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만에 강추할 만한 책이다!
유성호 교수님 유튜브에서 소개되어서 읽었다. 350쪽 정도인데, 펴자마자 300페이지 읽었고, 나머지도 그 다음날 다 읽어버렸다. 공감되었으며, 도움되었다. 무엇보다 주변인들에게 책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편인데, 이 책의 내용은 조금만 설명해도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로 공감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고기능 우울증이 많을 것 같다. 참고로 이 책의 추천사는 ‘Let them theory’를 쓴 멜 로빈스가 썼다. 추천사도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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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능 우울증은 일도 잘하고, 책임감도 강하고, 자신의 맡은 바 일들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우울증 증상을 말한다. (제목의 번역에 있어서 좀 불만이 있는데, 왜 high functioning depression이 고기능 우울증으로 번역되는지 좀 의문. 여기서 high funtioning은 우울증에 걸린 환자 조차 일을 계속 엄청 잘 한다는 뜻인가? 암튼 좀 헷갈린다. 책의 원제는 그냥 high functioning 이다)
고기능 우울증은 일반적으로 완벽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특징은 자신이 우울하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우울감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 그 이유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하거나,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잘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등, 다양하다.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돌보는 데는 늘 최선을 다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는 않는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들은 휴식을 즐기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를 즐기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이 우울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도 하고, 설령 깨닫는다 하더라도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 들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나면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을 얻 겠지만, 내적 만족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렇게 모범적 소수자로서 자신만의 아메리칸드림을 만들어 가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한 삶이 아니라 무채색의 단조로운 세상일 뿐이다.
본문 p35
고기능 우울증은 의사들의 진단으로도 잘 걸러지지 않는데, 일반적인 정신과 의사들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나?’라는 질문으로 병을 골라내는데, 이들은 꾹 참고 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안 준다고 대답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진단을 해야 하며, 아래의 질문과 같은 것으로 체크해 볼 수 있다.
- 2주 이상 감정적으로 무감각하거나 소외된 느낌이 든 적이 있는가?
-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고 해도, 자주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과도한 죄책감에 시달린 적이 있는가?
- 최근 수면 패턴에 큰 변화가 있어, 평소보다 지나치게 많이 자거나 너무 적게 잔 적이 있는가?
- 평소와 달리 식욕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등 식사 습관 에 변화가 있었는가?
- 만성적인 에너지 저하나 번아웃으로 인해 일상적인 일 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가?
- 미래나 현재 상황에 대해 희망이 없다고 느끼며, 절망감 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 이전에는 쉽게 했던 일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마무리하 기 힘들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 예전에는 즐거웠던 활동에서 더 이상 만족을 느끼지 못 하고, 초조하거나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는가?
-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계속되거나, 죽음이나 자살 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자주 떠올리게 되었는가?
- 평소와 달리 몸이 무겁고 움직임이 느려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었는가?
- 이전에 즐거움을 주던 취미나 활동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한 적이 있는가?
(참고로 4~7개면 중등도, 그 이상이면 심한편)
고기능 우울증은 트라우마에서 비롯된다. 꼭 살해의 위협이나 성폭행을 당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다양한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살아간다. 트라우마를 통해서 고기능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두가지 종류의 증상을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무쾌감증(anhedonia) 과 마조히즘 (masochism) 이다. 무쾌감증은 삶에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늘 무기력하고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마조히즘은 타인을 지나치게 기쁘게 하려고 하거나, 자기 희생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이다.
트라우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첫째는 아동기 트라우마이다. 주로 가족이나 부모와 관련된 것들이며, 부모의 이혼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두번째는 성인기 트라우마인데 주로 직장에서의 일이나 커리어의 실패 등이 해당된다. 세번째는 세대간 트라우마인데, 주로 부모의 세대의 결핍이나 부모의 DNA에서 물려받은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집단 트라우마인데, 대표적인 것은 코로나19나 9.11테러 같은 동시대인들이 다 같이 겪는 사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세월호나 계엄 같은 사건일 수 있다. 각각의 개인들이 이러한 4가지 종류의 트라우마들을 한번 쭉 정리해 보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으니, 의미 있는 연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무쾌감증(anhedonia)의 대표적인 인물을 이 책에서 배트맨과 조커로 꼽고 있다. 배트맨, 아니 브루스 웨인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눈앞에서 부모님이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일을 겪은 이후로,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내던지면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악당들을 물리치지만 어떤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조커도 무언가 트라우마를 겪고 나서 흑화했지만, 배트맨과 다른 점은 영화 내에서 적어도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누가 정신적으로 더 우울할까? 재미있는 상상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도 무쾌감증은 정말 많은 것 같다. 무쾌감증은 성취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늘 공허하다. 누가 괜찮냐고 물어보면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나 우리나라가 속한 동양권 문화에서 더 심하다고 생각하며, 겸양, 인내, 예의 등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프레셔가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무쾌감증을 느끼는 요인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생물학적 요인은 유전, 장애, 신체적 건강, 바이러스 등 실제로 우리에게 우울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신체적 요인들을 말한다. 운동을 안한다거나, 햇빛을 못 보는 것 등도 모두 생물할적 요인이다. 심리적 요인은 자존감, 대처능력, 애착유형 등을 말하며, 사회적 요인은 또래집단, 학교,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인간관계를 말한다.
마조히즘은 성(sexual)한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만성적으로 자신을 해치고 남을 기쁘게 하려는 행동 패턴이 지속해서 나타나는 성격장애이다. 자기 파괴적인 형태이고, 지나친 자기희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을 더 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균형이 맞지 않는 인간관계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마조히즘의 유형에는 민족/종교/국적 등에 따라서 나타나는 문화적 마조히즘,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관계적 마조히즘, 경력상의 성취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커리어 마조히즘 등이 있다.
자신이 마조히즘이라고 생각한다면 애착유형(attachment style)을 잘 파악해야 한다. 애착유형은 크게 불안형, 회피형, 안정형, 혼합형으로 나뉜다. 불안형은 상대방에게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우무, 회피형은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어렵고 상대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스타일, 안정형은 건강한 균형을 구현한 사람들, 마지막으로 혼합형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회피형인데, 이 역시 심리적 방어기제로 마조히즘적 성향을 보인다. 불편하면 내가 희생하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슬쩍 빠져 나오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참고로 마조히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회피형 애착을 가진 파트너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관계가 끝없이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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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고기능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5V라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첫번째 V는 validation(인정)이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다음의 다섯가지이다.
-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없다. 심지어 타인의 감정도 인식하기 어렵다.
- 나약해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누구든 강하거나 약할 뿐, 중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 비상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트라우마적 상황에서 감정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감정 표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이 존재한다. 과민반응, 신경질적, 까탈스럽다 등의 꼬리표
- 가족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한국의 경상도 스타일 가정(?)
- 감정을 피하는 게 습관처럼 몸에 베어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을 본 경험이 있는 경우.
이유를 알았다면 이제 인정해야 한다. 인정에는 자기인정, 언어적 인정, 사실적 인정이 있다고 한다. 1) 자기인정은 경험과 감정에 대해서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특히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사실을 자기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울 때에는 영화 등에서 공감가는 인물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2) 언어적 인정은 신뢰할 수 있는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에 대해 긍정과 공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려면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과 대화해야 하고, 문제해결보다는 상대의 감정을 들어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들어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3) 사실적 인정은 의료전문가에게 정량적인 파악을 부탁하는 것이다.
두번째 V 는 venting (환기)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털어놓는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고 참는 것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다. 저자는 친구, 종교지도자, 상담가, 심지어 소셜미디어에 댓글 형식으로라도 감정을 털어 놓을 것을 권한다. 일기쓰기, 기도, 울기, 예술적 표현도 좋은 수단이다. 단, 상하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지 말 것을 권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울음’이 효과적인 환기 수단임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무척 공감했다.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우리는 자신의 고통에 다 해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이야기는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배우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그런 감정들은 용납할 수 없다고 여긴다. 또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 자체를 불 평하는 것과 동일시하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본문 p197
세번째 V는 Value 이다.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가?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이 가치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끊임없이 집착함으로서 다른 소모적인 행위들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타인의 부탁에도 단호하게 거절을 할 수가 있게 되고, 마조히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 스스로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1) 나는 어떤 사람을 존경하는가? 2) 나를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3) 만족감과 포만감이 들었던 마지막 식사는 언제였는가? 4) 어린 시절에 무엇에 열정을 느꼈는가? 5)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같은 질문들에 몰입해 볼 것을 권한다. 나 스스로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 봤지만,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개인적 가치는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근면함이나 인내심과 같은 성격적 특성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고기능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실수를 하곤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에서 비롯되는 것 이 아니다. 가치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고, 기쁨을 느끼게 해주 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가치는 삶에 목적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때로 이러한 가치는 가족이나 문화에 의해 영향 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부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교육을 매 우 중시하여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높은 학위에 가치를 두도록 독려한다.
본문 p231
네번째 V는 Vitals이다. 이는 수면, 영양, 디지털 디톡스, 운동 등을 통해서 자신의 신체 상태를 끌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 개인적으로 고기능 우울증이 중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상당히 높은 정도의 고기능 우울증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이 부분에서 내가 잘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운동량이 많고, 밥도 잘 먹고, 불면증도 거의 없는 편인데다가 평소 요가와 명상을 병행한다. 그러다보니 vitals 부분에 있어서는 별로 부정적인 부분이 없었다. 다만 유튜브 때문에 디지털 디톡스가 문제이긴 하다…뇌가 자꾸 유튜브에 절여지고 있어서 문제긴 하다.
다섯번째 V는 vision이다. 이는 자신의 성취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말한다. 작은 성취라도 축하하라는 것이다. 스스로 그리고 남으로부터 축하를 받는 것 포함. 대부분의 고기능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의 성취도 폄하하거나, 그냥 넘어가려고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축하하고, 자기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스스로 칭찬해주라는 것이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것도 어색하거나 쑥스러워 할 필요가 없다. 이 부분에서 한국인들이 특히 성공에 대해서 축하받을 때 좀 쑥스러워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주변에서 잘난 척 한다는 비난을 할까 두려워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예전 직장에서 ‘잘한건 잘한거니까 너가 잘 알꺼고, 너가 더 개선할 점에 대해서만 피드백 줄께’ 라는 상사가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그분이 많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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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능 우울증은 아직 의학계에서 확립된 병명이나 증상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도 어떠한 논문도 없어서 책을 쓰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분명 공감하는 증상일 것이고, 심리적인 상태인 것만은 100% 확실하다.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아마도 그 사람들에게 물으면 맞아 맞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경쟁이 치열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꼭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이 책을 읽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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