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이 검은색 옷을 많이 입는 현상은 올해 나를 가장 신경쓰이게 한 사회 현상중에 하나이다. 나는 이 현상이 비교적 최근에 급격하게 벌어진 일이라고 확신한다.
어렸을 때 위아래로 검은색 옷을 입고 나가려고 한 적이 있다. 울 어머니가 그런 나를 보고 ‘누가 죽었냐?’라면서 위아래 검은 옷은 아무때나 입는게 아니라며 입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 위아래로 검은색은 옛날 세대 사람들에게는 상갓집을 연상시키나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어렸을 때 기억이지만 너무 선명한 기억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검은색 옷을 선호하는 현상은 최근에 급격히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40년대 태생인 우리 어머니 세대는 퇴장했고, 새로운 시대는 이미 와 있다.
(실제로 레딧 같은 곳에도 한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까만옷, 하얀옷에 집착하는지 묻는 글이 등장한 것도 2년 쯤 전이다. 그에 대한 외국인들의 답변도 대부분 ‘튀기 싫어서’ ‘무난해서’ 등 한국인의 보수적 성향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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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이 현상을 눈치 챈 것은 재작년 겨울 쯤에 내가 다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였다. 그 곳에는 외투걸이가 탈의실 밖에 있다. 사물함이 작기도 하고, 겨울에는 옷들이 부피가 워낙 크니까. 나도 옷걸이에 옷을 걸어 놓으려고 했는데, 거의 80% 이상의 사람들이 검은색 아우터를 입고 온 것 같았다. 비슷한 옷이 너무 많아서 다른 사람의 옷을 실수로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는 경고문구도 있었다. 모두가 맞춘 듯이 검은색을 입고 온 느낌이었다. 당시에 나는 약간 오렌지색 파카를 입고 있었는데, 나 혼자만 튀는 느낌이었다.
외투 뿐 아니라 운동복도 가장 인기 있는 색은 검은색인 것 같았다. 내가 가는 피트니스 센터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많이 입는 옷은 검은색이다. 운동복을 사러 아울렛이나 백화점에 가면 가장 많이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컬러는 검은색이었다. 한강에 뛰러 나가도 마찬가지. 가장 인기 있는 운동복 색상은 검은색이 분명했다. 가을에 미국에 갔을 때 스포츠용품 매장에 가서 가장 놀란 것은 색의 다채로움이었다. 그러면서 이게 뭔가 ‘최근에 대한민국에서’ 생긴 현상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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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일종의 집착이 생겼다. 거리를 걸을 때 은근히 검은 옷을 세어보는 것이다.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습관처럼 세어 보기도 한다. 10명 중에서 몇명이나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지… 카페에 앉아서도 사람들의 옷차림을 관찰한다. 스타일이나 브랜드가 관심사가 아니다. 그냥 검은색이 있나 둘러본다. 러닝을 할 때도 사람들이 무슨 색을 입었나 세어본다. 앞으로 마주치는 10명을 카운트 해 보는 것이다.
내 경험상으로는 대략 10명을 거리에서 마주치면 6~7명 정도가 상의 또는 하의 중에 하나는 검은색 옷을 입는다. 심지어 위/아래 모두 검은색인 경우도 10명중 2-3명 정도는 된다. 커플이 같이 검은색으로 위아래를 입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검은색 상하의와 검은색 운동화, 검은색 가방, 그리고 검은색 안경테까지도 쓴 사람도 간혹 마주친다.
의류 업계에 있는 지인에게 물어봤다. 업계 사람들이 볼 때는 거의 80%의 옷은 검은색으로 팔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다른 컬러를 만드는게 그다지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느껴질 정도란다. 어차피 다 검은색을 고르는거다. 그리고 의류업계에서는 그렇게 위/아래 모두 검은색 옷을 입는 사람들을 ‘까마귀’라고 부른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까마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아침마다 같은 색을 선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다. Group thinking의 일종은 아닐까 의심될 정도이다. 인간들은 저마다 취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다양한 존재들인데… 어떻게 이렇게도 일관되게 같은 결정을, 이토록 대규모의 사람들이 매일 아침 내리는 것일까? 인간에게 다양성이라는 것은 중요하다는데, 21세기 대한민국은 다양성 따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따귀를 때려주는 느낌이었다. ‘이 나라는 효율성의 나라야, 줄맞춰’ 같은 보이스오버까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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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물어보면 귀찮아서, 무난해서, 때 안타서, 유행 안타서 등등의 이야기가 제일 많이 나온다. 혹자는 미세먼지가 많아서, 도시에서는 공기가 탁해서 밝은 색이 안 이쁘니까, 검은색이 고급스러워 보여서 등의 이유를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많ㅇ느 사람들이 같은 색의 옷을 입는 것에는 사회적인 넛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튀면 안된다는 압박이건, 아니면 소속감이건, 무엇이 됐던간에 말이다.
1년 넘게 사람들의 옷차림을 관찰해 온 나름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거의 높은 확률로 검은색으로 위아래를 입는 사람들 집단 또는 특정한 상황도 있다.
내 관찰 결과로 확률이 가장 높은 경우는 중고등학생들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특히 겨울에는 까마귀로 변신한다. 학교에서 너무 튀는 색깔을 못 입게 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친구들 사이에서 튀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험하게 놀다보면 때가 타서 그런건지, 마크 주커버그처럼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옷 색깔이나 디자인을 선택하는 에너지마저 아까워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학생들일수록 검은 옷의 비율이 높았다.
그 다음은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이다. 요식업 종사자 중에서도 주방으로 갈 수록 특히 검은색 유니폼을 많이 입는 것 같았다. 고급 레스토랑의 쉐프들은 하얀색을 입는 것과 아주 대조적으로 대중적인 식당의 주방에 일하는 친구들은 거의 99% 검은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신발도 검은색을 신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주방은 다양한 식자재를 쓰니까 그런 것들이 옷에 묻으면 쉽게 더러워질 수도 있으니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식당 주변에서 이 친구들이 일을 쉴 때나 담배를 피우거나 할때 보면 외투 또한 검은색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위아래로 검은색 옷을 입으면 딱히 입을만한 색상의 아우터가 없긴 하다. 자연스럽게 외투도 검게 가겠지…
앞서 언급한대로 운동복도 정말 높은 확률로 검은색이다. 겨울이 될 수록 그 확률은 더 높아진다. 옷이 두꺼워질 수록 그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현상에 뭔가 법칙이 있는건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냥 검은색 옷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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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검은색을 잘 입지 않는 경우를 찾아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은색을 입지만, 그래도 검은색을 잘 입지 않는 경우는 언제일지 말이다. 때로는 (식당을 제외하고) 물건을 파는 상점 종업원들이 검은색을 입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유니폼이 검은색이 아니라서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고르라고 하면 다 같이 검은색을 고르고, 강제로 입힐 때만 색이 화려한 옷을 입게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다음으로 검은색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는 주말에 등산하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반대로 이 사람들은 어찌나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입는지 눈이 부실 정도이다. 우리집 주변에 아차산이 있어서 주말에는 심심치 않게 등산객을 볼 수 있었는데, 이분들은 모두 빨강 주황 초록 노랑 파랑 등 밝고 화려한 옷을 입고 산에 오른다.
연령의 탓도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너무 검고 칙칙하게 입는 것을 피하시는 것 같기는 하다.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은 좀 화려한 색상으로 멋을 낸다. 어쩌면 이분들이야 말로 이제는 조직을 떠나서 누구의 눈치를 볼 일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 반대로 아주 어린 아이들은 부모들이 검은색을 잘 입히지 않는다. 다채롭고 알록달록하게 입힌다. 초등학생까지는 거의 검은색을 입히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검은색 유행의 일면에는 분명 ‘단체생활’이라는 전제가 있고, ‘남의 시선’ 같은 것도 하나의 변수로 작용하기는 하는거다. 점점 범인이 보이는 추리소설의 후반부처럼, 이 현상의 원인들이 유주얼 서스펙트 처럼 용의자 선상에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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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검은색이라고 다 같은 검은색은 아니다. 자세히 보면 검은색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질감도 반짝반짝한 것도 있고, 약간 회색빛이 도는 검은색도 있고, 코듀로이 검은색도 있어서 잘 봐야 한다. 어렸을 때 봤던 섹스앤더씨티 영화판에서 중동의 어느 나라에 간 주인공들이 그 나라의 여성들은 다 똑같은 부르카를 입는다고 생각했다가 알고보니 그 검은 부르카 안에는 온갖 장식품과 치장은 물론이고, 부르카 브랜드도 모두 다른 것을 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 문화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종교적, 사회적 압박 때문에 검은색을 입을 지 모르지만, 나름대로의 차별화 포인트를 생성해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대기업의 본사 주차장에 간 적이 있었다. 지하 2층인가는 임원 전용층이었는데, 모든 차들이 검은색이었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이었다. 어떻게 모든 차들이 검은색일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회사 정책상 임원들은 검은색 승용차를 타야 한다는 룰이 있었던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차량을 식별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작은 장치들을 하거나, 차 유리창 등에 스티커를 붙여 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적인 프레셔는 있지만, 그 안에서 차별화가 필요한 상황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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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는 까마귀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과 매일 똑같은 선택을 하고 그들에게 blend-in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특히나 검은색으로 위아래를 입고 나가면 너무 마음이 불편했다. 나 자신이 사라져버리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한방향으로 흘러가는 도도한 흐름에 반발하고 싶은 영웅심적 반항심이라고나 할까? 나는 절대로 까마귀가 되지 않을꺼야.. 라는 생각으로 일부러 오렌지색, 녹색, 흰색 외투를 입었다.
그러다가 누군가로부터 검은색 니트를 선물로 받았다. 클라이언트 행사를 갔다가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었는데, 유니클로 캐시미어 제품이었다. 입어보니 너무 편하고 마음에 들어서 자주 입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나도 위아래 검은 옷을 입고 나가는 경우가 가끔 생겼다. 그럴 때면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마치 이 거대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아무도 모르는 nobody가 되었지만, 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한 무리에 속한 것 같은 일체감과 소속감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다들 이 맛에 까마귀 떼에 뛰어드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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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에 여러가지 이슈가 터졌다고 해서 댓글창을 들여다봤다.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그러니까 나대면 안된다’라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사람들의 무의식속에 ‘나댐 = 나락’ 이라는 공식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것이고, 잘난척 하지 말고, 젖은 낙엽처럼 딱 엎드려서 사는 것이 이 사회에서 안전하다는 생각이 무의식속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소셜미디어가 발달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된 것이 분명하다. 소식이 빨리 퍼진다. 기록이 남는다. 박제된다. 그리고 사건이 터지면 예전 기록과 기억과 기사가 소환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일관된 반응은 ‘그러니까 다대면 안된다’로 모아지는 듯 하다. 스포츠신문 시절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PC통신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시절을 겪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점점 단 한번의 실수도 인정하지 않는 느낌이다. 얼마전에 한 아나운서가 방송에 나와서 요즘 신입사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미움받지 않나요?’ 라는 질문이라고 하더니만, 괜히 그런게 아니었다.
나는 이런 현상에 일부러 반항하는 편이었다. 이슈를 만들기도 하고, 잘난 척하기도 하고, 아는 것을 뽐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가 돌을 맞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는 도전하고 싶어하는 삐뚤어진 반항심도 많았다. 물론 그 뒷면에는 ‘내가 맞아’ 또는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할테야’ 라는 철부지 같은 생각도 있다. 언제부턴가 그런 모든 것들이 위험하기도 위험하고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냥 까마귀가 되어서 무리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올 겨울에는 위아래 까만색에 검은 운동화를 신고, 까마귀로 좀 살아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저 무리에 끼여서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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