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다시 태어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로 태어나리라.

하루키는 소설가로도 유명하지만, 그는 많은 에세이를 남기기도 했다. 그가 쓴 에세이중에 뭐니뭐니해도 백미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라는 에세이. 이 책을 보면 천재성 따위는 이찌감치 개나 줘버린 사람도, 꾸준함이라는 하나의 덕목만 갖고 있으면 전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에 대해서 갖고 있는 천재성과 크리에이티비티라는 덕목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 장편소설을 쓴다는 작업은 결국 자기관리와 체계적인 시간사용이 승패를 가른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에세이를 보면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뭐랄까. 한번도 쉬지 않고 달리던 마라톤 선수가 워터 스테이션 근처에 릴렉스하면서 걸터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정도의 황당한 광경 같은 느낌이다. 이 책에서 그 자신도 밝히고 있지만, 이런 글도 엮으면 과연 책이 되는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가볍고 릴렉싱 하게 글을 썼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점에서 하루키의 책을 보면 구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용을 하나도 보지 않고 산다. 아, 새로 나왔네.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거의 바로 신용카드를 꺼내고 캐쉬어 쪽으로 가고 있는 내 발걸음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이 정도면 무조건반사다.

그의 책이 주는 삶을 바라보는 가볍고도 진지한 시선이 너무 좋다. 티셔츠 하나에도 엉뚱한 상상들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 묻어 있는 것이 좋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나도 그런 그의 세계관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아서 흐뭇할 지경이다. 하루키의 수필은 그런 매력이 있다.

이 책은 그가 오랫동안 수집해 온 티셔츠에 대한 글을 연재하여 엮은 글이다. 수필집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작가의 ‘신변잡기 수다’에 가까운 내용을 묶어서 책으로 출간한 수준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과 비행기 안에서 이동하는 시간을 모두 포함하여 2시간 정도만에 읽어내고 말았다.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도 티셔츠를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종종 많이 버린다. 왠지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그런데 이 에세이집을 읽고 나서는 후줄근한 티셔츠도 모아놓고 싶어졌다. 혹시 아는가? 내가 훗날 티셔츠에 대한 에세이집을 쓰면 사람들이 살지도?

답글 남기기

mbabloggernet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