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조금 늦은’ 리뷰

7월에 미국에서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읽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8월에 한국에 왔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정치판이라는 곳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어서 불과 한 달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이 책이 올드(old)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제 서점을 들어갔다가 이 책을 보았다. 갑자기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는 제대로 알고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언론에서 너무 많이 다뤄서 나는 마치 이 책을 읽은 것 같은 착각마저 느끼게 되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내용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알고 있는 것 처럼 느끼게 만드는 현대의 미디어의 힘.

그래서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고,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을 잠시 덮어두고 ‘안철수의 생각’을 읽었다.

Source: YES24.com

Agree with 안철수의 생각

누군가가 ‘비판’ 했듯이 새로운 내용은 없다. 그런데 ‘새로운 것이 없다’ 라는 말이 왜 이 책의 비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제정임 교수가 안철수 교수에게 지금의 현안들에 대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한 것이고, 안교수는 거기에 답을 했다. 당연히 주제 면에서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안철수 교수는 스스로가 말했듯이 ‘지극히 상식적인’ 방식으로 그 주제들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힘들기에 주제 뿐 아니라 방법론적 측면에서도 새로울 것은 없으리라. 따라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이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은 그의 생각의 개론과 같은 성격이고, 행동을 하기에 앞서서 늘어놓은 계획에 가깝기에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부분도 이해는 된다. 250 페이지 정도의 책에 그의 모든 action plan을 옮길 수도 없는 것이기에 원칙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을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점에 대해서 충분히 discount를 주었다.

문제는 그 원칙들에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인데, 이데올로기라는 ‘지방’을 쏙 뺀 채로, 논리와 상식이라는 ‘근육’만으로 무장한 이 책의 내용들에 대해서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내 생각에는 안철수 교수의 가치라는 것은 이런 것인것 같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부정하면서 살 때가 많다. “바빠 죽겠다.”, “먹고살기 힘들다.” 와 같은 표현처럼 대부분 우리의 ‘생사(matter of life or death)’ 가 더 시급하므로, 당연하고 옳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면서 우리는 때로는 법을 무시하거나, 편법을 쓰기도 하고, 남에게 해를 입힐 때도 있다. 혹은, 꼭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가지 않더라도 ‘효율’ 이라거나 ‘성장’과 같은 가치를 앞세우며 그러한 가치들이 더 ‘시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교수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상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급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지만,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다시 매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과정이 바로 민주주의이며, 그 과정이 올바르게 이행되도록 하는 것이 국회와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은 너무 성인군자처럼 보여서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거나, 현실을 알면서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속물처럼 보이기 마련인데 안교수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그의 성공신화와 그 성공이 위험을 감수한 몇번의 커리어 체인지를 통해서 이뤄졌기 때문에 ‘허튼소리’로 들리지 않기 때문인것 같다. 발이 공중에 붕 떠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만약에 그가 출마를 하고 대통령이 된다면, 다른 것은 모르지만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논리의 점프가 많거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Disagree with 안철수의 생각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일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우선순위’나 ‘중요도’를 매기는 방식은 흔히 회사의 경영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에서는 이러한 ‘우선순위 정하기’의 방법이 잘 통한다. 의사결정체계에 따라서 누가 의사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지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매출이나 이익, 주주가치 실현, 종업원의 복지 등과 같이 비교적 결과치가 몇가지로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측정하기도 비교적 용이하다. 결정을 아무리 내리기 어려워도 시장 혹은 경쟁자가 우리의 결정을 종용할 때도 있고, 변화를 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게 만드는 외부의 힘이 얼마든지 있다.

‘정치’와 ‘행정’이 기업의 경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이유는 그 어느 이해당사자도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을 만큼 절박한 중요도와 우선순위라고 주장하는 저마다의 문제들이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각각의 이해당사자가 주장하는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라는 것이 저마다 정의(definition)이 다르고 측정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당장 결정해야 할 일이 없을 때도 있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봐도 되는 일들과 1년 이내에 결정하지 않으면 안될 일을 구분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많은 문제들이 그 문제의 성격 자체보다는 그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시계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순위’와 ‘중요도’를 정해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며’ ‘투명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옳은 이야기들이지만, 실행상에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철학과 방향성이 없이 ‘논리’와 ‘상식’ 혹은 시대적 요구만 가지고 정책이 결정 및 집행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는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순간 50:50 으로 어느 한쪽으로도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순간에 과연 무엇으로 일을 진행시킬 것인가?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의 많은 문제들은 서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지 아닌지조차 알기도 이전에 정부에서 알아서 일들을 결정해 버리는 것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논리와 상식으로 대화가 진행되는 프로세스가 실천될 수 있는 것 자체에 가치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후에 과연 결정이 어떻게 내려질 것인가? 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이 남았다.

나가며…

‘안철수의 생각’을 읽으면서 안철수 교수의 생각 자체에 대한 생각보다 더 클리어하게 깨달은 것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지난 5년간 우리는 ‘복지향상’, ‘남북관계 개선’, ‘행정과 사법제도 집행의 투명성’ 과 같이 우리 사회가 꼭 해결하고 넘어갔어야 할 몇가지 숙제를 하지 못하고, ‘부동산/건설을 통한 내수 부양’, ‘수출산업 지원을 통한 기업의 성장’, ‘효율적인 행정과 법 집행’과 같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만 달렸다는 것이다.

마치 초등학생이 중/고등학교를 가면 사칙연산을 넘어서서 미적분이나 확률/통계등을 공부해야 하는데, 계속 사칙연산만 꾸준히 연마한 것과 같은 느낌이다. 초등학교때까지는 사칙연산을 잘 하면 반에서 1등을 했기 때문에, 계속 학습지만 풀고 사칙연산을 갈고 닦은, 기형적인 고등학생이 되어 버렸다. 미적분을 공부한다고 해서 기본적인 덧셈 뺄셈을 손에서 놓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제는 더 상위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나아가서는 수학을 공학에 이용할 줄도 알고, 마켓 리서치에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했는데, 그 시기를 놓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세상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조금 늦었지만 다시 열심히 공부해서 따라잡으면 된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나올지 안나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생각이 책으로 나오고 많은 국민들이 그것에 공감을 표시하고, 그로 인해서 여러가지 담론들이 생겨난 것이 다음 정권에서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것들로 남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것만으로 안철수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예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누군가가 ‘노무현이 앞으로 대통령을 잘 하던지 못 하던지, 노무현이라는 캐릭터가 대통령이 된 과정과 그런 과정을 통해서 당선될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라고 말한 것을 떠오르게 한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왕 된거였다면 잘 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조금 늦은’ 리뷰”의 2개의 생각

  1. 동의합니다. 안철수가 진정한 국가의 리더가 될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연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를 보면 전투 경험이 없는 장교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실전 경험을 쌓고 나서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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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 책을 보고서 안철수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결국 자신이 안철수에 대해 갖고 있던 ‘믿음’ 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거죠. 저는 이 책을 안 읽는 것으로 안철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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