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에 걸쳐서 M님께서 지하철 9호선 이슈에 대해서 핵심은 무엇이며,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가? 에 대해서 좋은 글을 두번에 걸쳐서 올려주셨다.
나는 이번학기에 David Besanko 교수님의 Federal Policy 즉, 공공정책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다. 참고로 이 수업은 많은 켈로그 학생들이 최고의 수업으로 꼽는 수업이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맞다. 수업에 대한 나의 만족도 또한 매우 높고, 내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우연하게 이번 주 수업에서는 ‘정부의 인프라 사업 수행시 고려해야할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고 사업에 민간이 어떤 형태로 어디까지 참여해야 하는가?’ 에 대한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결론만 간단하게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정부 사업에서 중요한 질문은 다음 두가지이다.
1. 정부가 새로운 인프라 사업에 착수해야 하는가? (한다면 지금 꼭 해야 하는가?)
2.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정부와 민간, 그 역할분담의 애매함
경제학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일어나는 경우, 혹은 저가산성(subaddativity)가 발생하는 경우에 대해서 자연독점(natural monopoly)가 발생한다고 본다. 쉽게 한마디로 말해서, 한 기업이 맡아서 하는 경우가 시장에서 여러 기업들이 경쟁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잉여(surplus) 를 창출하는 경우, 그냥 한놈이 하도록 하는게 낫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 그 하나의 기업은 독점이 되기 때문에, 그 사업과 관련된 소유권이나 운영주체를 정부가 소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공항공사, 한전, 지하철 공사, 코레일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한가지 내가 새롭게 수업을 통해서 배운 것은, 미국의 경우 1900년대 초에 전기, 케이블 등의 분야에서 국가 혹은 한 기업이 독점형태로 나타나지 않은채 많은 기업들이 경쟁을 하다가 합병을 거듭한 역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도태된 기업들이 설치해 놓은 전선들, 케이블들이 그대로 방치되어서 한동안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들기도 했고, 많은 자원이 낭비된 것은 물론이다. 어쩌면 뒤좇아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서구 사회의 이런저런 실패를 보고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조금은 있었던것 같다. 아무튼..
하지만 어디까지를 경쟁으로 보고, 어디부터를 경쟁이 아닌 것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애매하다. 예컨대 정부에서 경쟁입찰을 붙여서 모집을 하는 경우에는 실제로 선정되는 곳은 하나일 수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경쟁 (competition for market)이 발생한다. 이 경우에는 시장내 경쟁(competition in market)의 개념과는 다르지만 경쟁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입찰이나 사업자 선정에 성공한 후에도 정부에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러한 공공기업을 통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제학 교과서적으로는 이러한 통제 혹은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PPP (Public-private partnership)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통제 및 협력의 영역은 다음의 세가지가 있다.
1. 소유권: 누가 그 인프라의 소유권을 갖는가?
2. 운영권: 누가 그 인프라의 운영권을 갖는가?
3. 수익 및 가격 결정권: 누가 가격을 결정하고 수익을 책임지는가?
하지만 위의 세가지 문제 조차도 흑/백의 논리가 아니다. 즉, 정부가 100% 소유권을 가져야 하고, 민간이 100% 운영권을 가져야 한다는 등으로 어느 한 쪽으로 몰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에 수많은 옵션들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에서 몇년간 운영하다가 민간에게 운영권을 준다는 식으로 더 다이내믹한 옵션들을 만들 수도 있다. 공공경제학 교과서에서는 10가지 이상의 옵션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는 생략.
9호선과 닮은 꼴, 포르투갈의 고속철 (High Speed Rail)
우리나라도 KTX를 놓기 전에 설왕설래 말이 많았지만, 2008년 즈음의 포르투갈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요 논점은 1) 과연 이 사업을 정말 수행해야 하는가? 2) PPP(Public-private partnership)의 형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리스본-포르투, 리스본-마드리드, 포르투-비고 의 세 노선 중에서 어떤 곳을 택할 것인가? 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이 중에서 PPP와 관련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9호선 때문에 이슈가 된 것과 맥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한번 언급하려고 한다.
포르투갈의 경우에는 분석결과 세 노선 중에서 리스본-마드리드(마드리드는 스페인 도시) 노선이 가장 효용이 큰 것으로 나왔고, 2009년에 이 노선의 건설을 추진했다. PPP 모델은 정부가 오너십을 갖고, 민간이 디자인과 공사를 맡고, 운영 또한 민간에서 담당하는 DBFOM (Design-Build-Finance-Operate-Maintain) 형식을 취해서 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올해 초에 포르투갈의 정권교체와 함께 이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자세한 내용에 대한 위키링크: http://en.wikipedia.org/wiki/High-speed_rail_in_Portugal)
여기까지 들어보면 너무 우리나라 9호선과 닮아 있다.
– 과거 리더들의 무리한 업무추진으로 일이 추진된 점
– 리더가 바뀌고 나서 문제점들이 드러난 점
– 민간과 정부간의 역할 분담 부분이 주요 쟁점이었던 점
– 정부의 재정문제 때문에 민간의 도움을 받고자 했으나, 그 점이 오히려 더 문제가 된 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와 민간, 각자의 엣지는 무엇인가?
사실 이러한 인프라 건설산업에 있어서 정부가 100% 주도하거나, 민간이 100% 주도하는 것은 모두 리스크가 클 것이다. 그 사업의 성격, 정부의 재정상태, 그리고 당시의 정권의 시각도 반영이 된다.
특히 내가 이번 Federal Policy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우리나라 (및 유럽)과 미국간의 공공정책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의 차이는 대부분의 미국학생들 (교수님도 역시 포함)은 정부보다는 민간의 효율성에 대해서 더 신뢰를 많이 보내는 반면, 주로 아시아계 학생들과 몇몇 유럽의 학생들은 민간보다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좀 더 많이 보낸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포르투갈의 리스본-마드리드 노선에서의 중요한 가정은 기존에 비행기나 기차를 이용하던 수요가 고속철로 많이 전환된다는 것이었는데, 이 가정치에 대한 Sensitivity Analysis(민감도 분석)를 수행해 보면, 그 숫자가 예상치의 80% 이하로 떨어지면 수익성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렇게 중요한 수요의 전환을 정부에게 맡길 것이냐? 아니면 민간에게 맡길 것이냐? 의 문제에서 많은 아시아계 및 유럽계 학생들은 정부의 편을, 미국의 학생들은 민간의 편을 들었다는 점이다.
미국 학생들이 민간의 편을 든 이유는 1) 정부는 비효율적이다. 2) 정부는 부패(corruption)에 취약하다, 3) 마케팅이나 수요 창출은 민간이 훨씬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와 같은 이유를 들었다.
미국 학생들이 다수여서 그랬던지, 아니면 교수가 그렇게 생각을 해서 그랬는지, 아무튼 이렇게 어정쩡한 결론이 난채로 수업이 끝났다.
정부에 대한 기대와 실망, 역사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수업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우연히 교수님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넌즈시 꺼내봤다.
미국 학생들과 아시아 학생들은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다른것 같다. 아시아에서는 중요한 사업은 정부가 꼭 나서서 해야 한다고 시민들이 생각하고, 인재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재들은 정부로 들어가서 일을 하기 때문에 정부에 대해서 기대와 신뢰가 상대적으로 미국에 비해서 큰 편인것 같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민주당이나 클린턴/오바마 정부 조차도 민간에서의 효율성에 대한 신뢰가 더 높은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그게 사실이고, 정부의 비효율성에 대해서는 미국내에서 아주 뿌리깊은 불신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지난 2년을 보내면서 이들의 공공 서비스를 몇번 이용해본 입장에서 가슴에 팍 꽂히는 무언가가 있었다. ^^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면 뿐만 이니라, 교수는 긍정적인 면도 언급을 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건국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마저 꺼냈다. 즉, 미국은 그들이 기존의 유럽의 왕정의 컨트롤에 대해서 독립하고자 하는 의식이 분명했고, 그 중심에는 개척 정신과 기업가 정신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미국에는 그 정신을 계속 계승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여기까지 들었을 때, 갑자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 나온 바루야족 이야기마저 생각이 났다. 이 내용은 예전에 올린 적이 있지만, 아래 다시 한번 포스팅 한다.)
Duh? 공공정책 수업 교수에게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건국이념을 듣게 될 줄이야….
공공정책의 역사의 시계바늘
하지만 사실 이런 공공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시각차는 그만큼 뿌리깊게 문화와 역사를 이해해야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는 왜 보다 더 정부에서 나서서 하지 않으면 안되고, 민간에게 무언가를 이양하는 것에 대해서 노이로제에 가까운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는가? 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기업사라는 것은 결국 ‘특혜’와 ‘로비’라는 말로 요약되기 때문은 아닐까? 정부에 줄을 댈 수 있었던 몇몇 사람들이 결국은 온 나라의 부를 차지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였기에, 시민들은 민간에게 줄 것을 기대하기 보다는 차라리 정부가 가지고 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 그리고 나아가서 정부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더 강화하기 위한 시민들의 힘을 더 키워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두 방향 중에서 어느쪽으로 가도 모두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즉, 기업에게 권한을 더 많이 이양하되 투명하게 하던지, 아니면 정부가 가지고 마음대로 하되 시민들의 감시와 통제 기능을 강화하던지 말이다.다만 지난 몇년간은 이 두가지를 섞어서 한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기업에게 권한을 더 많이 이양하되 투명하지 않거나, 정부가 마음대로 하되 시민들의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고 한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70-80년대 정부 혼자만의 힘으로 추진된 많은 인프라 건설 및 공기업 정책 추진이 앞으로는 민간의 앞선 자본과 노하우를 활용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에 동의한다.
다만 그것을 잘못 추진할 경우에는 괜한 오해만 사고, 지금 맥쿼리나 누구의 조카의 계열사 같은 불필요한 논란만 낳게 된다. 그 논란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현 시점에서 논의의 가치도 거의 없다. 지금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고, 중요한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국민들은 향후에 또 다시 이러한 사업에 대해서 노이로제성 반응을 보일 것이고, 역사의 시계는 다시 되돌려지게 된다.
나는 지금의 정부가 들어설 때 누구보다도 큰 기대를 했던 사람이다.
한국 대표기업의 CEO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이 정부에게 그동안 지나치게 정부에 의존적이었던 많은 사업들에 민간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 결실이 다시 민간에게 투명하게 배분되기를 기대했고, 그로인해서 그동안 왜곡되었던 일반인들의 기업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들이 조금은 완화되기를 바랐다. 그것이 아마도 기업인 출신으로서 한 나라의 리더가 된 사람이 역사적으로 이뤄냈어야 할 과제는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뭔가 자꾸만 거꾸로 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참고: 바루야족 이야기 from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본문 254 페이지)
바루야족은 파푸아뉴기니의 원시부족이다. 이들은 1951년 호주의 탐험가들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문명 세계와 단절된 상태로 살았다. 바루야족에게 정액은 모든 것의 중심에 위치한다. 정액과 햇빛의 혼합물인 ‘우’에서 인간이 태어난다. 난자의 존재를 몰랐던 바루야족에게 여성은 단지 이 혼합물을 담아 놓는 용기일 뿐이다. 소년들이 처음 여성들과 관계를 가질 때에도 여자는 최대한 많은 남성 파트너와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이는 다른 남성들의 정액이 태어날 아이를 튼튼하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수유를 할 때도 모유는 ‘변형된 정액’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여성이 많은 모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계속 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 바루야족 연구를 통해서 얻은 결론은 대부분의 민족 학자들이 믿어온 것과는 달리 사회는 경제의 반영이 아니라, 창건 신화의 반영이라는 사실이다. 바루야족은 정액이 모든 것의 근간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신앙을 중심으로 그들의 의례와 사회관계를 구축해 나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그럼 우리나라의 건국신화는 뭐지? 아.. .단군신화’ 였다. 내 나름의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단군신화가 주는 교훈은 ‘인내와 끈기’ 였던 것 같다. 동굴속에서 쑥과 마늘로 버틴 곰의 후손인 우리들은 모두 은근과 끈기의 후손들이니까.
한편으로 든 생각은 많은 기업들이 창업주가 죽고 몇대가 지나도 좀처럼 기업의 문화가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건국신화가 그 문화를 유지하는 것 처럼 창업주가 어떻게 기업을 성공의 궤도에 올려 놓았는가? 하는 이야기는 좀처럼 그 기업의 DNA를 떠나지 않는다. 삼성도, 현대도, APPLE도, P&G도 모두 그렇다.


부정부패 때문에 정부주도를 지지하는게 아니라 오랜 사회주의적 성격의 왕조봉건사회에서 살아온 성향때문에 동양인은 정부엘리트 주의를 좋아하는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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