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푸드마켓, 정체성 없는 마트에 미래는 있는가?

미국에 유학을 하던 기간동안 가장 많이 이용한 마트는 홀푸즈 마켓(Whole Foods Market).

우리나라의 이마트나 홈플러스에 해당하는 Target도 Wal-Mart도 아닌, 나도 유학을 가기 전까지는 듣도 보도 못했던 홀푸드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것은 딱히 타겟이나 월마트를 갈 이유가 없었을 정도로 상품 구색이나 그 마트가 지행하는 가치가 나의 생활과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도 없고, 켈로그 시리얼도 없고, 버드와이저나 밀러 맥주도 팔지 않으며, 질레트 면도기나 헤드 앤 숄더 샴푸도 팔지 않지만, 홀푸즈는 나의 모든 생필품 쇼핑 니즈를 충족시켜 주었다. 물론 가격이 조금 비싼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말이다.

트레이더조 (Trader Joe’s) 역시 훌륭한 그로서리 리테일이다. 트레이더 조의 와인 셀렉션은 실험적이면서도 저렴하다. 트레이더조에서 소개하는 각 나라의 다양한 음식들은 구경하는 것 만으로 재미를 주고, 직원들의 알로하 셔츠는 색다른 리테일 경험이었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은 나 스스로가 5년간 생필품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별것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트 비즈니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었다.

인터넷 같은 high tech 비즈니스에나 어울릴 것 같고, 마트 비즈니스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혁신”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되는 순간들이 꽤 많았다. 어쩌면 별것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가격 프로모션과 덤 판매 위주의 한국 마트 비즈니스에 대한 나의 염증과 함께 내가 종종 비판하는 “너무 쉽게 결론을 내려버리려는 한국인들의 습성”이 내 자신에게도 베어 있기 때문이리라.

SSG 푸트마켓의 소식에 두근거리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서 새로운 프리미엄 리테일을 표방하면서 오픈한 신세계의 SSG 푸드마켓은 나에게 무한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몇몇 친구들을 통해서 들려오는 ‘홀푸즈를 그대로 베껴놨다’ 라는 소식은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그게 통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혁신적인 PB들을 많이 만들어서 좀 더 제품의 신뢰도를 높혔다는 소식, 그리고 각 코너별로 전문성을 높인 점원들을 배치했다는 소식 등은 나를 흥분시켰다.

마침 오늘 부산 마린씨티 내에 있는 SSG를 다녀왔다.

간단히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정체성이 애매했다. 이 곳이 프리미엄 마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너무 헷갈린다. 대치동에 위치한 스타슈퍼와 도대체 뭐가 다른것인지. 구색(assortment)가 좀 더 다양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반 차이를 못 느꼈다.

먼저 사진들을 좀 감상하시라.

견과류 코너에 전시된 견과류는 전시용일뿐, 판매용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주류코너는 마트에 비해서도 상품구색이 부족하고, 백화점 지하의 식품코너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다이소나 100엔샵을 연상시키는 싸구려 생활용품이 자리잡고 있는 매대

프리미엄 헤어케어 매대에는 심지어 홈쇼핑 상품들까지 진열되어 있다.

 

Below my expectation

실망스러웠던 점을 요악하자면,

1. 기존의 마트의 상품구색을 어느 정도 포용하고 가야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기존 마트에서 잘 팔리지 않는 제품들까지 비치 해 놓은 점.

2.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다이소나 100엔샵에서 팔만한 제품들까지 구비해 놓은 점.

3. 각자의 코너에 대해서 전문지식을 갖춘 직원을 매장에 비치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제조업체의 판매도우미가 들어와 있는 점.

4. 가격 중심의 프로모션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판매도우미의 재량으로 끼워팔기가 이뤄지고 있는 점.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을 수도 있으나, 제조업체나 리테일러의 브랜딩 차원에서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5. 곡류 및 견과류 코너는 다양한 상품군이 투명 용기에 담겨 있으며, 마치 빼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되어 있지만, 데코레이션일 뿐, 실제로 판매하는 상품은 따로 있다는 점.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상품 배치 및 구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 맥주 코너와 외부에 따로 마련된 와인 코너의 경우 구색도 기존 마트나 백화점 지하와 전혀 차별화가 되지 않고, 오히려 구색이 부족. 특히나 와인 코너는 미국 와인을 물어보니 SKU가 고작 5-6개 수준이었다. 맥주도 요즘 유행하는 밀맥주나 에일은 전혀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니, 이런 곳을 어찌 프리미엄 마켓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Beyond my expectat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점을 꼽자면, 가장 먼저 전체적인 매장의 레이아웃이 깔끔한 점, 그리고 식품매장의 수준이 여타 다른 마트나 백화점 지하에 비해서 높았던 점, 그리고 점원들이 조금 더 친절했던 점 등을 꼽을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굳이 이 점을 강조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 정도는 신세계에서 새로 문을 연 프리미엄 수퍼마켓에 가면서 누구나 기대할 수 있는 점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대했던 것 보다 좋았던 점만 나열하자면;

1. 수입 제품의 상품구색에 신경쓴 면이 보였다. 아무래도 프리미엄으로 가자면 국내 시장에서는 수입 제품에서 어느정도 해결이 될 수 밖에 없을 터인데, 기존 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수입제품이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눈에 많이 띄었다.

일부 가공식품의 수입제품의 경우에는 특색있는 구색이 눈에 띄였다. Jamie Oliver 제품 라인도 있었는데, 다른 곳에서도 파는지는 잘 모르겠군.

2. PB의 패키지 디자인이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점. 기존의 마트에서의 PB라 함은 대부분 프리미엄보다는 저가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의 제품을 뜻했다. 하지만 SSG의 시즈닝 상품을 비롯한 일부 가공식품의 패키징은 꽤 훌륭하다.

일부 가공식품 PB의 패키징은 훌륭했다. 패키징이 훌륭하다 함은 사고 싶었다는 뜻이다.

3. 플라스틱이면서 소형인 카트는 매장의 형태에 맞게 잘 디자인 된 것 같다. 크기가 좀 작은게 아쉬웠지만, 와이프는 오히려 그런 점이 맘에 든다고 했고, 스티어링도 이정도면 훌륭하다.

카트는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합격점이다. 다른 마트에 비하면 말이다.

결론: SSG의 고뇌를 느끼다.

생활용품 회사에서 일했고, 리테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써 나는 SSG에서 일하면서 이 곳을 디자인한 사람들의 고뇌를 많이 느꼈다. 분명 이들도 프랑스의 포숑이나 일본의 키노쿠니야, 미국의 홀푸즈나 트레이더 조 (혹은 뉴욕의 딘 앤 델루카)를 많이 참조하고 스터디 했을 터이다. 그리고 그러한 프리미엄 수퍼마켓을 한국에서도 실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가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1) 과연 프리미엄 제품들만 가지고 one-stop shopping이 가능할 것인가?
2) 과연 값비싼 프리미엄 제품들만 가지고 리테일러의 마진구조를 건전하게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두가지 질문에서 어느정도 현실과 타협을 한 흔적들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가슴이 아팠다. 나는 한국에서도 프리미엄 마트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기도 하고, 소비자로서 그런 곳이 필요하다고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SG는 그런 모델이 되기에는 좀 부족한 것 같다. 한마디로 도곡동 스타슈퍼의 전국 체인화 혹은, 백화점 지하수퍼의 전국 체인화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쉽지만 조금 더 기다려봐야겠다.

쵸콜렛 매대: 비싸고 질 좋은 유기농 수입 초콜렛과 싸구려 초콜렛들이 함께 있는 모습은, 이 마트를 디자인한 사람들의 고뇌를 그대로 드러낸다.


NOTE: 물론 내가 방문한 곳이 청담점이 아니라 부산에 있는 마린씨티점이라는 점 때문에 어늦어도 discount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단 두곳밖에 없다면, 그리고 그 둘 중에 하나가 의외로 부산의 부유층이 모여 있는 이 곳이라면 청담과 큰 차이 없다고 간주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보너스 사진:
와인 코너의 360도 뷰

“SSG 푸드마켓, 정체성 없는 마트에 미래는 있는가?”의 3개의 생각

  1. 글 말미에 적어주신 바와 달리 청담점과 해운대점은 규모나 상품구색면에서 상이하다고 들었습니다. 청담점을 갔었을 때에는 말씀하신 다이소 수준의 제품은 찾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드라이 에이징 한우라던가, 다양한 종류의 새우 및 랍스터 등이 구비되어 있더라구요. 맥주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와인의 경우 1층에 추가적으로 와인숍이 있었고 저가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고가 와인까지 수비하고 있었습니다. 탄산수 또한 인접 상권 대비 많은 종류를 갖추고 있었구요.
    전 개인적으로 근처 백화점에서도 잘 볼 수 없는 제품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다음에 서울에 오시면, 청담점을 한번 방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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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번 가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다녀와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리테일 잘 모르지만 관심이 많은 편이라 SSG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지는군요.
    대략 사진을 보니 저도 스타수퍼와 딘앤델루카가 적절히 섞여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세계가 작년에 딘앤델루카를 들여오면서 어느정도 트렌드에는 확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드닌데 백화점이 아닌 단독 매장을 구성한 것은 무척 실험적인 것 같습니다.
    백화점들의 럭셔리 차별화 광풍이 한번 지나가고 이제 남은건 프리미엄 식품관을 통한 라이프스타일 공간 창출이다라는 flow로 예상했는데(갤러리아 식품관도 리모델링 중이죠), 별도의 장소에 레스토랑과 함께 구성한 것은 의외였습니다. 단순 방문자수는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마치 카트에 거리낌없이 쓸어담을 수 있는 객단가 높은 고소득자 중에 직접 장보기를 하는 세그먼트가 얼마정도 될지가 궁금합니다.
    자녀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 20~30대의 이유식 유기농재료 구입처가 백화점에서 상당부분 ssg로 이동하지 않을까.. 명품이나 패션쪽은 구경만하고 결국 장만보고 집에가는 세그먼트도 많이 흡수할 수 있겠죠..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갤러리아나 현대의 텃밭인 압구정, 청담 거주고객을 SSG 식품관, 식당가라도 뺏어오는게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ㅋ
    카트는 스타수퍼것이 더 편한 것 같습니다. 바구니를 위아래로 두개 넣을 수 있는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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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의외로 이번에 리뉴얼한 신세계 죽전점 지하 슈퍼 나쁘지 않았어요. 매장이 너무 크고 상품구색은 SSG 청담점보다는 살짝 떨어지지만 스타슈퍼와 SSG 청담점의 중간느낌???? 미국산 에일종류가 다른곳보다는 많았구요 (그래봤자 4~5가지 ㅋ) 난 이래저래해두 스타슈퍼가 잴좋더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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