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일찍 Target에 갔다. 생활용품들이 떨어져서 사러 간 것이었다. 아무래도 전에 일하던 회사가 P&G이다보니, Target같은 수퍼마켓에 가도, 좀 더 유심히 보는 편이고, 마케팅 하던 사람 입장에서 많이 보게 된다.
최근에 본 것 중에서 좀 특이하다 싶었던 것은 바로 사진에 나온 Old Spice 의 프로모션 팩이었다. (참고로 올드 스파이스는 한국에서는 한때 론칭했다가 잘 안되었지만, 미국에서는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남성용 body care브랜드이다. 작년에 엄청나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old spice광고는 아래 첨부) 미국에서는 그냥 bundle pack 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튼 한국 시장에서는 이미 이러한 promotion pack 들이 대세이다. 한국에선 특히 샴푸나 생리대, 세제 등의 카테고리에서는 이제 더 이상 프로모션 팩이 아니고서는 shelving조차 확보하기 힘든게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는 아직도 대부분의 카테고리에서 프로모션 팩은 별로 성행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에 이런 프로모션팩이 소비자들의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고, 포장지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낸다는 이유 등으로 많이 자제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 소비자들 입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골고루 담아주면서 가격까지 깎아주는 이런 프로모션 팩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에, 그리고 대형 마트들의 매출을 유지하려는 이유 때문에, 프로모션은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미국에서 온 P&G의 영업부문 상무 한명은 한국은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같다면서 한국의 이런 프로모션팩 중심의 쇼핑 문화에 대해서 감탄(?) 한 적도 있었다.
사실 마케터 입장에서는 이런 프로모션팩이 달갑지 않다. 마케팅 아무리 이것저것 잘 해 봤자, 프로모션팩으로 인한 가격경쟁으로 승부가 결정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행사 매대에다가 가격 많이 깎아주는 프로모션 팩을 내놓으면, 브랜드 로열티 따위는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단어가 되어버린다. 마트에 가는 소비자들은 기본적으로 싼 제품을 사러 가는 것이므로, 한푼이라도 더 싸게 파는 제품을 사게 마련인 것이다.
사실 오늘 최근에 Old Spice와 Nivea에서 나온 남성용 body wash + deodorant + body spray 등이 담긴 이 프로모션 팩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거 이러다가 미국 소비자들도 프로모션팩에 길들여지는거 아닌가?, 혹은 내가 혹시 미국 소비자들이 단품구매에서 프로모션 팩 구매로 옮겨가는 소비행태의 중요한 변화의 시점을 목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나의 의견에는 별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프로모션 팩이 별로 유행하지 않는데에는 미국 소비자들의 shopping behavior 자체가 한국과는 좀 다른것 같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가장 잘 나가는 프로모션 팩은 같은 제품을 더 주는 것이다. 원래 프로모션 팩은 샴푸+린스+에센스를 같이 묶어 줘서 사람들이 이것저것 써보게 하려는 의도에서 생긴 것이지만, 스마트한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샴푸+샴푸+샴푸 같은 프로모션 팩을 선호한다. 그런데 미국에 와보니 제품 자체의 용량이 커서, 프로모션 팩을 굳이 만들지 않아도 충분히 대용량 제품들이 많이 있다. 즉, 대용량 단품 제품들이 이미 잘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소비자같으면 ‘저렇게 큰걸 사다가 언제 다 쓰냐?; 라고 생각할 만한 물건들이 많아서, 차라리 그 제품에 가격 할인을 하는게 효과가 크다.
두번째 이유는 미국 소비자들의 segmentation이 훨씬 다양하고, SKU의 숫자도 훨신 많아서, 프로모션팩의 composition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기호는 상대적으로 덜 다양해서, 잘 나갈만한 프로모션 팩을 몇개 만들면 그들의 efficiency를 최대화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customization을 좋아한다. 따라서 자신의 기호대로 골라 담기를 좋아하는데, 미리 상자에 들어있는 이런 제품들은 가격을 좀 싸게 해준다고 해도 별로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한국 마트에서 유행하는 골라담기 (미리 바코드가 박힌 비닐 봉투나 패키지를 주고, 과자나 칫솔 등을 알아서 골라담게 하는 방법)는 충분히 미국 마트에서도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세번째 이유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간의 경쟁구도이다. 미국은 우리동네만해도 Walmart, Target, Jewel Osco, Cost Co, Whole Foods Market 등의 포지셔닝이 조금씩 다르게 잡혀 있고, 이들간에 segmentation도 약간씩 다르다. 위에 말한 곳들은 단순히 grocery shop들만 말한것이고, 문구나 전자제품 등으로 넓히면 그 segment 별 retailer는 훨신 다양해 진다. 하지만 한국은 몇 안되는 사람들이 너무 한-두가지 segment에 몰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들을 놓고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박터지는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가장 효과적/효율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수단으로 프로모션 팩이 등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들의 선호와 기호가 점점 다양해지고, 더 많은 category killer가 나오면 이런 현상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기호가 가장 중요하고, 어떤것이 옳고 그른것은 없다. 하지만, 한국의 마켓이 좀 더 가격경쟁이 심하고,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를 쥐어 짜는 구조인 것 같다. 반면 미국의 소비자들은 좀 더 고분고분하고 유통업체나 제조업체의 메시지에 좀 더 순진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소비자들이 더 경쟁적으로 바뀐다고 해도 마트에서 프로모션 팩을 까면서 샴푸+샴푸+린스를 샴푸+샴푸+샴푸로 바꿔달라든지, 칫솔 3+1 팩에 하나 더 테이프로 묶어 달라든지 하는 한국 아주머니들의 넉살 좋은 negotiation skill은 미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것 같다.
개인적으로 Single pack위주의 마켓이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두번째 이유는 마켓의 다양성이다. 싸게 묶어 놓은 것들 말고 이것저것 써보고자 하는 마음이, 프로모션팩 일색인 시장에 가서는 잘 생기지 않는다. 무조건 제일 싼것 사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뭘 권하겠는가?
얼마전에 어떤 컨설팅 회사의 파트너분과의 저녁자리에서 미국과 유럽의 회사들이 처음 만들어 놓은 아이디어들이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 오면 가장 efficient 하면서 competitive 형태로 바뀌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프로모션 팩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