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커피, 그리고 브랜딩

나의 와인 이야기


 
미국에 가서 유학을 하면서 갖게 된 소소한 재미 중에 하나가 바로 와인이다.

한국에 있으면서도 와인에 대해서 조금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수업도 듣고 책도 읽었지만, 실제로 와인을 많이 맛 볼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 가보니 $10 ~ $20 정도에도 충분히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마트에서 많이 살 수 있어서, 틈나는대로 와인을 마셨다. 금요일 저녁에 우리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서 와인을 마셨던 것은 나의 유학생활 기억중에 가장 즐거운 기억의 하나이다.

와인을 좋아하면서 Napa Valley 투어도 갔었다. 2010년에 스페인 와인 투어에 이어서 두번째 투어였는데, 두 나라의 다른 와인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스페인이 훨씬 전통과 문화를 중시하는 반면, 미국의 와인문화는 좀 더 실용적이고 상업적이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캘리포니아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 좋은 날씨까지 겻들여진 나파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다시 가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커피 이야기

90년대 후반에 스타벅스 강남역점이 처음 생겼을 때, 나의 생활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그 후의 생활에서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점은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다가 요즘은 점점 홍대나 가로수길을 중심으로 로스팅을 직접 하는 샵들이나 핸드드립 커피를 전문으로 파는 곳들도 생겨나고, 폴 바셋과 같은 전문 바리스타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커피계의 맥도날드 취급하면서 자신들만의 차별화된 맛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번 겨울에 한국에 돌아와보니 확실히 이런 커피의 인기가 더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집 바로 근처에 바리스타 교육 전문점이 다 생겼으니 말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뭔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어서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는 법, 카푸치노 만드는 법, 에스프레소를 활용한 메뉴(카페 라떼, 카페 모카, 카라멜 마키아또 등)를 만드는 법, 로스팅 하는 법, 핸드드립 하는 법 등을 배웠다.

기후와 땅의 결실을 마신다는 것

이렇게 커피와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아마추어 단계로나마 공부를 하다보니 신기하게 생각되는 점이 많아졌다. 가장 신기한 점은 같은 종, 같은 땅에서 자란 농작물로 만든 포도와 커피열매가 그 후의 처리과정에 따라서 맛이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점.

결국 와인이나 커피 모두 농작물이 땅에서 흡수한 기운과 자신이 자라던 기후의 맛을 그대로 품고 있는 것을 인간의 손으로 우러내어서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와인과 커피를 마실 때에는 이제 단순히 기호식품을 마신다는 기분에 더해서 자연에서 자란 열매의 결실을 맛본다는 의미에서 자연에 한걸음 다가간 느낌이다.

이런 감정이 들때마다 내가 나이가 든 느낌도 든다. 예전에는 녹음이 짙은 풍경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가, 나이를 자꾸 먹으니까 그런 풍경만 봐도 뭉클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도 내가 자연에 다가가가는 그런 느낌이 들곤 했다.

와인농사 vs. 커피농사 그리고 비즈니스

와인과 커피에 대해서 좀 더 느끼게 되면서도, 한편으로서는 비즈니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와이너리 투어를 가면, 와인을 만드는 곳들은 부유한 나라에서, 좋은 환경에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와이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기업적 영농을 하고 있거나, 소규모로 하더라도 철저한 경영학적 마인드, 마케팅 마인드를 가지고 자신의 ‘브랜드’를 철저하게 지켜가면서 일한다.

하지만 커피는 대부분 적도 부근에 있는 빈곤한 국가에서 재배되거나, 기업적 영농이 된다고 하더라도 큰 부가가치를 내지는 못한다.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샵들이 Fair Trade 운동을 많이 전개하는데, 이것은 바로 이런 빈곤한 커피농가에게 제대로 된 가격에 커피를 사오자는 운동이다. 그런 운동을 하지 않으면 중간에서 마진을 챙기는 다른 이들이 커피농가의 이익을 모두 가져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와인과 커피는 기호식품으로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농가들의 이익구조에서는 많은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세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1) 지정학적 위치, 2) value chain 구조, 3) 브랜드 전략.

먼저 지정학적 위치, 즉 와인 재배산지는 기후가 좋은 지중해, 캘리포니아, 호주, 칠레 등 비교적 선진국에 위치하고, 커피산지는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브라질 등의 적도인근에 있는 국가들에 위치하므로 그렇다는 것인데… 사실 이런 지정학적 위치가 국가/국민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실 능동적인 자세는 아니나, 현상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면이 있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바로 value chain management와 브랜드 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

와인은 포도재배부터 발효, 보틀링, 심지어는 유통까지도 한 업체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커피재배농가들은 거의 커피재배 자체에서 머물고 만다. 단순하게만 생각해봐도 value chain 상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서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쪽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생성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더 큰 요인은 브랜드 전략인것 같다. 물론 커피가 와인에 비해서 브랜드 전략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미묘한 차이를 극대화해서 포지셔닝에 활용하는게 마케터의 역할 아닌가? 실제로 커피를 공부하다보니 파나마 게이샤 커피, 미국의 인텔리젠시아 커피 등, 나름대로 커피의 브랜딩의 성공사례들이 있었다.

맺는말

최근에 농업에서의 브랜딩에 대해서 감탄하면서 ‘부자 농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부자농부, 농업에 눈을 돌려보자: https://mbablogger.net/?p=2064), 사실 농업에 있어서 브랜딩은 우리나라만의 고민이 아닌듯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와인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만큼 개별 브랜딩이 철저하게 되어있는 상품도 없을 것이다. 모든 와인에는 자신들만의 에티켓(레이블)이 달려 있고, 사람들은 그 에티켓과 브랜드에 따라서 구매의사결정을 한다. 원산지, 포도품종, 그리고 생산연도까지. 와인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품질과 가격에 반영이 된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복잡성을 가져와서 초심자들이 와인을 어렵게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 디테일로 인해서 와인이 더 재미있어 진다.

커피와 와인을 알게 되면서 결국 ‘좋은 와인’ ‘좋은 커피’라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어느정도의 절대적 품질차이는 존재하지만, 비슷한 등급 안에서는 ‘자기 입에 맞는 것’이 제일 좋은 와인/커피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기호도 다양하며, 그런 다양한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브랜딩도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요즘은 이런 농업 비즈니스에서의 브랜딩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와인과 커피, 그리고 브랜딩”의 2개의 생각

  1. 와인에 비해 커피가 재배 농가의 이익 구조에 차이가 나는 이유로 언급하신 세가지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치의 감가상각이 언제부터 발생하는가…라고 보는데요, 다시 말하면, 완성품이 된 후 언제부터 가치가 떨어지는가. 예를들면, 와인의 경우는 와이너리에서 병입한 이후에도 상당기간, 와인에 따라 수십년간 가치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가치가 상승하지만, 커피의 경우는 로스팅 이후 일주일이면 본래의 풍미가 상당 부분 소실된다고 합니다. 해서, 커피의 경우는 주 소비지에서 멀리 떨어진 농가에서 완성품으로 제조(로스팅)한다면, 소실 되는 가치가 매우 클 것이고, 그런 연유로 소비지 근처에서 완성품을 제조하는 것이 아닐지… 그렇기 때문에, 커피 재배 농가가 부가가치를 생성해서 이익을 취하는 것이 상품의 본질상 어려운 것을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그나저나, 바리스타 수업가지 받으셨습니까? 부럽습니다. 저도 한번 배워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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