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깨어서 TV를 돌려보다가 VOD 로 영화 “카트”를 봤다. ‘더 마트’라는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이 영화는 회사측의 부당해고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육체적으로도 노동강도가 높지만,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을 많이 겪는다. 텔레마케터나 고객만족센터 등에서 전화를 받는 분들, 그리고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서비스업 중에서도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불특정 다수의 고객에게 노출되므로, 고객들도 노동자들에게 불특정 다수로 느끼고, 그로 인해서 많은 황당한 경험을 겪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노동자들을 ‘감정 노동자’ 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트’라는 영화에서도 이런 감정 노동자들이 상식 밖의 손님의 행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극중 초반에 한 손님이 마트 직원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이 받았던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웠다는 이유, 그리고 그 종업원이 째려봤다는 이유에서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번주에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인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태에서 대해서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태는 조양호 회장과 조현아 부사장이 사과를 하면서 조금 진전되는 듯 보였으나, 금요일 (12월 12일)에 당시 사건이 있었던 비행기의 사무장이 KBS 인터뷰를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대한항공 사무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간에 드러난 것보다 사태가 심각함을 말했는데, 폭언은 물론 폭행까지 있었다는 점과, 회사측에서 그에게 인터뷰에 응할시에 거짓 진술을 하도록 한 점등이 바로 그러한 사실이다.
일반적으로는 기내에서 난동이 나면, 난동을 부린 사람을 내리게 하는 것이 사무장의 1차적인 임무이고, 만약 비행기가 회항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어떤 심각한 일인지 파악을 한 후에 회항을 결정하는 것이 상식적인 기장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사무장과 기장에 대한 감정적인 연민이나, 정황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되는 상황이나, ‘행정적인’ 처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만, 사무장의 인터뷰 내용중에서 나의 눈길을 가장 끈 부분은 위의 사진에서도 보이는 것과 같이 “감히 오너의 따님인 그분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라는 부분이다.
이 말은 마치 우리 사회에서 내가 다니는 기업의 ‘오너’ 라는 사람이 나의 직업적인 프로페셔널리즘과 인간적인 자존감 마저도 어느 정도는 지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슬프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사건 당시에 사무장이 강력하게 조현아 부사장을 저지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정말 그렇게 했다면 이 사건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고, 단지 사무장의 처벌로 끝나면서 또 다른 대항항공 오너 패밀리의 기행 정도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항공기의 사무장으로서 프로페셔널리즘을 지키려다가 직장만 짤리면, 결국 손해보는 것은 사무장 단 한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가장 안타까운 점인데, 오너일가의 권력, 혹은 우리가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 다니고 있는 직장이나 직장을 지배하는 자들이 우리의 생각마저 지배해버리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갑과 을의 존재는 언제부터인가 비즈니스 계약을 넘어서서 갑이 을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 직장을 잃거나 계약을 잃는 다는 것이 결국에는 나 자신과 우리 가정의 생사마저도 결정하게 되는 것으로 결부되는 상황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의 세속은 더 심해지고, 지금 우리 사회의 재벌들은 근로소득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부를 축적하고 있기에 빈부격차는 갈수록 더 커지기만 하는 것도 현실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삼성은 ’3년만 다니라고 삼성’ 이라는 말이 농담으로 돌았었다. 그런데 요즘 삼성의 고민 중에 하나는 신입으로 들어온 직원들이 좀처럼 다른 곳으로 나가지 않는 점이라고 한다. 갈수록 직장을 얻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지고, 그렇게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직장에서 거친 세상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미국에서 살면서 짜증나고 싫었던 점도 많지만, 좋았던 점 중에 하나는 마트 등의 상점을 갈 때에 만나는 직원들이 일을 즐기는 것 처럼 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나라의 감정 노동자들처럼 빠릿빠릿하고 신속한 일처리 + 긴장된 서비스 마인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바로 미국의 노동자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게을러보이기도 하고, 너무 한가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잘 가던 마트는 기숙사 앞에 있는 홀푸드(whole foods market) 이었다. 특히 홀푸드는 직원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또 일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와 가장 잘 마주치는 POS (계산대)에서 계산을 해주는 직원은 한 흑인 청년이었는데, 그는 항상 자신이 언젠가 이 동네에 자마이칸 레스토랑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MBA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늘 내 물건을 계산하는 동안에 자신의 레스토랑 아이디어를 들려주면서 비즈니스 아이디어로서 괜찮은지를 내게 묻곤 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빨리 빨리 계산이나 해주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은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포기하고서 오히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었다.
더 이상 대한미국 사회가 “직장”이라는 인질로 사람들을 무릎꿇게 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발휘할 수 있도로고 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우리 모두 낯선 사람이 되지 않고, 서로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된다면?’ 이라고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오너 일가에게 직원 한명 한명이 얼마나 하찮게 보였으면 저런 식으로 대했을까? 마트에서 만나는 직원들도 그냥 모른느 아줌마가 아니라 늘 동네에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우리 커뮤니티의 일원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사람에 대한 관심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고 믿는다. 공감이 없는 리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 리더들은 이제 무대에서 퇴장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을 중심에 세우는 새로운 비즈니스들, 커뮤니티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모델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