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미국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3권의 책을 읽었다.
2013년 한 해는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원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눈부신 성장이 있었다. 2012년 하반기에 이태원 경리단길 주변에 생긴 맥파이와 2013년 초에 생긴 더 부스(the booth)를 중심으로 한국 소비자들도 슬슬 크래프트 맥주 맛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일명 ‘부엉이 맥주’라고 알려진 히타치노 네스트, 그리고 그 이외에도 Rogue, Ballast Point, Anderson Valley 등 불과 1-2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좋은 quality의 수입 맥주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Brew Dog의 co-CEO 및 Ballast Point의 CEO가 한국을 방문하는가 하면,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벌어지는 Beer Festival 축제는 점점 커지기만 하고 있는 것 같다. 2014년 1월에 2013년 한 해 동안에 한국 맥주 시장에 생겼던 일들을 돌이켜보면 정말 1년 동안에 일어났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맥파이의 공동 창업자 4인방 (출처: http://m.mlounge.co.kr/read.html?menu=E&page=16&seq=4672)
2012년 가을에 귀국한 뒤로 나는 쭉 맥주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Bells, Founders, Great Lakes Brewery, Two Brothers, Three Floyds, Dogfish Head, New Belgium Brewery 등의 맥주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맛을 잊지 못해서 이태원 경리단길을 헤매고 다니다가 홈브루잉에도 흥미를 갖다가, 홈브루잉을 취미로 하는 미국 친구들도 사귀다가,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맥만동과 beerforum 등에서 여러 사람과 교류하면서 계속 맥주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산업도 80년대에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했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몇몇 브루어리들의 상업적으로 높은 효율성을 가져다주는 라거 일변도의 시장이 크래프트 맥주 붐이 일어나면서 다양해졌고, 다시 지난 20-30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옥석이 가려졌음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옥석’ 중에서 ‘옥’에 해당하는 몇몇 브루어리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아마도 Sierra Nevada, Dogfish Head, 그리고 Brooklyn Brewery 라는 점에 생각이 다다라서 이 세 브루어리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원래는 Stone Brewery에 대한 책도 읽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성격이 조금 다른 책이라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다른 세 권이 자신들의 브루어리에 대한 성공 스토리나 굴곡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에 반해서, Stone의 책은 브루어리 운영 및 맥주 제조에 대한 일반론적인 책이었다)

Beyond the Pale: The Story of Sierra Nevada Brewing Co.
Sierra Nevada 맥주 중에서 Pale Ale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이다. 그렇게 임팩트가 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정말 또 마시고 싶은 은근한 매력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어떻게해서 이런 맥주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Ken Grossman은 캘리포니아에서 자라서 Sierra Nevada 산으로의 하이킹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Chico라는 도시에서 자전거 수리공으로 일하던 그는, 취미로 행하던 홈브루잉에 대해서 더 전문적으로 해볼 생각을 갖게 되었고, Paul Camusi와 공동으로 브루어리를 창업하였다. 처음 수년 동안은 식구들의 돈을 끌어다 쓰면서 돈 한푼 못 벌고 계속 적자 브루어리를 운영하였지만,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맥주 중에 하나인 Pale Ale이 점차 명성을 얻어서 성공을 하게 된 케이스이다.
초창기에 Ken Grossman은 UC Davis의 양조학과 수업을 청강하면서 술의 기초 하나하나에 대해서 공부하는가 하면, 양조를 위해서 필요한 도구를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다. 그는 말 그래도 브루어리에 필요한 발효조, 당화조, 병입 기계 등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었다. 이 점이 Ken Grossman이 갖고 있던 맥주에 대한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가 발효조 하나하나도 철판을 구부려 가면서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아무리 적자가 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술들은 모두 버리면서까지 맥주의 완전성을 추구한다.
Sierra Nevada는 어느 한 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기 보다는 맥주 맛에 집중해서 서서히 명성을 쌓아 올려간 케이스이다. 그래서 성공에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그만큼 탄탄한 기반을 구축했다. 그리고 Chico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지역의 local 문화에 기반을 두고 단지 맥주를 비즈니스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적인 측면도 고려해서 접근했다는 점이 그들의 탄탄한 기반에 또 하나의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Sierra Nevada Brewery 의 위기는 의외로 내부의 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바로 공동 창업자인 Paul 과의 불화가 그것이다. 이 두 사람의 불화는 결국 법정 싸움으로 번졌고, 1998년에 Paul Camusi 가 그의 주식을 펀드에 모두 팔고 회사에서 손을 뗄때까지 계속 되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Sierra Nevada Brewing Company는 한 사람의 장인정신으로 한단계 한단계 성장한 회사였지만, 공동창업자와의 불화로 중간에 큰 위기를 겪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크래프트 맥주 사업이 단지 요리사들이 자신들의 요리에 대해서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한 장인정신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그 반례가 바로 Sierra Nevada였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Paul Camusi 와 법정싸움을 버리는 부분이나, brewery 의 capacity를 늘리기 위해서 많은 fund들과 투자의사결정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 부분에서는 경영학적인 지식을 전혀 갖지 않고 단지 craftsmanship만 가지고 운영하기에는 분명 어려운 부분이 많은 산업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Beer School: Bottling Success at the Brooklyn Brewery
Sierra Nevada와는 어쩌면 반대편에 있는 브루어리가 바로 Brooklyn Brewery 가 아닌가 생각된다. 브루클린 브루어리 역시 두 사람이 공동창업으로 생겨난 회사인데, 이 회사를 만든 두 사람 중에 한명은 기자, 다른 한명은 Columbia MBA를 졸업한 뒤에 은행에서 일하던 뱅커였다.
즉, 이 두 사람이 모여서 만든 회사는 처음부터 아주 business 적인 측면이 강조된 회사였으며, ‘크래프트 맥주’라는 아이템에 대한 열정보다는 어떤 아이템이 되었든지 비즈니스 자체에 대한 열정이 더 컸을 사람들이다. 이들 회사의 이름이 브루클린 브루어리지만, 이들은 창업 10년이 지나도록 맥주를 브루클린에서 만들지도 않았다. 단지 언젠가는 브루클린에서 맥주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만 보아도 이들이 얼마나 마케팅과 PR을 염두에 두고 회사를 운영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맥주 유통(distribution) 사업도 함께 전개했다. 즉, 맥주 양조만 하는 것 보다는 유통도 함께 하는 것이 더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유통했던 대표적인 맥주가 바로 Sierra Nevada Brewing Company의 맥주들이었다. 즉,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맥주에 집착하기보다는 어떤 맥주든지 좋은 맥주를 뉴욕을 비롯한 동부 지역에 공급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맥주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Ken Grossman의 Sierra Nevada이야기보다는 이 책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이 Beer School 인데, 책의 제목 그대로 이 책에는 맥주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들, 예컨대 사업계획서 쓰는 법,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방법, 기업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돈 안들고 마케팅을 해서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 등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두 창업자가 한명의 기자와 다른 한 명의 MBA 출신 뱅커라는 점에서 그런 것이 가능한 점도 있는 것 같지만, Brooklyn Brewery라는 기업 자체가 크래프트 맥주라는 아이템 자체에 대한 엄청난 열정 보다는 비즈니스 마인드 자체에 어느 정도 무게 중심을 둔 회사라는 점도 큰 것 같다.
아마도 한국에 크래프트 맥주 산업이 성장할 것을 감지하고 제주도에 Jespi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한국 시장에 진입한 것이 이들이라는 점도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고 나서 다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Brewing Up a Business: Adventures in Beer from the Founder of Dogfish Head Craft Brewer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바로 Dogfish Head의 창업자인 Sam Calagione 가 쓴 책이다. Dogfish Head는 어떻게 보면 Sierra Nevada보다도 더 craftsmanship으로 무장한 브루어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Sam Calagione 는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산업에서는 상징성이 있는 인물이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독특한 방식의 맥주 제조 방식과 상상도 할 수 없는 원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종종 뉴스를 타는 그는 얼마전에는 달에서 채취한 월석의 가루를 사용하여 맥주를 만들어서 뉴스를 타기도 했다. (관련기사: http://www.thedrinksbusiness.com/2013/10/dogfish-head-create-beer-with-moondust/)
Discovery Channel에서 제작한 Brew Masters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가 고대 이집트의 레시피를 복원하여 맥주를 제조하는 장면이나 페루에서 사람들이 씹던 옥수수를 뱉은 물로 만든 맥주를 상업적으로 만드는 장면 등이 나온다. 이 정도면 그의 맥주에 대한 삐뚤어진(?) 테이스트를 보여주는 예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브루어리의 특성을 반영하듯이 그는 자신의 기업에 남의 돈을 섞지 않고, 자신의 자본으로만 운영을 하고 있다. 기업 공개, 즉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을 극적으로 싫어하고 반대하는 것이 바로 Sam Calagione의 입장이다. 그렇게 해서는 훌륭한 맥주의 맛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게 장인정신을 끝까지 추구한다고 해서 망하란 법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Dogfish Head라고 할 수 있다.
나가며…
우리나라의 맥주 산업도 미국 맥주 산업과 닮은 점이 많다. 제도적으로 양조, 유통, 소매판매가 분리된 3 tier system이라는 점도 그렇고, 대규모 브루어리들이 라거 위주로 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그러하다.
80년대 초반의 미국 크래프트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지금의 한국 시장과 굉장히 유사한 점이 많다. 홈브루어들이 서서히 산업으로의 진입을 꿈꾸는 점도 그렇고, 대형 브루어리들이 이러한 움직임에 위기를 느끼고 에일 등의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를 조금씩 출시하는 점도 그러하다.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산업은 30년에 걸쳐서 옥석이 가려지는 과정을 서서히 겪었고, 그 과정에서 큰 자본들이 투입되기도 했고, Sam Adams 로 유명한 Boston Beer Company 처럼 엄청나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크래프트 맥주 회사가 나오기도 했다.
나의 생각에는 한국은 국가적인 특성을 볼 때도 그렇고, 크래프트 맥주 산업이 생성될 수 있는 법률개정이 뒤늦게 이루어진 것 만큼이나 옥석 가리기가 급속도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내년 한 해에는 수 많은 홈브루어 및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벌떼처럼 크래프트 맥주 산업에 뛰어들 것이고, 그 중에서 소수만이 성공의 열쇠를 거머쥘 것이다.
사실 나도 내년부터 어떻게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 산업이 전개될지 궁금한 마음에 이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세 권의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크래프트 맥주 사업에는 왕도는 없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비즈니스적으로 접근을 하던지, 아니면 굉장히 craftsmanship으로 접근을 하던지 간에 한 우물만 파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세 권을 모두 읽고 나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크래프트 맥주 사업도 역시나 맥주 사업이라서 대규모의 자본과 Capacity 및 utilization에 대한 control이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또 다른 것은 마케팅과 PR 활동의 중요성, 마지막으로 distribution(유통) 전략의 중요성 등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너무 크래프트 맥주 산업에 국한된 이야기라서 이 블로그에 부적합하거니와 이미 너무 긴 포스팅이 되어서 생략하고자 한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시고, 맛있는 맥주를 한잔 사신다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달려가도록 하겠다. (연락처 taekyung.kim@outlook.com)
재미있는 글 잘읽었습니다
현직 맥주회사 기획쪽에 있는 주니어입니다 ㅎ
추천해주신 책 꼭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크래프트 비어쪽에 관심도 있거니와
이쪽 사업 전망에 대해 꾸준히 문의하시는 지인도 있거든요
책 읽어보고 꼭 한번 컨택하도록 하겠습니다
맥주는 물론 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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