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은 맛 없는 맥주만 마실까?

삿뽀로가 세상에서 젤 맛있는 맥주 아니냐고?

내가 유학했던 시카고 인근에는 수천개의 마이크로 브루어리가 있다. 꼭 시카고 뿐 아니라 미국의 왠만한 지방도시에는 자기만의 맛을 지닌 작은 맥주 브루들이 많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이런 작은 브루들이 병에 자신들의 맥주를 담아서 유통을 시킬 수 있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나의 입맛을 사로잡은 몇몇 맥주들을 꼽으라면

Three Floyds Brewing Co.의 Alpha King
Dogfish head 의 60 min IPA
New Belgium Brew 의 Fat Tire
Founders Brewing Co. 의 All Day IPA
Bells Brew의 Oberon

등등이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 OB맥주나 하이트를 아무런 불만없이 마시고, 삿뽀로, 기린, 에비스 정도가 맛있는 맥주라고 믿고 살던 나는 이제는 이런 밍밍한 맥주에는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게 되었다. 불과 2년만에 나의 혀가 완벽하게 라거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Bells Brew의 오베론이다. 여름철 마시기에 좋은 섬머에일로서 색깔만 봐도 군침이 돈다.

미국 홀푸드 수퍼마켓의 맥주 코너. 버드나 밀러, 쿠어스 같은 맥주는 없다.

한국 사람들은 맥주맛에 관심이 없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미국에서 마시던 맛있는 맥주들이 생각나서, 혹시 한국에도 이런 맥주들이 없을까 찾아나섰다. OB와 하이트라는 두 회사에 의해서 99%의 시장이 잠식되어 있는 한국. 재벌기업들의 횡포나, 동네 시장의 붕괴 등에 사람들은 엄청나게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마시는 맥주는 불과 두 회사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다는데 대해서 크게 불만이 없는 듯 하다. 그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맥주맛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지배적인 가설이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의 맥주는 대부분 그냥 시원한 맛에 한잔 하거나, 혹은 소주/양주 등과 함께 폭탄을 만들어서 마시는데 대부분이 소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마시는데 뭐하러 맛있는 맥주가 필요하겠는가? 요즘은 심지어 폭탄 제주에 맥주보다는 페리에 같은 탄산수를 쓰는게 유행이라고 하니, 맥주에 대한 니즈가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한국과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마시게 하면 백이면 백 맥주맛에 놀란다. 맥주에도 와인만큼 다양한 종류의 맛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도 놀라고, 그 맛이 지금까지 맛보던 OB나 하이트와 비교가 안될만큼 맛있다는 점에 또 놀란다. 특히 여자들에게 에일 종류를 마시게 하면, 남자들보다 더 좋아하는거 같다. 어차피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서 맥주 한병정도를 마시기 때문에 알콜이 6~10도 정도 되는 에일을 마셔도 좋다는 사람도 많다.

한국에서 맛있는 맥주 찾기

먼저 인터넷을 뒤지게 되었는데, 최근에 홈브루잉을 비롯해서 인터넷에서도 몇몇 대기업에 의해서 지배되는 한국의 맥주시장의 기형적인 형태를 안타까워하며, 맛있는 맥주를 찾고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홈브루어링부터 작은 맥주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미국의 60-70년대의 이러한 움직임이 비슷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내가 맥주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은 두 사이트를 소개한다.

비어포럼 : http://www.beerforum.co.kr
살찐돼지 : http://fatpig.tistory.com

이렇게 여기저기 알아 본 결과 한국에서도 이제 몇몇 업체들에서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를 수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태원에서 새로 문을 연 맥파이 브루잉 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한달간 1주일에 한두번씩은 가고 있다. 그리고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홍대앞에는 Pub One이라는 생맥주로만 승부를 하는 펍도 생겼다고 하니, 맥주맛에 신경쓰는 사람도 점점 늘고는 있다.

그리고 우연히 브루마스터스라는 회사에서 Rogue(로그)를 비롯한 몇몇 맥주들을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맥주들은 모든 수퍼마켓이나 매장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태원이나 홍대 등지에 있는 미국산 제품들을 수입해서 파는 가게에서만 일부 살 수 있다.

신세계 SSG의 맥주코너 – 수입맥주가 꾸준히 늘어나서 다양성이 확보되고는 있지만, 대부분 앤하이져-부쉬(인베브) 계열에서 수입되는 맥주 혹은 밀러/쿠어스사 등 대형 맥주사들의 맥주로 도배되어 있다.

최근에는 대형마트에 가면 수입맥주 코너가 꽤 크게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솔직히 내가 볼 때는 마실만한 맥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밍밍한 라거계열이 대부분이라서, 개인적으로는 취향이 아니다.

수입상과 슈퍼마켓 사이에는 주류도매상들이 있는데, 이들간에도 서로 경쟁이 엄청나게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슈퍼마켓에는 나름 독특한 맥주들을 싼 값에 공급하려는 경쟁이 조금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의 맥주는 호프집이나 대형 체인(이마트, 롯데마트, 테스코, 세븐일레븐 등)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어서 맛있는 크래프트 맥주를 찾기는 쉽지 않다.

나가며… 소비자들이 먼저 요구해야 바뀐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맥주는 유통(distribution)의 힘으로 지배되는 시장이고, 그 이면에는 대형 자본인 OB맥주와 카스가 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맥주를 양조하는 회사는 4군데 뿐이고, 이 2군데를 제외하면 매우 영세한 곳들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 맥주시장은 OB/카스와 진로하이트 그냥 가지고 놀면서 사람들의 주머니에 빨대를 꽂고 쉽게 돈을 벌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른 두 군데중에 하나가 바로 맥파이 브루에 위탁생산을 하고 있는 카브루)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맥주산업의 구조는 미국의 맥주 산업 구조와 거의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문제를 삼은 다큐멘터리를 최근에 iTunes 에서 다운로드 받아서 보게 되었는데,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보시길 바란다.

Beer Wars 아이튠즈 사이트: http://itunes.apple.com/us/movie/beer-wars/id349643903

최근에는 히타치노 네스트 같은 일본계 맥주도 인기를 끌고 있고, 다양한 맥주를 향한 사람들의 유구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결국 단 두개의 회사에 의해서 99%가 점령당한 한국의 맥주 시장을 바꾸고, 사람들에게 더 다양하고, 독특하고, 맛있는 맥주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미국 맥주가 맛있다든지, 독일이나 벨기에 맥주를 더 수입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큰 댐도 작은 균열에서 허물어지듯이 조금씩 작은 물고를 내야 하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만들어 마신다는 맥주의 레시피와 재료가 인터넷에 공개되어서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 청와대에서 술을 담궈 마시는 쿨한 대통령이 나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된 백악관 에일의 재료와 레시피)

[추가 내용]
몇몇 분들이 페북과 트위터로 맥주에 관한 법률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씀해 주셨다. 사실 이 점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법률 또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어야만 바뀔수 있다. 계속 다양한 맥주맛에 익숙해지는 소비자들이 더 다양한, 그리고 더 맛있는 맥주를 요구하게 되면 법률도 바뀔 것이다. 내가 예상하는 시나리오는 수입맥주의 비중이 최근 맥주시장 전체를 점점 더 잠식하기 시작함에 따라서 국산 맥주의 경쟁력에 대한 제고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전개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맥주에 대한 규제가 풀려야 한다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NOTE]

참고로 굿비어 공방이라는 카페에서 초보자들을 위한 홈브루잉 교육을 한다고 해서 참석할 예정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가보시길..

http://cafe.daum.net/goodbeerlab

“왜 한국은 맛 없는 맥주만 마실까?”의 6개의 생각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술 자체 보다는 맥주를 사랑하는 1人 으로서
    한국에도 맛있는 맥주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참 아쉽네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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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롯데마트에서 Indica 라는 IPA를 업어와서 시도해봤는데, 굿굿이었습니다. 추천드립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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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기 사진에 있는 필스너 우르켈은 한번 맛보셨나요? 요즘 마트(특히 이마트)에는 유럽산 맥주들도 많이 들어와 있는데 전 괜찮던데요. 미국 맥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맥주의 다양성이나 그 맛으로 보면 유럽산도 훌륭한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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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Lager가 Ale에 비해서 맛이 없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볼때는 크게 동의하진 않습니다. 다만 Lager가 대량생산 맥주이고 그만큼 대량보급이 잘되기에.. 사람들이 Lager의 형평일률적인 맛에 질려버린거죠. Lager가 맛없다기 보단, 너무 마셔서 질리니까 독특한 다양성들을 지닌 Ale에 더 끌린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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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도 미국에서 맛보던 다양한 맥주를 손쉽게 접했으면 좋겠어요
    이번 포스팅 맥주를 좋아하는 저에게 아주 굿입니다 ^^
    적어주신 곳은 꼭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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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한국 일본의 라거맥주는 쌀을 많이 사용하고 호프나 맥즙을 많이 사용하지않기때문에, 유럽의 라거(필스너)와는 다른종류의 맥주라 생각됩니다. 특히 아시아지역에서 많이먹는 드라이맥주는 특유의 신맛 등 풍미자체가 톡쏘는맛, 넘기는맛에 치중하기 때문이지요.
    벨기에의 주필레,스텔라, 그리고 기타 독일/체코의 필스너들은 각각 다른 풍미를 가지고 있고 모두 대량생산되는 맥주임에도 분명히 다른점이 느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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