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책이 초콜렛이나 과자 못지 않게 충동구매상품이다. 확 땡기는 책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집어서는 기존에 읽고 있던 책을 내팽개치고 그것부터 읽을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미국 대선이 불과 2-3일 앞으로 다가온 며칠전 교보문고에 놀러 갔다가 본 이 책 ‘롬니 이야기(The Real Romney)’ 역시 나에게 심한 구매충동을 불러여 일으켰다.
현재 한국시간 2012년 11월 7일 오전 9시. 지금 막 CNN에서는 Exit poll(출구조사)에 대한 결과 공유가 시작되었고, 아마도 오늘 저녁 즈음에는 미국 대선의 결과가 나올 것 같다. 많은 전문가들이 오바마의 승리를 점치고 있지만, 박빙을 예상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롬니에 대해서 이 책을 읽기 전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보스톤 글로브의 기자 두 사람이 쓴 책이다. 책의 제목이 The Real Romney 즉, “진짜 롬니”인 이유는 그만큼 미국인들조차 진짜 롬니가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러워 했던 점이 있기 때문이리라.
롬니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3M 이라는 그를 둘러싼 이슈로 대변될 수 있다. Mormon, Millionaire, Massachusetts. 그는 성공한 몰몬교도로서 매사추세츠 주의 주지사를 지낸 사람이다. 그보다 약간 더 롬니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가 하버드에서 MBA와 Law school 에서 복수학위(dual degree) 를 받았으며, Bain Capital과 Bain and Company의 대표를 지냈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이라는 정도의 정보를 더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부터 언론에 공개되었고, 매사추세츠 주지사까지 지냈지만, The Real Romney 진짜 롬니라는 제목의 책이 나와야만 했던 이유는 그가 몰몬이며 Family man인 까닭에 술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일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별로 없으며(몰몬 교회와 봉사활동을 제외하고는),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과 이슈 위주의 해결 방안 도출이라는 컨설턴트 전형의 일하는 방식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이후의 감상이었다. 그와 가깝게 일했던 측근들조차 그와 진탕 놀아본적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술자리에서 어울림과 비즈니스 아워 이외에 face time이 중요한 우리나라에서 롬니가 태어났다면 참 성공하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와 함께 미국 역시 칵테일 파티에 오래 머물지 않고 쓱 가버리는 사람에 대해서 ‘dry 하다’라는 비판과 쑤근거림이 있다는 생각.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그를 겉으로만 알다가 더 깊이 알게 된 사람들은 ‘생각보다 수다스럽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린다고 한다. 즉, 그는 할일을 하고 자리를 뜨는 전형적인 비즈니스맨 그리고 패밀리맨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
비즈니스맨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큰 창피(shame)이 아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최초의 가설이나 전략이 수정될 수 있으며, 심지어 훌륭한 리더는 그런 유연성을 지녀야만 한다. 롬니가 낙태나 건강보험법안 등에 대해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에는 그가 ‘선거의 승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전략과 전술을 잘 바꾸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대중으로부터 ‘신념’을 갖기를 기대받는 정치인이 보여줄 경우에는 문제가 될 여지가 많다. 자신의 오랜 정적이었던 에드워드 케네디 주지사와의 연대를 통해서 건강보험안을 통과시킨 경력이 그가 이슈해결을 위해서는 유연한 생각을 보여준다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 사건을 통해서 그는 공화당 내에서조차 많은 적을 양산했지만 말이다.
예전에 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정치인들이 너무 탁상공론만 하고, 현실과 괴리된 이상한 법안만 나열하고 있으니, 차라리 보수나 진보와 같은 특정 정치 이념에서 자유롭고, 오직 합리성에 맞는 논리적 문제해결에 집중한 정치인들이 나온다면 어떨까? 혹은 그런 정당이 출현한다면 어떨까? 예컨대 “논리당” 혹은 “합리당” 혹은 “문제해결당” 같은 정당 말이다. (물론 지지기반은 나 같은 사람들? ^^) 그런데 문제는 논리나 합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태, 이라크 파병, FTA같은 이슈도 옳고 그름의 이슈나 비용과 효용의 문제라기 보다는 신념과 이념의 문제인 경우가 많은데, 그 경우에는 도대체 어떻게 판단을 내릴 것인가? 그런 정당이 나온다면 3-5% 정도의 전국 지지도를 지닌채 casting vote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major 정당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나는 롬니를 보면서,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롬니가 내가 지인과 농담삼아 했던 가정에 가까운 정치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컨설턴트들이 비즈니스 이슈들을 해결하듯이 접근했고, 실제로 많은 경우에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아주 훌륭한 해결책들을 내놓았다.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나 매사추세츠주의 건강보험법안을 반대편들을 포섭해서 통과시킨 사례, 두번이나 주지사 선거에 도전해서 기존의 단점들을 보완해서 성공한 사례 등등이 모두 그런 사례들이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그는 말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얻은 ‘진짜 롬니’에 대한 결론은 훌륭한 비즈니스맨이자 유연한 생각을 가진 문제 해결자라는 것이었다. 회사를 턴어라운드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소음 (예컨대 해고문제)들은 투자자들 시각이나 경제 전체로 볼 때에는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전국적인 국민들의 관점에서는 ‘정치인이 가져도 될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거듭 이야기하지만, 국민들은 아무리 옳은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사람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치인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다. 처음부터 옳바른 견해와 신념을 갖고 있지 않으면 중간중간 계속 도전(challenge)을 받고, 잘못 대답했다가는 정치 생명이 날아가니 말이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하나 재미있는 점은, 미국인들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쟁점 이슈는 바로 경제+ 미국의 재정적자 라는 점이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두가지를 합치면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은 응답자가 50% 이상이 되었던것 같다) 참으로 이번 선거는 재미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성공은 이제 몇 시간 후면 밝혀지겠지만, 그 승패에 상관없이 그의 추진력과 유연성은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의 결과가 나오면 롬니라는 인물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겠지만, 그 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 포스팅을 올려본다.
Note)
이른바 롬니케어라고 불리는 매사추세츠 건강보험법안 통과시 오랜 숙적이었던 에드워드 케네디와 함께 법안에 사인하기 전 롬니의 스피치 동영상
그 외에 롬니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EBS의 다큐멘터리 ’2012 미국의 선택’을 다시보기로 시청하실 것을 권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