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누구의 정말 팬입니다.”라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TV에서 연예인들에게 ‘누구누구씨의 정말 팬이에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신기하기까지 하다. 누군가의 ‘진정한 팬’이 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기준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의 노래 혹은 연기 혹은 작품을 좋아하는 것과 팬이 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팬이면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알아야 할 정도로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걸까?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는 자신있게 누군가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인가 있다. 그들은 무라카미 하루키, 키스 자렛, 유희열, 김구라, 김정운 교수님 그리고 REM이다. 하루키, 키스자렛, 유희열, REM 은 고등학교때부터 좋아했으니, 거의 20년 가까이 되었고, 김구라는 10여년 가까이, 그리고 김정운 교수는 그나마 가장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이정도 기간을 그들의 글과 말과 노래를 꾸준히 좋아해 왔다고 하면 팬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오늘은 하루키에 대해서…

이번 주말에 스코틀랜드 여행을 다녀오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라는 책을 읽었다. 하루키의 책을 거의 다 읽었지만, 이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2015년 4월에 2판이 재발매 형식으로 나온것 같아서 읽게 되었다. 무려 1999년에 초판이 나온 책이다. (한국에서 이 책을 구매해서 가져다준 승엽이에게 다시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의 글은 소설도 재미있지만, 수필이나 여행기에서 그의 평상시의 말투나 생각이 더 잘 드러나서 더 흥미롭기도 하다. 평소에 만나는 사람들이나 가는 장소에 대해서 느끼는 그의 감상들을 아주 솔직하고 담백하게 쓰기 때문이다.
이 책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라는 책의 일본어 제목은 Henkyo Kinkyo (변경, 근경) 이다. 즉, 변경은 아주 멀고 낯선 다른 곳을 말하는 것이고, 근경은 가까운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미국, 멕시코, 만주, 몽고, 일본 등지를 오가면서 쓴 여행기가 망라되어 있기 때문에 “변경, 근경”이라는 책의 제목은 아주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루키 에세이 책의 제목은 보통 편집자들이 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 경우에는 하루키가 직접 짓지 않았을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을 보면 이 책의 제목에 깊은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렇게 누구나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어서 이젠 변경이라는 것이 없어져버렸고, 모험의 질도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탐험’이나 ‘비경’과 같은 말은 점점 진부해져서 현실적인 수준에서는 거의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TV에서는 지금도 ‘비경’ 어쩌고 하는 옛날식 타이틀을 붙인 방대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고지식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여행기를 쓰기에 그다지 행복한 시대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여행을 하는 행위의 본질이 여행자의 의식이 바뀌게끔 하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런 것을 반영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본질은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여행기라는 것이 가지는 본래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디어디에 갔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하고 재미와 신기함을 나열하듯 죽 늘어놓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읽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일상에 인접해 있는가?’ 하는 것을 (차례가 거꾸로 되더라도 좋으니까) 복합적으로 밝혀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도 또 정말 신선한 감동은 그런 지점에서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변경이 소멸한 시대라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 속에는 아직까지도 변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추구하고 확인하는 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그런 궁극적인 추구가 없다면, 설사 땅끝까지 간다고 해도 변경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다” – 서문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반성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 내가 이 블로그를 소홀하게 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최근에 하고 있는 일들을 제외하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변경에 살고 있으면서 근경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암스테르담에서 벌써 4개월 이상 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수 많은 곳들을 여행하고 있음에도 이 블로그를 소홀하게 했던 것에 큰 반성을 했다.
동시에 이 블로그 이외에 내가 집중하고 있는 블로그가 http://www.beertourist.kr 인데, 이 블로그에서는 하루키가 말한 것 처럼 ‘여기에 갔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 와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았던 것 같아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수많은 맥주 여행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그로 인해서 그 이후에 내가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잡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누구를 꼭 만나서 하루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꼽을 것이다. 만나서 맥주를 한잔 하고 싶은 사람도 하루키, 같이 조깅을 하고 싶은 사람도 하루키, 같이 책을 읽고 싶은 사람도 하루키. 그의 글로 인해서 많은 모티베이션과 자극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주저없이 바로 이야기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씨, 정말 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