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부터 17일까지 2박 3일간 일본 간사이 지역에 다녀왔다. 와이프의 일본 고베 출장에 가방이라도 들어주겠다고 따라나선 것이었다. 대신에 와이프가 바쁜 일이 끝나면 해야 할 나만의 Agenda도 있었다. 1) 고베 와규 먹기, 2) 일본 3대 마츠리 중의 하나로 교토에서 매년 7월 16, 17일에 열리는 기온 마츠리 보기 3) 일본의 3대 온천 중에 하나인 아리마 온센에 가서 온천물에 몸 담그기.
첫째 날 – 7월 15일
첫날 아침에 가볍게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와이프를 차에 태우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김포에서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인천보다 멀지 않아서 편했다. 공항 라운지에서 차와 과일을 즐길 여유도 있었고.
오후 4시 반 대한항공 비행기로 6시쯤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예전에 나도 출장으로 가끔 오던 곳인데, 확실히 일본은 몇 년 만에 와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마치 정체된 사회 같다.
도착하자마자 와이프는 컨퍼런스 콜이 있다면서 미팅에 잡혀 버렸다. 그래서 예전에 나와도 함께일했고, 이번에 같이 간 와이프 팀의 팀원들과 함께 ‘타지마야’ 라는 야키니꾸집에 갔다. 간만에 먹는 고베 와규였지만, 가게 안에 연기가 너무 자욱해서 먹으면서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둘째 날 – 7월 16일
아침. 결과적으로 배탈이 났다. 원인은 저녁 때 먹은 와규 때문인지, 아니면 공항 라운지에서 먹은 키위 때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먹는 순간에는 양쪽 모두 기분이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몸안에 있는 것들을 싸그리 비워내고 나니 좀 어지러웠지만 일단 물을 많이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 편의점으로 가서 포카리 스웨트나 아미노 워터 같은 류의 음료를 몇 개 사서 교토행 전차에 올랐다. 전차에서 홀짝홀짝 거리면서 한국에서 로밍해 온 아이폰으로 기온 마츠리에 대해서 검색을 해 봤다.
기온 마츠리는 일본의 3대 마츠리 중에 하나인데, 규모로는 일본 최대였다. 그리고 7월 한달 동안 내내 교토에서 벌어지는 마츠리로서 대단히 유명한 마츠리였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도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에 잘 안가는 것과 같이 일본 사람들도 교토의 기온 마츠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많지만 막상 가서 본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한다.
기온 마츠리는 간단히 말해서 교토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이 동네마다 가마를 만들어서 가마를 어깨에 지고 거리를 횡보 하는 행사였다. 정확하게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본도 과거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풍요의 기원과 조상에 대한 제사의 의미가 아닐까? 라는 것이 내 일본 친구 다이스케의 생각이었다.
다이스케는 내가 2002년 와세다 시절에 사귀게 된 친구이다. 와세다 교환학생 시절에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들과 일본인 와세다 상학부 학생들과 함께 섞여서 듣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 수업에서 나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걸어온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다이스케였다. 주변에 한국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 인사말을 외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그 후로 같이 수영을 다니기도 하다가 많이 친해지게 되었고, 나의 수영실력을 보더니 나에게 트라이애슬론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하기도 했다. 알고보니 그는 당시 대학 4학년이었는데, 2-3학년 시절에 트라이애슬론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것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나는 와세다의 ‘노스웨스트’라는 트라이애슬론 동아리에 들어가서 결국 레이스 완주도 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후에 내가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2006년 내가 P&G에 입사하기 직전에 가족들과 함께 도쿄여행을 간 적이 있었을 때 다시 재회하였다. 당시 조카들을 데리고 도쿄디즈니랜드에 가려고 간 것이었는데, 잠시 다이스케를 만나서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다시 4년이 흘러 나는 P&G를 퇴사하고 MBA를 가려고 하는 시점. 다이스케의 예전 이메일로 메일을 보냈더니 답장이 왔고, 마침 오사카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여 연락이 닿게 된 것이었다. 마침 기온 마츠리 시즌이니 함께 기온 마츠리를 보러 가자고 한 것도 다이스케의 아이디어였다.
어느덧 교토 역에 도착해서 다이스케에게 전화를 걸었다. 4년 만에 만난 그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현재 일본의 AICPA 학원에서 매니저로서 일하고 있었다. 주요 업무는 마케팅으로 일본인 중에서 AICPA 를 따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이었다. 특히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많이 만나는데, 지난 2년 동안 세계 구석구석을 안다닌 곳이 없다고 한다. 그곳에서 일본인들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을 나중에 나에게 많이 들려주었다.
일단 다이스케를 만나서 처음으로 간 곳은 니죠조(二條城) 라는 곳으로 과거 도쿠가와 막부에서 교토에서 사용하기 위한 성이다. 이곳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에도막부의 종말을 고하는 대정봉환(네이버 백과사전)이 일어난 곳이기도 했다. 다이스케의 친절한 설명으로 역사공부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금각사(wiki) 이었다. 2002년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간사이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공사중이라서 보지 못해서 이번 기회에 보기로 하고 온 것이었다.
다이스케와 근처 소바집에서 교토의 소바를 맛 보고 은각사(네이버 백과사전) 로 향했다. 원래 이 날은 일본도 장마인지라 하루종일 비가 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종일 날씨가 맑아서 다이스케가 나를 하레오토코(睛男) 라고 불렀다. 일본말로 하레는 맑은 날씨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긴카쿠지(은각사)에 들어서 대청마루에 앉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말 꼭 맞는 타이밍이었다. 대청마루에 한참 앉아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한참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긴카쿠지의 정원을 걸어다니면서 보니 이끼가 매우 아름다웠다. 어쩜 이렇게 이끼가 곱게 자라고 있을까? 몇십년 동안 너무나 평화로웠던 장소였음을 뽐내고 있는 듯 했다.
그 다음에는 헤이안진구(http://100.naver.com/100.nhn?docid=850153) 까지 보고 나서 기온 마츠리가 시작하는 야사카신사(http://100.naver.com/100.nhn?docid=848125) 로 향했다.
야사카 신사의 앞길이 바로 기온 마츠리가 행해지는 시죠이다. 사실 여기쯤 왔을 때 너무 지쳐서 우리는 교토의 명물인 부츠츠케를 먹으러 상점으로 들어갔다. 부츠츠케는 교토식 오차츠케인데, 교토에서는 부츠츠케를 먹으라는 뜻은 ‘당신 이미 우리집에 너무 오래 있었으니 그만 돌아가 달라’ 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가 숨겨진 음식이라서 호기심에 조금 먹어보았는데, 속이 좋지 않았음에도 꽤 맛이 좋았다. 오차쯔케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분명 좋아할만 한 음식이었다.
이 곳에서 다이스케와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제 중국의 시대가 왔다는 점이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인들과 이야기 해 본 다이스케의 결론은 곧 중국이 전 세계를 평정하고 일본도 별볼일 없어 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국 역시 비슷한 운명에 처해질 것임에 분명했다.
재미있는점은 그가 돌아다니면서 만난 싱가폴, 홍콩, 뉴욕, 시카고, 호놀루루, 영국 등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조차 자신들이 중화민족이라는 강한 의식을 갖고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비록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나름대로의 큰 커뮤니티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 무서운 점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이제 중국의 시대가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깐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류 역사에서 중국은 항상 중심에 있었고, 불과 19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의 예외적인 시대에 우리가 태어나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공상을 해 보았다.
나는 일본 친구와 만나서 일본어로 이런 심도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기뻤다. 그리고 세계가 돌아가는 트랜드에 대해서 동시대적인 감성을 공유하고 있는 점이 기뻤다.
가게를 나와서 마츠리 구경을 좀 더 하고 우리는 오사카 역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다이스케와 또 다시 언젠가 어디선가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셋째날 – 7월 17일
원래는 좀 미적미적 놀다가 온천이나 갈까? 라고 생각한 날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텔 데스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앞방에 묵고 있는 우리와 함께 온 PR 담당자가 너무 아파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방으로 가보니 그가 배를 움켜쥐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일행중에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나와 내 와이프가 응급차를 함께 타고 병원으로 따라갔다.
응급실에 들어가자 의사가 이것저것 문진을 했는데, 나와 와이프는 결석을 의심했다. 그가 너무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검사를 이것저것 해 봤는데, 다행히 결론적으로 결석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단순한 급성장염으로 2-3시간 진통제 맞고 쉬고 나니 그도 곧 괜찮아졌다.
온천 여행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응급실과 구급차에서 통역을 해 준 덕분에 나는 그에게 약간 ‘은인’ 처럼 포지셔닝이 됐다. 좀 쑥쓰러웠지만, 남을 도와줬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의 상태가 호전되어서 저녁에 같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다이내믹한 2박 3일의 간사이 여행이었다.
내가 다시 고베, 오사카, 교토 같은 간사이 지역을 여행할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이게 혹시 간사이에 오는 마지막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에는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