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사업을 5년 정도 해오면서 한가지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 사람들이 맛을 보는 것에 대한 자존감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소비자 FGI 를 하거나, 소비자들과 시음회 등을 하는 경우에 ‘나는 XX맛은 잘 모르는데…’ 라는 말로 문장을 시작하는 사람이 10명 중에 9명 정도 된다. 커피, 맥주, 와인, 위스키 등등의 기호음료에 대해서 뭔가를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제가 XX맛은 잘 모르지만‘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다. 혹은 주린이, 맥린이, 와린이 등 ‘X린이’ 형식으로 자기는 입문자라는 쉴드를 꼭 치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X알못’ 같은 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내가 스스로 주류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말하기 전인 경우도 해당한다. 내가 주류업계에 종사한다고 하면 거의 100%로 수렴할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기가 아는 이면에 ‘전문가’의 탈을 쓴 사람들이 엄청 어렵게 아로마에서 시트러시 건자두 계피 가죽 나무 어쩌구 하는 것들을 보아 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내가 모르는 더 넓고 깊은 세계에 대해서 떠드는 것 같긴 하던데, 나는 잘 모르겠고… ‘라는 말이 축약적으로 들어 있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입맛을 ‘대중적’ 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비슷한 경우이다. 내 주변에 어렸을 때 부터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좋은 것을 먹고 자란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입맛은 ‘대중적’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자기 자신은 겸양의 뜻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지…
이와 반대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심리학 실험중에 하나인 ‘당신은 당신의 운전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질문이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80%~90% 이상의 사람이 자신의 운전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운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매우 부풀려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만이다. 그러니 그렇게 술마시고 운전하는 사람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슐랭 별 갯수나 로버트파커 또는 비비노 와인 점수, 레이트비어 맥주 점수,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모두 단체마다 다른 기준으로 다른 대상에 대해서 점수를 매기는 것 뿐이기 때문에 많은 판단 기준 가운데 하나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점수보다는 왜 그런 점수를 받게 되었는지 평가 내용을 읽어보고 자신에게 관련성이 있는 정보를 취사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이런 점수가 ‘공신력’ 이라는 말과 함께 하나의 잣대로 평가내려지는 듯 하다. 동네 칼국수 집 조차도 미슐랭 빕구르망 정도는 받아야 한번 가서 먹어볼 만한 곳이 될 지경이다. 커피 브랜드 조차도 잘 모르는 외국의 바리스타 이름을 따 와야 ‘있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잘 몰라서 약간은 신비감을 갖고 있어야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보다 훌륭한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인 바리스타의 이름을 단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맥주시장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하다. 스스로 맥주 맛을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파란눈에 머리가 노랗거나 갈색인 사람이 맥주맛에 대해서 평가를 내려야 공신력이 있다. 그 사람이 맥주의 전문가인지 아니면 다른 직업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맥주의 본고장에서 왔는지, 본인 나라에서 맥주를 얼마나 마셨는지도 중요치 않다. 외국인인 것이 중요하다. 양조사나 맥주 소믈리에도 아니고 그냥 요리사가 맥주에 대해서 평가하기도 한다. 맥주는 한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맥주의 전문적인 평가를 맡기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전통주나 기타 다른 카테고리도 그렇다. 외국인이 인정해야 진정으로 인정받는 듯한 느낌이랄까. 맛은 아니지만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욘사마, 블랙핑크, BTS, 등도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대박이 나고, 그 후에 다시 한국에서 명성을 찾은 케이스들이다. 우리나라에서의 평가보다는 외국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국에서 다시 재평가 받을 기회가 생긴다.
조금 다른 예지만 한국에서 팔고 있는 의류나 패션 굿즈 브랜드 중에서 National Geography, Kodak, Life 등의 상표는 모두 본사에서 어느 회사에게 라이센스를 팔고 그 회사가 OEM 형식으로 의류를 만들어서 팔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실제로 내셔널지오그래픽 회사에서 만드는 의류는 아닌 셈이다. 따라서 정작 미국에서는 이런 의류나 가방 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무척 드문데, 한국에서는 몇천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내셔널지오그래픽 가방을 메고 미국에 가면 미국인들의 질문은 이러하다.
Are you working for National Geogrphic? Are you a journalist? (너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사 다니니? 너 기자니?)
우리나라로 치자면 ‘월간 사진’ 같은 잡지의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어떤 사람이 길거리를 지나다닌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아마도 그가 ‘월간 사진’에서 근무하는 사진기자라고 생각하기 십상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가구 쪽에 종사하는 한 후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남양주에 있는 한 가구공장에서 이탈리아에 가서 가구를 만드는 이태리 할아버지를 한명 섭외 해 왔다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는 본국인 이탈리아에서도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에게 몇백만원을 주기로 하고,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표와 체류비를 지원해서 한국에 부른 다음에 가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는 그 할아버지 이름도 사용할 권리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 이름을 딴 가구를 출시. 이태리 가구 장인의 어쩌구 저쩌구… 예상대로 매출은 치솟았다고 한다. 똑같은 가구지만, 이태리 할아버지 이름과 사진이 붙으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았다는 것이다.
다시 맛과 취향으로 이야기가 돌아와서…
여튼 한국인은 스스로의 taste 에 대한 자존감이 낮다. 맛에 대해서 자기가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전문가나 공신력 혹은 오래된 역사의 무엇인가에 기대어서 그들이 맛있다 혹은 좋은 것이다. 라는 도장을 쾅! 찍어주기를 바란다. 파란눈+노란머리라면 더욱 금상첨화이다.
내가 떠올려본 예외 중에 하나는 고기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고기 맛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한다. 취향도 존재한다. 고기를 굽는 방식, 육즙이 어떠해야 하고, 굽기의 정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부위는 언제쯤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과 취향과 선호가 존재한다. 이는 어려서부터 교육받고 맛보고 이야기듣고 한 결과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재 산업과 F&B 산업에서 한국 소비자는 까탈스럽고 예민하기로 유명하다. 예전에 외국계 소비재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국 소비자들의 컴플레인 같은 것들을 미국 본사에 보내면 본사에서 종종 놀라곤 했다. 너희나라 소비자들은 그런 디테일까지 잡아내느냐? 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 한국 소비자가 왜 기호음료들이나 음식점 같은 곳들에 대해서는 맛의 자존감이 낮을까? 이 산업을 하면서 참으로 궁금하고 신기하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