는 있을 것 같다. 나의 ‘갑’이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원인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2) 번은 1)번과는 조금 다르다. 1)번이 빈도 및 양의 변화가 예측될 수 없는 이유가 회사나 상대방과의 관계에 기반한 것이라면, 2)번의 경우는 단순히 내가 상대하는 상대방의 변심이 심한 경우다.
사실 1)번의 경우는 내가 처한 포지션이 그런 경우가 많아서 변화시키기가 더 어렵고, 2)번의 경우는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한명인 경우가 많아서 좀 더 manageable 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2)의 경우에 성격 자체가 우유부단해서 혹은 성격 자체가 이것도 보고 싶어하고 또 저것도 보고 싶어해서, 결국은 모든 옵션을 다 봐야 직성이 풀리는 보수적 성격이거나,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서 불안해서 이것저것 시키는 사람도 있다. (흔히 말하는 면피용 자료 만들기) 아쉽게도 이렇게 사람 자체의 특성이 이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에는 업무를 줄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신뢰를 쌓아 주거나, 매니저 혹은 고객사의 용기를 북돋워 주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
3) 번의 경우는 정말 힘든데, 이 경우에 해결책은 bottle neck을 없애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럼 ‘그 bottle neck이 내가 없앨 수 있는 것이냐?’ 의 질문이 나올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중에 절반 이상은 알고보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내가 영향력을 행사해서 좀 더 bottle neck을 완화 시킬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4)의 경우는 내가 잘못한 것들이니까 내 스스로 답을 찾아야 될 것이다. 도대체 내가 왜 2시간씩 저녁을 먹었을까? 내가 왜 이따위로 모델링을 했을까? 내가 왜 이렇게 아침에 잠을 많이 잤을까? 등등이 이 경우에 해야 할 질문들이다.
5) 번의 경우는 정말 예측할 수 없는 serious issue 들이 발생하는 경우다. 갑자기 고객들이 알 수 없는 클래임을 할 때, 신문에 얼토당토 않은 기사가 날때 등이 이런 경우다. 이 경우의 해법은, 이런 경우의 수를 미리 파악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스텝들을 정의해 두어서, 최대한 빨리 해결하거나, 매니저들에게 문제 해결이 어떤 식으로 될지에 대한 안심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6)번의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들. 애 보기 싫어하는 워킹맘, 마누라와 아이들 피해서 조용히 일하고 싶어하는 남자들, 딱히 집에 가도 할 것 없은 싱글들 등등. 이런 사람들이 사실은 회사에서 빨리빨리 퇴근해 줘야 다른 사람들도 좀 더 일찍 간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겠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것이다.
7)번은 가장 심각한 문제다. 한국과 일본 등의 살인적인 업무 시간에 대해서 나의 미국인 MBA 친구들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 사회에서 문화가 업무시간에 미치는 영향은 아마도 절대적일 것이다. 일본의 직장인 남자들 중에서 집에 일찍 들어가면 무능해보여서 야근을 하거나, 집 근처 역의 라면집에서 라면을 먹고 들어가는 남자들이 꽤 많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할때만 그렇게 늦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술먹을때도, 밥먹을때도, 모두 모두 늦게 한다. 우리 문화적 특성상 일도 앉아서, 술도 앉아서, 고스톱도 앉아서 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로 시간의 구애를 덜 받으면서 느긋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Switch라는 책의 저자 Heath Brothers의 블로그에서 얼마 전에 서서 하는 standing meeting을 많이 하라고 한 글을 봤는데, 나는 매우 공감했다. 서서 하다보면 대화가 길어지지 않고, 쓸데없는 논의를 잘라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마도 서서 미팅을 하면 다들 불안해 하지 않을까? 일단 커피 한잔 뽑아서 앉아서 이야기 하는 것을 워낙들 좋아하니 말이다.
나는 올 여름을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보낼 예정이다. 너무나 해보고 싶었던 산업이라서 많이 설레지만, 한국의 컨설팅 업계는 살인적으로 긴 업무시간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좀 걱정이 되기는 한다. 미국의 컨설팅은 출장이 많아서 악명 높기는 하지만, 업무 시간이 한국처럼 길지는 않다. 도대체 어떻게하면 앞으로 컨설턴트들이 집에 더 일찍 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답답하긴 하지만, 답이 없을 것 같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