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ㄴ’이 붙어 버린 후…, 故 김광석 16주기에 떠오른 그의 모습

중학교때 김광석의 콘서트를 처음으로 갔다. 친구들 모두 서태지나 듀스를 듣는 어린나이였지만, 왜 그랬는지 10살 위 형과 8살 위 누나를 둔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동물원’을 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김광석의 노래는 심금을 울리는 매력이 있었다. 대학로나 덕수궁 근처의 작은 소극장에서 듣는 그의 노래는 어린 나이의 나에게도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점이 있었다.

‘서른 즈음에’를 발표한 기념공연도 갔었다. 김광석은 자신도 이제 나이에 ‘니은(ㄴ)’ 이 붙는 나이가 되었다면서 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 공연에서 나와 내 친구는 자리가 없어서 맨 앞자리에 방석을 깔고 이른바 ‘보조석’에 앉았던 기억이 있다. 김광석이 우리를 보고 물었다.

‘너희는 몇살?’

공연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서른이라는 나이는 정말 까막득해 보이는 나이였다. 그리고 ‘서른 즈음에’라는 그의 노래가 워낙 차분하고 어두운 노래였기 때문에, 나는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마저도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어느덧 나이에 ‘ㄴ’이 붙은지도 몇년이 지났고, 두려움은 익숙함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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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은 노래 중간에 나즈막한 목소리로 ‘토크’도 자주 하곤 했다. 그의 어두운 노래들과는 달리, 그는 굉장히 웃기고 위트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한번은 그의 공연에서 맨 뒤에 어떤 사람이 케익에 불을 붙여서 앞으로 전달한 적도 있었다. 그의 생일이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그런 관객과 가수의 따뜻한 관계를 경험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문화충격이었다. 조용하고 작고 어두운 소극장에 맨 뒤부터 불이 켜진 케익이 전달되던 그 모습은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한번은 맨 앞줄 보조석에 앉은 어떤 관객이 갑자기 무대위로 올라가 김광석에게 꽃을 건네주더니 무대 뒤쪽으로 후다닥 나간 일도 있었다. 김광석은 나중에 그 사람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말해 주었다. 워낙 만석인데다가 소극장 공연이라서 통로에까지 방석을 깔고 앉은 사람들로 가득했기에, 그 관객은 그런 ‘꼼수’를 쓴 것이었다.

아무튼 김광석의 공연장은 그런 즐겁고, 따뜻한 이벤트들이 가득한 그런 곳이었다.

그의 공연에 게스트로 자주 나오던 사람들 중에서도 지금 기억나는 사람들은 이은미, 일기예보이다. 당시에 무명이였지만, 이은미는 노래를 너무 잘해서 계속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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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가면 대학축제라는 것이 있고, 그런 대학 축제에는 김광석이 꼭 온다는 사실을 알던 나에게는 대학에 가서 축제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 것이 하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고등학교때 들려온 그의 죽음 소식으로 영원히 실현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는 없었지만, 나는 대학을 갔다. 언젠가 고등학교 동창들과 고대앞에 있는 파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그 파전집 한 테이블의 어떤 사람이 ‘사랑했지만’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한 소절 한 소절 노래가 진행될 때마다 한두명씩 따라부르기 시작해서 후렴부에 가서는 그 집 안에 있던 사람 모두 같이 불렀다.

나에게는 그의 노래들과 관련해서 그런 따뜻함이 묻어 있는 추억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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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래가사들이 모두 좋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가사는 바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라는 노래였다. 맨 마지막 가사중에서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너를 사랑해’ 라는 가사가 가장 좋았다.

오늘은 블로그의 주제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를 적었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

“나이에 ‘ㄴ’이 붙어 버린 후…, 故 김광석 16주기에 떠오른 그의 모습”에 대한 한 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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