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MIT 경영대학원의 야성 황 교수가 쓴 책이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중국필패인데, 영문판 원제목은 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이다. 한국어판의 제목이 왜 이런 식으로 지어졌는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 책은 꼭 중국이 꼭 (미국에게) 진다는 뜻으로 쓰여진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에서 말하는 EAST는 물론 중국과 동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중국의 특성인 Exam, Authocracy, Stability, Technology의 약자이다.
책의 챕터 구성이 흥미로운데, 각 챕터마다 E, A, S, T 각각의 요소 하나하나씩 짚어 가면서, 소챕터 1에서는 이 네가지 측면을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볼 때 중국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소챕터 2에서는 근대의 공산당 정권 하에서 이들이 어떻게 여전히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5챕터에서는 마지막으로 중국의 현재 시진핑 정권 하에서의 도전과 한계를 묘사하면서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EAST 네 가지 중에서 책 전반에 걸쳐서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Exam – 과거제도 이다. 과거제도는 다른 세가지 요소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과거제도는 7세기 수나라 때 정착되었는데, 그 이후로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의 문화와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심지어 주변 국가인 우리나라 또한 과거제도를 도입한 이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과거제도에 익숙하다. 그래서 나 또한 과거제도에 대해서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제도에 대해서 새삼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고, 과연 지금의 중국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도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끼쳤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제도의 핵심에는 유교가 있고, 유교의 핵심에는 나라와 임금에 대한 충성, 가부장적 가족제도, 문신과 귀족(양반)들이 주도하는 관료 중심의 정치 등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제도로 인해서 국가가 특정한 과목을 선정하고, 국가의모든 인재들이 그 특정 과목에만 매달리게 된다. 국가(군주)는 인재를 독점하고, 이로 인해서 다양성이 사라지는 트리거로 작용했다. 지금의 수험제도와도 매우 유사하게 과거제도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집안이 좋거나, 재력이 좋은 가문의 자제들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고, 100% 능력주의라는 말은 의미가 퇴색되었다. 심지어 과거제도 아래에서 특정 신분은 시험조차 볼 수 없고, 여성은 과거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다지 평등한 제도도 아니다.
과거제도는 철저하게 군주의 권력강화를 위한 제도이고, 그 나라의 문화와 다양성을 해치며, 차별적인 제도인 것이다. 능력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무엇보다 유교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리학이 과거제도의 핵심교과로 자리잡으면서 동양은 꼰대의 나라들이 되어버렸다. 성리학은 군주와 가부장적 사고관에 대한 충성맹세 수준으로 전락하였고, 사상의 다양성의 씨를 말렸다. 유럽에서는 중세를 거치면서 다양한 사고방식과 과학적 사상들이 등장했지만, 동양에서는 그럴 룸이 없었다. 한 나라의 관료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선발한다는 이런 무식한 방식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독재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인데, 기술 (나아가는 무력)의 저하를 만들었고, 결국 동양은 서양에 뒤쳐지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에도 과거제도의 폐해는 그대로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컨대 한국의 수능시험이나 (다행히 이제는 사라진) 사법고시 그리고 행정고시 제도 등이 그러하다. 다양성이 배제되어 있고, 젊은 시절에 암기력이나 그다지 수준높지 않은 수리력을 측정한 이후에 이를 토대로 미래가 한번에 보장되거나, 평생 그 사람에게 일정 수준의 지위와 신분을 보장해준다. 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제도인지…
이 책에서 나오는 동서양에 대한 비교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사례는 바로 명나라 만력제와 영국의 헨리 8세에 대한 비교이다. 헨리 8세는 자신의 연인 앤 불린과 결혼하고자 했는데, 로마 교황청이 이혼을 반대하자 영국 성교회를 만들어서 종교적으로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독립을 해버린다. 그리고 앤 불린과 결국은 결혼에 성공. 하지만 명나라 만력제는 장자상속이 아니라 다른 어린 자녀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자 했으나, 신하들이 ‘아니되옵니다’를 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정치에서 태업하게 되고 무기력하게 되었다. 성리학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그 기준으로 선발된 관료들은 나중에 황제마저 그 갑갑한 틀에 사로잡아 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제도 아래에서 천오백년 가량을 지내온 대한민국 사람인) 나 또한 사고가 경직되었다고 느꼈다. 예컨대 미국에서 공무원을 뽑을 때는 어떻게 할까? 물론 미국도 간단한 공무원 시험은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공고를 내고 면접을 보고, 이력서를 봐서 뽑는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공정성이 어쩌구, 형평성이 어쩌구 하는 말을 하게 되고, 관료들이 부패할 것이며 등등의 기우를 쏟아낸다. 과거제도가 없으면 큰일 날 것 처럼 ‘아니되옵니다’를 현대의 우리가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개념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규모(scale)와 범위(scope)이라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규모는 효율성, 범위는 다양성으로 치환하여 이 책을 읽었는데, 얼추 맞아 떨어진다. 규모라는 것은 거대한 나라 또는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효율성 중심의 제도를 말한다. 과거제도, 독재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 등을 말한다. 까라면 까고, 하라면 하는 문화를 말한다. 반면에 범위는 다양성이다. 지방의 영주들을 인정하고, 다양화된 직업을 인정하고, 다양한 인종과 사회를 보듬으면서 가고, 지역 사회와 지역 경제들이 알아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 둘 사이에 밸런스가 중요한데, 중국은 범위 보다는 규모 중심으로 가다보니,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과거제도가 있어서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시진핑의 3연속 집권과 그 이후의 독재화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작정하고 비판하고 있다. (저자의 안위가 걱정될 정도) 시진핑이 자신에 대해서 비판하는 다른 공산당의 고위 지도자들을 하나하나 숙청하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과정, 그리고 많은 경제인들도 싫은 소리를 하면 바로 숙청해버리는 그의 독재자적 모습에 대해서 굉장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또한 시종일관 비판한다. 사실 이렇게까지 솔직하고 냉정하게 쓰여진 중국 공산당의 내부 이야기를 읽을 기회는 많지 않아서,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시진핑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른 경쟁자들의 주의를 그렇게 끌지도 않으면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권력을 잡게 되자, 무자비하게 경쟁자들을 숙청해버리는 무서움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시진핑은 이렇게 권력을 잡아 가는 과정에서 범위를 놓치고 규모를 추구했다. 이렇게 형성된 정권은 저자가 여러번 언급하는 이른바 ‘털록의 저주’를 겪을 수 밖에 없고, 앞으로 두고두고 중국에게 불행한 미래를 선사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털록의 저주(Tullock’s Curse)’는 독재 정권의 취약성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권력 집중과 혁신 부족이 체제 붕괴를 초래한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2018년 시진핑이 임기 제한을 폐지하며 권력 독점을 강화한 상황에 비유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공공선택이론에서 유래하며, 독재 체제 내 권력 투쟁과 후계 갈등의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중국필패’와 같은 저작에서 이를 중국 현대 정치의 문제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한국과 동양 사회의 ‘깝깝함’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또 하나 깨닫게 된 느낌이 들었다. 특정한 기준에 따라서 인재를 독점하려는 국가, 국가권력의 정점에 있는 독재자. 이로 인해서 짧게는 100년, 길게는 몇백년이라는 시간 동안 중국에서도 한반도에서도 제국과 왕국이 유지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술은 쇠퇴하였고, 다양성은 실종되었다.
비슷한 지리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일본은 과거제도를 제대로 시행한 기간이 짧았고, 천황과 쇼군도 물론 권력이 있었지만, 한국과 중국에 비해서 지역의 영주들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강했다. 고시제도 또한 물론 한때 있었지만, 우리보다 빨리 로스쿨 제도 등으로 전환했다. 일본을 갈 때마다 일본이 기술적으로 더 발달하고, 지역 경제도 우리나라보다는 잘 자리잡고 있는 점 등을 보면 무척 부럽다. (물론 일본의 깝깝함을 이야기 하자면 또 책으로 10권을 쓸 수도 있겠지만…)
미묘하지만 과거제도, 독재정권, 안정화 추구 등의 갑갑한 공기가 우리 주변에 아직도 무겁게 자리잡고 있음을 느낀다. 다양성, 자유방임, 지역경제 활성화, 권한 이양과 같이 좀 더 가볍고 생기 있는 공기들이 우리 주변을 감싸야 다양한 기술분야도 발전하는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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