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AM @2012년 겨울의 에반스톤

 

LONG, SHORT and CALL .. 갑자기 낯설어진 단어들

지금 현재 시각은 정확하게 2012년 1월 19일 새벽 3시.

방금 Derivatives Markets 의 problem set을 풀고, 웹에 들어가서 퀴즈까지 마쳤다. 방금전까지 Put, Call, Long, Short 등 파생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만 쓰이는 단어들과 씨름하다가 문제까지 풀고 나니까 파생에 대해서 조금 감이 오는 것같다.하지만 막상 며칠 후에 보면 또 새로운 내용일 것이다.

오늘 아침까지만해도 Derivatives Markets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파생 금융론 정도?) 수업을 내가 왜 신청했을까를 몇번이고 후회했다. 외계어 같은 단어를 늘어놓으시는 밥 맥도널드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자니, 정말 갑갑했다.

밥 맥도널드 교수님은 생김새도 미국 개척시대 개척마을의 목사님이라고 해도 믿어질 것 같이 생기셨다. 그렇지만 공부를 좀 하다보면 “이렇게 재미없는 내용을 참 열심히도 가르치고 계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커리큘럼을 충실하게 수행하신다. 미국 교수님들의 강의에 대한 열정만큼은 감동해 줄만 하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 교수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밥 맥도널드 교수님, source: 켈로그 웹사이트

 

파생의 묘미는 머릿속으로 한참을 생각해야하고, 자폐증 환자처럼 혼자서 머릿속에서 금융상품을 파고 사는 시뮬레이션을 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머릿속에 안쓰던 근육들이 꿈틀대면서 신기하게도 내 상상속에 방금 생긴 거래소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아울러 profit diagram 을 노트 빼곡히 그려놓고 나면 뭔가 제대로 된 공부를 한 것 같은 ‘착각’에도 빠지게 된다.

하지만 내 평생 이런 내용을 언제 또 써먹게 될까? 잘 모르겠다. 게다가 이렇게 휘발성이 강한 내용을 배워서 과연 얼마나 내 머릿속에 남을까? 걱정 되는 부분이 많긴 하다..

이 수업의 중반 이후에는 real option value에 대해서도 다루니까 한번 기대를 걸어본다. 게다가 밥 맥도날드 교수는 80-90년대 미국의 real option valuation 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다시피 하신 분이라고 한다. 현재 미국 MBA에서 쓰는 대부분의 교과서도 쓰신 분이라고 하니, 말 그대로 저자직강이다.

어쨌든 끝까지 버텨 보기로 했다.

에반스톤 겨울 나기

춥다. 많이 온 눈이 녹을 생각을 안하고 있다.

그늘 아래 쌓인 눈들은 이제는 제법 두꺼운 까만 때를 뒤집어쓰고는 ’4월까지는 절대로 녹지 않으리라’라는 듯한 뻔뻔한 모습으로 에반스톤의 골목마다 웅크리고 있다.

기숙사 주차장을 들어오려면 잠시 차창문을 내리고 차고문을 여는 키를 인식기에 대야 하는데, 그 짧은 순간 차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 춥다. 추위는 사람을 쪼잔하게 만든다.

2004년 카투사 시절부터 입은 노스페이스의 방한 내복은 에반스톤 생활에도 참으로 유용하게 잘 쓰이고 있다. 나는 노스페이스 계급주의가 성행하기 훨씬 이전인 95년도부터 노스페이스를 입었다. 그 당시에는 친구들이 오히려 브랜드 네임이 신기하다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암튼 그 후로도 나는 노스페이스의 로열 고객이었는데, 지금 여기서도 몇벌이나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유용한 것은 기능성 방한 내복.

몇주 전에 Teavana 라는 차(tea)전문점에서 산 tea pot 도 몸을 덥히는 기구로 잘 쓰고 있다. 촛불을 아래 놓아서 계속 차를 따뜻하게 해주는 그런 찻주전자다. 올해의 best buy 품목중에 하나로 꼽을만 하다. 여기에 중국에서 사온 푸어차(보이차)와 자스민, 녹차 등을 데워 먹으면 집안도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촛불로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는 찻주전자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커피를 끊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인데, 그 이유는 물론 졸음과의 싸움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Kellogg 에 대한 푸념

이렇게 계속 잠이 부족한 이유는 전적으로 finance 수업을 네개나 듣고, 각각의 수업에서의 workload 가 높은 탓이 크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학교는 다른 MBA들에 비해서 확실히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다.

오늘은 한국 학생들이 모여 앉아서 학교에 대한 푸념을 늘어 놓았다. 그 주제도 역시 ‘우리학교는 왜 이렇게 공부를 많이 시킬까?’ 였다. input으로 학교의 성적을 측정하는 동양문화에서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많이 공부하는 것이 미덕이겠지만, 미국에서는 모든 것이 output 중심이다. 졸업후 연봉, 취직 확률, 졸업후에 직장에서의 진급 정도 등등, 모두 측정 가능한 지표 중에서 결과로 나오는 것이 MBA 랭킹의 중요한 지표이지, 절대로 수업시간이나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MBA 학생들에게 이런 무거운 학습강도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이 와중에도 노는 학생들은 많겠지만, 농업적 근면성을 몸에 익히면서 자라온 한국 학생들에게는 겨울은 밖에 나갈 시간이 적으므로 공부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절대로 이 명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졸업을 생각하면, 이렇게 derivative 문제를 풀면서 하얗게 불태운 밤의 끝엔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주, 다음주는 내 iCal에 나 스스로 쉴 시간이나 차 마실 시간, 그리고 reading할 시간 등을 block해 놓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다.

그렇게 바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내 MBA의 겨울학기가 하루하루 지나고 있다.

새벽 3시 30분이다.

 

 

“3AM @2012년 겨울의 에반스톤”에 대한 한 가지 생각

  1. MECN 숙제하다가 저는 1월 20일 새벽 3시가 되었네요. 재밌고 깊이 있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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