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의 교훈 – 판단과 의지에 대하여…

 

나는 합리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해서 실패를 한 후에, ‘그것은 XYZ라는 이유로 애초의 계획 대비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사실상 실패라기 보다는 목표 달성으로 봐야 한다’라는 식으로 해석을 바꾸는 경우. 혹은 ‘비록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ABC라는 많은 교훈/배움 (learning)을 얻었기에 의미가 있었다’는 둥의 합리화를 매우 싫어하는 편이다.

실패는 실패.

그것 자체로 인정하지 않으면, 냉정하게 현실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합리화라는 것은 너무나 현실이 날카롭고 괴롭게 느껴질 때, 스스로를 살리고자 하는 자기보호의 한가지 방편이라고 믿는 편이다.

coldplay

글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 없지만… 감기니까..coldplay ㅋㅋ

1주일 간의 감기

한편, 나는 얼마전에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미련한 마음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아픈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좀 심했다. 이번 감기에 걸린 도중에 한번은 회사에서 식은 땀이 너무 나서 와이셔츠가 너무 무거워졌던 적도 한번 있었다.

그렇지만, 감기에 걸린 뒤에 다시 회복되고 나서,

그래도 푹 쉬었으니까 감기라는 것은 참 고마운 존재야….

따위의 합리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감기 기운이 슬슬 있을 때 상황판단을 잘 못하고 몸 간수를 잘 못한 것은 철저하게 내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감기 걸려서 병원가면 1주일 있다가 낫고, 병원 안가면 7일 있다가 낫는다는 농담이 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딱 1주일만에 감기가 나아서 오늘 슬슬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감기에 걸린 동안 나는 거의 아무일도 못했다. 많이 후회가 남는 1주일이었는데, 그 이유는 주변에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요즘은 좀처럼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1주일간의 교훈(learning)을 생각해보면

1. 감기 기운이 있을 땐 재빨리 소금물 가글을 하고, 약 먹고 자는게 나중에 항상제 주사 두대 맞는것 보다 낫다.
2. 감기 기운이 있을 땐 절대로 수영을 하지 않는다.
3. 감기에 걸렸을 땐 담배 연기가 많은 곳에 가지 않는다.
4. 감기가 심할 땐 회사에 하루쯤 휴가를 요청해도 좋다.

정도로 요약이 되는것 같았다.

감기의 교훈

그런데 위의 교훈들을 예전에는 몰랐느냐? 라고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다. 다 알던 것들이다. 써놓고 보면 낯이 뜨거울 정도로 당연한 것들이다. 저런 뻔한 사실들을 몰라서 감기를 키웠던거냐? 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을 정도로….

결국 중요한 것은 의지의 문제 + 판단력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과 스스로의 체력에 대한 과신이 낳은 결과였다.

 

컨설팅을 하다보면, 고객사에서 특정한 상황에 대한 룰이나 framework 혹은 행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원하실 때가 많다.

  • “A의 상황에서는 B를 실천하라”
  • “XYZ라는 상황에서는 가, 나, 다의 순서에 따라서 실천하라”,
  • “ABC 이슈가 닥치면, 갑은 무슨 일을 며칠 내로 하고, 을은 무슨일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정도의 실천 매뉴얼을 만들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 가정에 깔려 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만들다보면, 물론 때때로 아주 insightful한 것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고객사에서 ‘이런 당연한 것을…’이라고 말할 만한 것들도 나온다. 그럴때면 만든 사람도, 받는 사람도 겸연쩍은 상황이 된다.

물론 그런 가이드라인이나 룰을 정리해주는 것 만으로도 value를 만드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가이드라인이나 rule 이 아닌 것 같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룰을 실천하려는 의지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판단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런 룰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불명확한 정의는 엉뚱한 방향의 의지를 낳고, 결국 판단력을 흐린다. 반대로 판단력이 흐려지면 의지가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과욕이 원인이기도 하고, 과신이 원인이기도 하며, 때로는 부족한 자신감이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 두가지로 종합된다. 그것은 의지와 판단이다.

문득, 의지와 판단은 기업에서는 문화(직원들의 의지), CEO의 결단(리더의 판단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기 때문에 평소에 몰랐던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소에 못하던 생각을 할 시간은 좀 얻을 수 있었던 것 같긴 하다. 그래도 감기 따위에게 감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존심이 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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