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것은 2015년 말이었다.
당시는 지금과는 달랐다. 블루보틀이나 스타벅스도 없었고, 명품 브랜드 팝업 스토어도 없었다. 출근 시간에 성수역이 붐비지 않았다. 가죽, 구두, 염색, 기계, 연마, 그리고 플라스틱 사출 공장이 많았다. 거리에는 구정물이 흘렀으며, 매퀘한 냄새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우리가 들어왔을 때 존재했고,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생존한 유명한 장소는 대림창고와 소문난 성수 감자탕 정도다. 성수역 쪽에 위치했던 자그마치는 이제 없어졌다.
처음에 성수동에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를 하려고 찾아다녔는데, 도대체 어디에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밤이 되면 길은 어두웠고, 쥐들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연예인 누군가가 땅을 사고 집을 샀다는 소문은 들리는데, 도대체 왜들 여기에 땅과 집을 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처음에는 서울숲 뒤쪽 길을 찾아 헤맸다. 60-70년대의 성수동만을 기억하시는 우리 어머니는 여전히 이 곳을 ‘경마장 쪽’ 이라고 부르셨지만, 서울숲이 조성된 이후로 조금씩 좋아지는 분위기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강변역에 집을 둔 우리 가족은 서울숲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종종 주말에는 나들이 삼아서 이 곳에 오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숲 뒷길 쪽에는 큰 평수의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발공장이나 피혁공장이 많이 있는 뚝섬역 인근 쪽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고 몇년 정도 맥주 사업을 진행했더니 성수동이 점차 변화하는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우리 브루어리나 오르에르, 그리고 성수역 근처에 있는 어니언 등이 이른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2017~2018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건물들이 많이 생기더니, 급속도로 상점들이 늘어났다. 사람들도 더불어 늘어났고, 저녁이면 썰렁했고 쥐가 다니던 연무장길이 점차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부동산 사장님들은 항상 바빴고, 건물주들은 땅을 팔고 나가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더 변화가 심해진 것 같다. 내 추측에는 아마도 다른 동네가 너무 죽어버렸는데, 상대적으로 성수동은 ‘핫하다’라는 인식이 있어서 쏠림현상도 조금 있었던것 같다.

생각해보면 대림창고의 역할이 크긴 했다. 성수동이란는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다. 빨간벽돌, 궁서체 이름, 간판 없는 장소, 하지만 들어가보면 넓은 공간이 있는 숨겨진 장소. 인스타를 통해서만 걸어서 찾아올 수 있는 이미지. 이 모든 성수동의 공식들은 대림창고에서 처음 셋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그마치나 오르에르의 공헌도 컸고, 어니언, 블루보틀, 파지티브 제로, 피치스, 등등. 재미있는 브랜드들이 점차 많이 모였고, 실력있는 쉐프들과 바리스타들이 점포를 열고 개성을 뽑내면서 성수동의 컨텐츠는 급속도로 풍부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없어진 곳도 많았다. 핫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들어왔다가 몇년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곳들이 한둘이 아니다. 성수동이 뜬다고 해서 모두가 그 후광을 나눠 가진 것은 아닌 것이다. 어떤 자들은 더 많이 그 후광을 받았지만, 어떤 자들은 건물주의 불쏘시개로 끝났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장 이익을 본 것은 건물주들이다. 성수동의 건물주들은 대부분이 공장이나 창고를 하려고 성수동에 땅을 사고, 공장이나 창고를 짓고 자기 사업을 하던 분들이다. 하지만 정작 그분들은 사업보다는 땅을 팔아서 돈을 더 번 것 같다. 2019년인가 친한 부동산 사장님은 성수동 연무장길의 경우에는 끝에서 끝까지 건물주가 모두 바뀌었다고 하셨다. 과장이 보태진 말이겠지만, 어쨌거나 그해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임대료가 많이 오른 곳으로 성수동 연무장길이 신문에 났다.

이제는 명품 브랜드들도 많이 보인다. 성수동과 명품. 얼핏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인데, 이제는 익숙해 진 듯 하다. 외제 자동차들은 성수동이 자동차 정비소가 많다는 이미지 때문에 그런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쓱 ~ 잘 어울려 들어왔다. 스타트업이라고 하기에는 몸집이 큰 곳들이 연이어서 성수동에 건물을 사고, 곳곳에 스타벅스가 문을 열기 시작했다.
성수동의 변화를 더 격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말의 연무장길과 서울숲 뒷길이다. 사람의 바다위에 돗단배 하나를 띄운 듯이 거리를 거닐다보면 무언가 2022년의 가장 트랜디 한 곳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다른 사람들의 소비생활을 염탐하는 듯한 눈을 하고 이 거리를 헤맨다.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는 무언가에 계속 신경이 쓰이고, 지나다니는 상점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저 곳은 뭐길래 사람이 저리도 많은지 궁금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런 성수동이 조금씩 지겨워졌다. 나만이 알고 있던 소중한 장소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나타나면서 느끼게 되는 싫증 같은 것이다. 나 혼자만 즐기던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차트 1등을 하게 되면, ‘자, 이제 됐다. 미련없이 너를 보내줄께’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임대료가 너무 많이 올랐다. 이렇게까지 비싼 돈을 내면서 우리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가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내가 성수동에 머물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 시간이 오래 남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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