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최근에 평소보다 더 뛰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꾸준히 뛰거나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탔으니 딱히 큰 변화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말에는 수영도 한 번씩 하고, 저녁에는 요가도 한 번씩 합니다. 수영, 요가, 러닝, 그리고 자전거까지. 저에게는 명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마음챙김. 제 대학원 동기 형에게 무심코 요가가 좋더라 했다가 그 형이 저보다 더 요가를 열심히 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형이 요가를 너무 즐긴다고 하시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기쁜 마음도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쟁기자세에서 쟁기가 땅을 못 푸고, 나무자세에서 나무가 사시나무가 됩니다만…

2.
책도 꾸준히 읽고, 책에 대한 글도 쓰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해오던 블로그의 데이터가 중간에 날아가서, 그 이후에 잠시 글을 안 쓴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시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것 또한 저에게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유튜브가 발달하고 컨텐츠가 1.5배속으로 하루 종일 들어도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도, 글을 읽는 즐거움을 유튜브가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도 가끔 mbablogger 님이냐고 물어보는 분들을 1년에 한명 정도 만나는데, 부끄럽습니다.

3.
지난달에는 시간을 좀 내서 홋카이도 북부를 돌았습니다. 홋카이도 남부에 있는 삿포로, 오타루, 하코다테, 노보리베츠는 대학생 시절에 일본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에 두 번 정도 여행한 적이 있어서 모두 제외했습니다. 그걸 제외하면 홋카이도에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시겠지만, 의외로 북쪽으로 달리면 왕복 1300km 정도 홀로 로드트립 할 수 있는 광활한 대지가 있습니다. 과거에 몇 번 뵌 적이 있었던 동아일보 조진서 기자님의 2025년 유튜브가 자극이 되었는데, 주변이 정리되면 가보고자 했던 것이 이제야 가봤네요. 사람보다 사슴과 너구리와 여우가 많은 곳까지 다녀왔고, 아바시리와 아사히카와 그리고 오호츠크 해안까지 아침마다 뛰고 나니까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들더군요. 봄에는 쉽게 볼 수 없다는 유빙까지 알차게 보고 왔습니다. 대학생때 홈스테이 했던 작은 마을까지도 방문하고 왔습니다.

4.
며칠 전에는 혼자 잠실 야구장에 가서 야구도 봤습니다. 예전 직장 상사 분이자 지금은 한 펀드의 대표님께서 “야구는 시간이 많지만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스포츠다. 나도 직장 그만두고 펀드 만들기 전까지 일이 꼬여서 한참 야구를 봤다”는 말씀이 갑자기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혼자 전철을 타고 잠실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봤죠. 저는 삼수를 해서, 제 친구들이 대학초기에 열심히 야구장 가서 맥주도 마시고 놀던 시절에 야구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뒤늦게 야구를 챙겨 보고 있습니다. 야구는 매일매일(월요일 제외하고) 반복되는 스포츠고요, 플레이오프 나가는 팀이 승률이 50%, 잘 치는 타자가 타율 3할, 잘 던지는 투수가 자책점 3-4점인 스포츠입니다. 굉장히 실패가 일상적으로 많고, 팬들은 작은 성공에도 열광하는 관대함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들이 롯데 팬이라서 저도 어쩌다 보니 롯데팬이 되어버린게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만…

5.
투자자분 중에 한분에게 소개를 받아서 주말마다 일본어 과외를 zoom으로 한 시간씩 받고 있습니다. 20년 만에 일본어 공부를 다시 하고 있는 셈입니다. 2005년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인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나 싶기도 하고요. AI가 도입되고 나서부터는 외국어 공부의 프레임이 많이 바뀐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도 일상적인 일본어는 합니다만, 존경어, 겸양어 중심으로 공부를 다시하고 있고, 일본어의 한자어 중심으로 다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어를 처음 배울 때는 한국어와 유사하다고 느꼈는데, 경어, 존경어/겸양어 및 한자어를 공부하고 문법을 되짚다보니 한국어와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일본어를 깊이 있게 공부하며 한자어도 다시 공부하다 보니 뇌의 다른 근육을 오랫만에 가동시키는 느낌입니다. 부작용은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라고 할 때마다 렉이 걸리긴 합니다.

6.
AI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공교롭게 실무를 하지 않게 되어서 여러모로 스스로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맥미니 하나 구입해서 OpenClaw 도 돌려보고, Claude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데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AI 때문에 전략 컨설팅 망했다는 기사들이 무책임하게 쏟아지던데, 저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알면 알수록 이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눠야 하고, 우리 조직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도 많은 대화를 해야 할겁니다. 컨설팅에 기회입니다. 예전에 인터넷 생겨서 컨설팅 망했다는 시기가 있었다고 하던데,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7.
쉬는 동안 지난 10년의 시간에 대한 복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이를때까지의 여러가지 사건들을 떠올려보면서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글로 남기기 이전에, 장거리 운전을 할때마다 아이폰 녹음을 활용해서 주저리 주저리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말한 이후에 tiro를 활용해서 글로 정리하고 claude / gemini 를 활용해서 다듬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10배쯤 빠른 속도로 집필이 가능하고, 제가 잘못 기억하는 숫자, 연도, 팩트도 다 찾아주어서 좋습니다. 수제맥주 산업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 두고 싶은데,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8.
돌아보니 저는 20년 넘게 커리어를 이어 왔지만 이직도 한 적이 없고, 실업급여도 받은 적이 없고, 수당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직원들 급여는 10 년 동안 밀리지 않고 지급 했습니다. 주세 등 세금은 더 많이 낸 것 같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예전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불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대한민국이 저에게 준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제가 태어난 동네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는 제가 태어난 당시와 다릅니다.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저는 이 곳에서 주는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강을 달리고, 산에 오르고, 공원을 산책하고, 동네 수영장에서 주말에는 수영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봅니다. 불평할 수 없습니다.

9.
당분간은 쉬고 싶기는 하지만 현실도 있으니까, 쉬는 기간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생활인이라서 벌어야 먹고 살테니까요. 많은 분들이 숫자를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벌었냐. 먹고 살 것은 마련해 두었냐. 개인적으로 빚은 없냐. 등등. 창업자분들은 이해를 하시겠지만, 창업자는 회사와 본인을 동일시 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은 굉장히 낯선 질문들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성인이 되지 못한 자녀들로부터 용돈을 받아서 사시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명확하죠? 하지만 궁금해하시는 여러분들의 심정은 저도 이해는 됩니다. 저도 회사만 다닐 때에는 사업하면 금방 내 주머니로 돈이 들어 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더군요.

10.
오늘 제가 10년 3개월간 이어온 회사의 파산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파산선고의 순간에 눈물이 찔끔 나서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오후에 기사로 접한 분들도 계실 테고,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실 듯 합니다. 저로 인해서 심적/물적 피해를 입은 분들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고요. 모두가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자신 있게 진행해 왔으나, 어느 시점부터는 제 역량으로는 어려운 시점이 오더라고요. 진심으로 성원해주시고, 응원해주셨던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럼에도 오늘 투자자분 중에 한분이 술자리에서 무엇을 하든 다시 응원한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꼭 기억한다는 말씀 드립니다. 저녁에 법원에서 나온 파산관재인에게 성수점 열쇠를 건네고 성수동을 걸어서 나오는데, 11년 전에 처음 여기에 양조장을 만들 때, 몇 년 후에 이 거리에 전염병이 돌고, 그 다음에는 수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
불과 5년전에 주류 시장이 이렇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을 했을까요? 하지만 저는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의 칼날은 차별적으로 적용되니까. 누구에게는 날카롭지만 누구에게는 무딘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술을 덜 마시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처음 했습니다. 주류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술을 더 마실수록 사람들이 대화도 많이 하고, 사회적 교류도 늘어나고, 심지어 출산도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술로 죽은 사람보다 술이 낳은 사람이 많다는 말은 영어권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유머에요. 웃어요) 하지만 주류 업계에서 한발짝만 물러나도 상황을 달리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 자리에 따라서 풍경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12.
우리 회사를 “수제맥주의 신화”라고 부르는 기사가 난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오늘은 파산한 날입니다. 단 한 번도 수제맥주의 신화라는 칭찬은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사업을 접고 나니까 신화가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리둥절 했습니다. 과거는 항상 미화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고요. 며칠 전에는 한 고객이 전화를 걸어와서 첫사랑 맥주가 더 이상 생산이 안된다고 말씀드리니까 우시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줄 수 없냐고 하시는데, 저도 참…. 우리 맥주보다 백배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대기업 라거가 단종되어도 우는 사람은 없을텐데.. 우리는 소수의 팬을 위한 사업을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막상 막을 내리고 나니까 객석에 있던 관객이 보이는 느낌이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연극은 끝났습니다. 자리를 비워주시고, 다음 공연을 기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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