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P도 모르는 마케터

 

경영학과 학부를 나왔고, 마케터로 5년간 일했고, 최고의 마케팅 스쿨이라는 MBA를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4P, 3C, STP, IMC 같은 단어들은 나에게는 낯선 단어들이다. 게다가 P&G 에서 실무를 할 때는 이런 단어를 단 한번도 쓴 적이 없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모두들 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이다.

먼저 이런 마케팅 프레임웍에 대한 위험을 이야기해보자. 딱히 마케팅 프레임웍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SWOT부터 이야기하겠다.

나는 SWOT 을 왜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Framework이라는 것은 생각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그런데 SWOT 은 현상 분석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현상 분석이라는 것이 indicated action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대체 그래서 뭘 어쩌라고… 라는 식으로 결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케팅을 잘한다는 P&G에서는 4P, 3C, STP 같은 용어를 쓰지 않는다. 학부를 졸업하고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나도 신기했다. 10년 이상 마케팅을 했다는 베테랑들에게 물어봐도 이런 용어들을 잘 몰랐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개념들을 완벽하게 체화해서 쓰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훨씬 더 고난이도로 응용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굳이 프레임웍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에 P&G에서 많이 쓰는 프레임웍 (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은 바로 Who, What, How 였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인가?

생각해보면 Who 와 What이 바로 STP 이고, How가 4P mix 와 3C strategy 등이 결합된 개념이다. 하지만 Who What How라고 하면 누구나 알아듣기 쉽다. 마케팅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도 쉽게 알아본다. 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 4C, 3C 같은 어려운 단어들을 쓰지 않아도 된다. 한국의 구매담당자도, 필리핀의 IT 담당자도, 인도의 PR 담당자도, 터키의 영업 담당자도 WHO WHAT HOW 라고 하면 다 알아듣는다.

그래서 마케팅 부서에서 만든 문서들에는 어려운 마케팅용어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회사들마다 내부인들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같은 약자들이 넘쳐나는 현상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뭔가 다른 부서에서만 알고 있는 비밀 같은 것들이 없고, 세계 어떤 오피스에서 일하는 누구에게나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프레임웍은 참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STP 이해하는데 몇년 걸렸다. 대학교때 코틀러 교수님의 Marketing Management 책을 두번이나 읽고도 이해를 못했다가 알 리스의 Positioning이라는 책을 읽고서야 이해가 되었던 개념이었다는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경영학과 공부를 몇년씩 해도 STP의 개념은 여전히 오묘하고 깊은 맛이 있다.

IMC 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P&G에서 일한지 몇년 되었을 때였다. 처음에 대학생들이 IMC, IMC 하도 그래서 도대체 뭔가 싶었다. IMC 공모전 같은 것도 많이들 나간 모양인지, 레주메에 보면 IMC라는 단어들도 많이들 눈에 띄었다. 혹시라도 후배들의 레주메를 보다가 이런 단어가 나오면 꼭 물어본다. ‘그런데 IMC가 뭐야?’ 그러면 후배들은 @.@….. (이 선배 경영학과 선배 맞나? P&G에서 마케팅 하는거 맞나?)

알고보니 IMC의 개념은 P&G에서 말하는 holistic marketing communication 과 같은 개념이었다. holistic 이라는 단어는 GMAT 공부할때나 볼법한 어려운 단어다. 하지만 개념은 surrounding audio system 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즉, 우퍼, 서브우퍼, 각각이 스피커 등등이 모두 다른 기능을 하지만, 그것들이 합쳐졌을 때, 그 모든 시너지가 발휘되면서 훌륭한 사운드를 듣게 되는 것 처럼, 각각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면 마케팅의 효과가 극대화 되는 것이다. P&G 마케팅에서 Holistic Marketing은 처음이자 끝이다. 굳이 IMC같은 어려운 단어로 개념화 하지 않더라도 항상 숨쉬고, 물마시듯이 해야 하는 것일 뿐이었다.

켈로그에서도 아무리 academic 하다지만, 많은 어려운 개념을 배우지 않는다. 이번학기까지 4과목의 마케팅 수업을 들었지만 한번도 4P, 3C, IMC 등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것에 얽메이면 오히려 숲을 못 본다.

차라리 충실하게 통계적/ 경제학적 기본기를 쌓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새롭게 어려운 개념들 (대개 영어 약자로 이루어진다)은 금새 바뀌므로, 그때그때 살짝 알아두기만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핵심이다.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은 그 사람을 유식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벽을 쌓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얼마전에 Triathlon 을 했다고 글을 올렸는데, 트라이애슬론을 종종 ‘철인삼종’ 이라고 오역하는 경우가 많다. 철인 경기는 트라이애슬론 중에서도 가장 힘든 코스의 일종일 뿐이다. 그냥 삼종경기, 혹은 트라이애슬론 이라고 번역해야 맞다.

하지만 여전히 철인삼종의 이미지가 남아서 그런지 이런 명칭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운동을 시작조차 못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개인적으로 초보자들이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명칭에서 오는 두려움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톰 행크스에게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필라델피아’를 보면 톰행크스가 변호사인 덴젤 워싱턴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떻게 된건지 나에게 설명해봐요. 4살짜리 아이도 이해할 수 있게요.’
‘Now, explain it to me like I’m a four-year-old.’

쉽게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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