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의 나이 또래인 내 주변에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트위터, 페이스북, 팟캐스트 등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문재인 후보가 지지율은 낮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이길 것이라는 막연한 분위기가 있었다.
나의 예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진짜 세상‘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이를테면 나는 영화 매트릭스처럼 특정한 구조 안에 갖혀 있고, 진짜 세상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선거를 한번 재구성해보기로 했다.
이 블로그가 정치 블로그는 아니지만, 간단한 데이터 분석으로 몇몇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기에, 이 블로그의 가치와도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대부분의 데이터는 통계청, 선관위, TNS 여론조사,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구했음을 미리 밝혀두며, 소스를 밝히지 않은 그래프들은 내가 직접 그렸다.
지역 패러다임 vs 세대 패러다임
먼거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선거가 지역대결의 패러다임이었던 것에 비해서 이번 선거부터는 세대간의 격차를 기반으로 한 세대 대결의 패러다임으로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가 일어난 점이다.
물론 호남에서 민주당에게 높은 득표율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호남의 인구는 선거에 영향을 크게 미칠 만큼의 인구가 아니다. 호남권 인구는 전체 유권자의 10.2% 를 차지했고, 이는 충청권 인구와 비슷한 수준, 그리고 수도권 대비 20%, 경상남북도를 합친 유권자 수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이렇게 낮은 인구 분포지역에서 90%이상의 지지를 받느냐 아니냐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체 유권자의 대부분이 모여 있는 수도권 지역에서의 세대별 지지가 더 큰 영향력을 지닌다.
아직까지도 많은 뉴스들이 대한민국 지도를 펴 놓고 지역별 유권자, 득표율 등을 비교하고 있지만, 이는 구시대적인 분석이거나, 너무 제한적인 분석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미국처럼 한두개 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주에서 인구가 비슷비슷한 수준이라면 이러한 시각화가 의미가 있겠지만, 수도권에 대부분의 인구가 몰려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분석이 (적어도 당분간은) 큰 의미가 없겠다.
결국 20-30대와 50대 이상의 대결에서 20-30대가 패한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블로그의 김동조씨는 ‘은퇴계층이 생산가능계층의 삶을 결정하는 구도’라고 한마디로 이번 선거를 통해서 드러난 20-30대의 좌절을 표현했다. (거의 모든것의 경제학: 선거의 결과) 즉, 20-30대가 열렬하게 지지하는 후보가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50-60대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될 수 밖에 없는 인구피라미드가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50-60대는 남은 여생을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세대이고, 20-30대는 구시대를 벗어난 변화를 갈망하는 세대라고 단순화해서 구분해보아도, 50-60대의 새누리 지지는 자명한 사실. 게다가 세대별 투표율을 보면 이런 사실은 더 재미있어진다.
20-30대 낮은 투표율이 민주당 패배의 원인인가?
그렇다면 구체적인 세대별 투표율은 어땠을까?
우리 모두가 놀랐듯이 국민 전체의 투표율은 약 75%로 매우 높았고,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기존의 관념 또한 무참히 깨져버렸다.
왜냐하면 높아도 너어~무 높았던 장년층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50대의 투표율은 괄목할만 하다. 무려 90%의 투표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20대의 낮은 투표율이 결국 문재인 후보에 대한 실질적 득표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0대가 평균 정도의 투표율만 보여줬더라도 약 60만표 정도를 문재인 후보가 더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30대 역시 평균만큼의 투표율을 보였더라면 약 20만표 정도를 문재인 후보에게 보탤 수 있었을 것이다. (각 연령대별 문재인 후보의 평균 지지율인 66%, 65% 를 가정). 20-30대의 투표율이 평균 수준만 되었더라도 생길 수 있었던 80만 표라는 득표수는 여전히 결과적으로 차이가 났던 100만표를 뒤집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결국은 50대의 높은 투표율이 박근혜 후보 승리의 원천일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이러한 현상을 보수 대결집 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인데, 나도 이에 대해서 동의하지만, 50대가 대부분 보수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떠했는가? 50대 중에서 약 2/3인 65%가 박근혜 후보를, 35% 정도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tns 출구 조사 결과)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60대 이상으로 옮겨가면 더 심해져서 75% 정도가 박근혜 후보를, 25% 정도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따라서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얻은 표 중에서 60%가 넘는 표를 50대 이상에서 가져왔고, 문재인 후보는 불과 28%만을 그 세대에서 조달하는데 그쳤다. 즉, 박근혜 후보는 장년층의 대통령으로 등극했고, 문재인 후보는 청년층의 대통령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결과는 장년층의 대통령이 바로 이 나라의 대통령이란 점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20-30대가 더 투표를 많이 했더라도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을 확률은 크지 않다. 다만 20-30대가 투표를 더 많이 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만약 문재인 후보가 50대 이상의 표를 조금만 더 가져왔더라도 이길 수 있었다는 뜻이다. 두가지가 병행되었어야만 이길 수 있었다. 혹은 20-30대가 평균을 상회하는 투표율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20-30대가 인터넷 상에서 말만 많고, 실제로 투표로 행동을 옮기지 않아서 패배했다고 생각하며 비난의 글을 올리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20-30대가 50-60대에 비해서 낮은 투표율을 보일 것을 몰랐던가? 20-30대는 선거일 하루의 휴일에 놀 일이 더 많은 세대이다. 연애도 해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하고, 심지어 일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20대는 정치에 관심이 크지 않다. 예컨대 반값 등록금 같은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토론 주제 중에 하나도 막상 대학 등록금을 내야 하는 20-30대에게 절실한 문제였다기 보다는 그 돈을 부담하는 50-60대에게 더 절실한 문제였다는 주장도 있다. 20대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낮다고 해서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메시지 전략 vs. 미디어 전략
주변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지인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이해가 안된다’ 라는 것이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트위터, 페이스북, 팟캐스트, 유튜브 등등 모든 미디어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우호적 메시지와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애초에 트위터, 팟캐스트, 유튜브 등이 발달한 동인 중에 하나는 바로 기존의 4대 매체에 대한 대안이 아니었던가? 신문/라디오/공중파TV/ 잡지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새롭게 태어난 곳 아닌가? 기존의 매체와 결별하고 새롭게 터전을 잡은 곳이었기 때문에 기존 매체에서 발붙일 수 없었던 나꼼수, 뉴스타파 같은 프로그램들이 자리를 잡았던 것이고, 그들은 50대 이상을 공략하기에 적합한 미디어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MBC, KBS의 보수화 경향은 더 심해졌기 때문에, 이 채널에 주로 노출되는 장년층이 더 보수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이 포스팅 초반에 언급한 매트릭스(matrix)안에 갖혀 버렸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소셜 미디어의 세계에 갖혀서 자신들의 메아리를 들으면서 자기 만족에 취해 있었던 젊은 세대, 진보 세대의 현실 인식 부족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인터넷 포스팅은 바로 “뱅뱅이론”이라는 포스팅이었다. (승리의 필수교양 – 뱅뱅이론) 즉, 20-30대 주변에서는 뱅뱅 청바지를 입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부분 외국의 청바지를 입지만, 전국적으로는 뱅뱅 청바지가 시장 점유율 1위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이번 선거의 결과에 빗댄 것이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론이며,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최근의 유행 트랜드 청바지는 트루진, 세븐진, 혹은 적어도 cK, 리바이스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전국적으로는 뱅뱅이 1위란다….
(이와 관련해서 정확한 통계 정보를 찾아봤으나, 인터넷에서는 정확한 국내 청바지 시장 점유율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공유해주시길…)
비슷한 비유로 경영학 쪽에서 흔히 드는 사례로는 전국 부동의 1위 패스트푸드 체인은 맥도날드가 아니라 롯데리아라는 이야기가 있다. 지방에 가면 맥도날드 점포는 가고 싶어도 없어서 못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우리나라에서는 롯데리아가 1위이고, 맥도날드는 만년 2위이다. 서울 강남이나 분당/일산 등의 지역에 살면서 맥도날드나 버거킹을 가끔 이용하는 20-30대 직장인들에게는 잘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fact는 롯데리아가 부동의 1등이라는 것이다.
(데이터는 없으나) 내 개인적인 gut feeling으로는 20-40대는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야기를 드러내서 할 사람들이 많지 않은 점도 문제이다. 그래서 대안매체인 인터넷, 페북, 트위터, 유튜브 등으로 모이고, 거기에서 자기들끼리 정치성향을 확인한다. 직장에서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 처럼 불편하고 어색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나만해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은 2-3명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장 동료와는 ‘선거 할꺼냐?’, ‘선거 했느냐’ 정도만 이야기할 뿐이다. 이정도의 인터렉션으로는 부동층의 정치색에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트윗, 페북, 유튜브 정도의 정치 정보는 매우 사실 확인이 어려울 뿐 아니라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부분도 많아서, entertaining 하기는 하지만, 정치 성향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50-60대는 대부분 은퇴세대이거나, 그 나이또래까지 친한 사람들 간에는 정치색이 비슷한 무리가 많은 것 같다. 연령에서 비롯되는 보수 성향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모임이 오프라인 모임이고, 또한 비슷한 정치색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그 안에서 자신의 정치색을 고고하게 지키기는 어렵다. 혹은 정치색이 없더라도 주변인들의 정치 성향을 따라가게 된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에 오시는 아주머님들은 선거 전에도 수영장에서 박근혜를 대놓고 지지하셨다. 젊은 사람들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적극성이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으나, 만약 그 아주머니들 틈에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부동표가 섞여 있었다면, 그분은 과연 끝까지 주변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쯤되면 문제는 어떤 메시지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느냐? 라는 것이 아니라, 과연 어떤 채널로 접근해야만 진보세력이 접근할 수 없었던 50대 이상의 세대에게 설득력있는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겠느냐? 라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메세지를 통해서 사람들을 설득할 것인가? 였다기보다는 어떤 채널로 접근했어야 했는가? 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Segmentation & Positioning
(잠깐 이 블로그의 원래 성격으로 돌아와서) 세그멘테이션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마케팅 실무에서 세그멘테이션을 하는 이유는 세그멘테이션으로 인한 결과분석물에 대해서 action을 할 수 있다는 전제로 한다. 하지만 지역별, 메시지별 세그멘테이션이라는 구시대의 프레임으로는 세대별, 채널별 세그멘테이션을 이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표심을 추가로 가져올 수 있는 특정의 action을 취하기도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새누리당이 엄청나게 소셜 미디어에 공을 들인 것은 맞는 전략이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십알단과 같은 약간의 인위적이고, 불법적 요소가 있었다고 해도, 새누리당이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공세를 했다는 것은 그 채널의 유권자를 끌어오기 위함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이러한 변칙적인 소셜 미디어 활용에 대해서 흥분하기만 했지, 도대체 어떤 대응을 했냐고 물어보면 딱히 대답히기 어렵다. 어차피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20-30대가 민주당 지지층이었다면, 새누리당이 소셜 미디어에서 변칙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 아니 더 나아가 불법적인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아무리 까발려도 민주당에게 incremental vote (추가적 득표)로 돌아오지 않는다.
상대방의 텃밭에 과감하게 들어가서 그 언저리에서 아직 자신의 표심을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를 잡았어야 했다. 오프라인으로 강력하게 더 드라이브를 걸었어야 했다는 말이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위주로 20-30대의 지지를 받는 후보라는 포지셔닝은 광범위한 유권자를 포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정희 & 안철수
이번 선거는 보수 쪽에서는 강력하게 밀고 있는 후보가 초지일관 있었고, 진보 진영에서는 끝까지 엎치락 뒷치락 했다. 따라서 진보 진영의 색깔이 명확하게 정립되기는 어려웠는데, 이런 경우 흠을 잡힐 짓을 하면 안된다.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서 이미지가 형성된 후보입장에서는 몇몇 네거티브 이슈가 있어도 수 많은 다른 히스토리 속에 묻힐 수 있지만, 불과 1-2년만에 대중에게 부각된 인물에게는 작은 흠 하나라도 큰 히스토리로 남는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이정희 후보의 TV 토론 사건이다. 두번의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가 보여준 공격적인 태도는 50-60대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고, 게다가 막판에 사퇴를 함으로 인해서 이러한 네거티브한 이미지는 그대로 문재인 후보에게 전이되었다. 이른바 ‘보수 원기옥’이라고 불리우는 이 현상이 나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변수였다고 생각하며, 한국 갤럽의 대표도 매경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내가 투표를 하러 간 곳에서도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주부님들이 왜 이정희는 27억을 뱉어내지 않느냐고 한참을 떠드셨다.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러 다른 경로를 통해서 언급되었으므로 굳이 길게 언급하지 않겠으나, 단일화는 문재인 후보에게 있어서 최대한 활용해야 했을 모멘텀이었다. 그 부분을 그냥 흘려보내고 나서 성공을 기원하기는 어려웠다.
경영실무의 브랜딩에서 장기적으로 한 브랜드 빌딩(brand building)에 힘쓰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어린 브랜드는 한두번의 네거티브 PR 이슈에도 죽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수십년을 버텨온 브랜드는 그만큼 소비자들 맘 속에서 신뢰라는 재고(trust stock)을 쌓기 때문에 몇번의 negative PR issue가 있어도 죽지 않는다. 동시에 대형 브랜드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초고속 성장을 하는 시기가 한번쯤은 필요하다. 이것을 모멘텀이라고 한다. 안철수가 문재인에게는 모멘텀이었다. 경영학적인 마케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문재인 캠프에 있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진보의 숙제
진보는 항상 논리와 fact를 중시했다. 새누리와 보수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한다면서,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fact 기반의 반박과 논리적 호소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누가 봐도 이런 fact와 로직이 통하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의 토론 실력은 냉정하게 말해서 수준 이하이고, FACT로만 놓고 보자면 지난 5년간 많은 실정을 거듭한 새누리당에게 유리할 것은 별로 없다.
하지만 크게 흠잡히지 않고, 꾸준하게 브랜드를 가꿔온 박근혜 후보에게 또 한번 고배를 마시고 만 민주당은, 노무현때처럼 불과 선거 1년 전에 ‘당내 경선 돌풍’ 같은 것으로 한탕을 노리기보다는 꾸준한 이미지의 한사람을 가꿔야 한다. (그럴 사람이 있는지는 다른 문제지만…)
그런데 진보의 문제는 과연 그들이 Fact 만을 기반으로 했는가? 라는 점이다. 나꼼수 등의 일부 대안미디어만을 가지고 공중파와 조중동의 거대 언론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다. 특히 정보 수집능력과 전파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가설과 가정을 내세운 음모론이었다. A는 B이고, B는 C 이므로, A는 D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논리는 100개, 1000개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거대 채널에서의 한 방이 없었다.
민주당은 논리와 fact 를 기반으로 한 메세지 싸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안철수/이정희 변수에서 저지른 바와 같은 크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 가꾸거나, 그러한 상황에서의 유연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참모진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봤지만, 사람들은 논리에 따라서 투표하지 않는다. 육영수 여사가 생각나서, 어린 것이 부모를 잃고 얼마나 고생했을지 안쓰러워서, 박정희때가 살기 좋았다는 생각에 투표한 할머니 분들을 나는 주변에서 여럿 보았다. 이러한 투표성향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서,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매트릭스가 전부가아니라는 잔인한 진실(brutal truth)를 진보 진영에서는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의 숙제
지난번 포스팅인 “18대 대통령 선거, 끝나도 잊어서는 안될 3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도 밝혔지만, 우리나라의 양극화는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가 선출하는 당선자라는 사람은 50%의 국민이 열렬하게 지지했고, 나머지 50%가 열렬하게 반대했던 누군가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선거를 통해서 당선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그녀가 충분히 자기 역량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방법은 둘 중에 하나인데, 1) 박근혜 당선자가 수 많은 야당 인사를 끌어들여서 새로운 정부에 참여시키던지, 아니면 2) 민주당 쪽에서 박근혜 당선자에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 수준 및 역사를 보건대 2)번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마도 인수위원회와 주요 인사들이 발표되면, 민주당에서는 선거패배의 수모를 만회하려는 차원에서라도 엄청나게 엄격한 잣대로 박근혜 정부를 옭아 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녀가 지금 주장하는 ‘탕평’의 정신을 살려서, 많은 진보인사들에게 기회를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근혜 지지다들도 그녀 스스로가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해서 지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민주당/노무현 세력이 미덥지 못하거나, 새누리/박근혜 진영이 아무래도 경험이 더 많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 특히 시스템이나 팀의 수준은 새누리가 더 우월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니, 박근혜 당선자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기 보다는 참모들에게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그녀도 살고 국민도 사는 길일 것이다.
그러한 참모들 중에서 진보 인사가 얼마나 반영되어서 행정부가 꾸려지는가? 기존 보수세력과 선거의 공신들에 대한 치하와 진보 인사의 중용 사이에서 어떤 밸런스를 유지하는가가 바로 그녀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