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쉿 잡 (bullshit jobs) –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를 오랫만에 다시 읽고나서 흥미가 생겨서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다른 저서를 구매해서 읽었다. 이 책은 2013년에 작가가 STRIKE! 잡지에 기고한 ‘불쉿잡이라는 현상에 관하여’라는 기고 글에서 출발했다. 이 기고문은 외부인이 보기에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이는 일자리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작가가 쓴 글이었다. 케인즈는 20세기 말 정도에는 주 15시간 정도만 일하면 될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엄청나게 긴 근로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한국은 더한 듯)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금융, 컨설팅, 법률, 학문, 보건, 행정 등 그다지 가치창출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일하는 직업들이 많다는 것이 글의 요지였다. 반대로 간호사, 소방관, 정비공 등 실제로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은 낮은 임금에 시달리는 현상도 지적했다.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고 목표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쉿 잡은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강하게 저항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몇몇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 이 글은, 잡지에 실리고 나가고 나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흥미롭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의미없는 불쉿 잡이라는 고백을 해 오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이 책 ‘불쉿 잡’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작가에게 보내온 이메일과 댓글들을 작가가 읽고 많은 부분들을 인용하면서 기존에 쓴 짧은 기고문에 대해서 더 발전된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STRIKE! Magazine – On the Phenomenon of Bullshit Jobs: A Work Rant
Ever had the feeling that your job might be made up? That the world would keep on turning if you weren’t doing that thing you do 9-5?

불쉿 잡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불쉿 잡이란 유급 고용직으로서 그 업무가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다. 그가 고용되려면 그 직업의 존재가 전제 조건인데도 말이다. 종사자는 그런 직업이 아닌 척 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낀다.

본문 44페이지

작가에 따르면 전세계에 존재하는 약 40%의 직업들이 불쉿 잡이라고 한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직업들이 그다지 가치창출에 이바지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쉿 잡들로 인해서 신자유주의의 실상이 외형과는 반대로 경제 성장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과학과 기술을 정체시키고, 많은 나라에서 수백년 만에 처음으로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빈곤하게 살게 된다는 예측을 낳았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 실제 동기는 경제적인 동기가 아니라 정치적 계급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이러한 불쉿 잡은 공공부문에 훨신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꼭 공공부문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민간 경제 또한 굉장히 관료화 되면서 둘을 구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불쉿 잡에는 크게 다섯가지 종류가 있다. 물론 아래 예들이 둘 이상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다중 유형의 불쉿 직업들도 현실에서는 많이 존재한다. 아마도 아래 예들을 읽다보면 주변의 누가 생각나거나,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일부 생각이 날 것이다.

  • 제복입은 하인 (또는 수행원) (Flunkies): 이들은 상사나 조직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하려고 존재하는 사람이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사무실의 접수원, 필요 없는 호텔의 도어맨, 상사가 직접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대신 처리하는 개인 비서 등이 전형적인 예이다. 이들의 주된 역할은 누군가의 지위를 보여주는 가시적인 상징이 되는 것이며, 자신의 직속 상사가 거물처럼 보이고 느끼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 깡패(Goons): 이들은 실제 가치를 더하지 않으면서 공격적이거나 조종적인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예: 군인). 이들은 유용한 것을 창조하기보다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 고안된 경쟁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특허권으로 소송을 거는 기업 변호사, 사람들을 괴롭히는 텔레마케터, 대중 인식을 조작하는 홍보 전문가 등이 여기에 속한다.
  • 임시 땜질꾼(Duct Tapers): 이들은 애초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조직의 결함이나 오류를 고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임시방편으로 땜질만 한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형편없이 설계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실수를 바로잡는 사무 보조원이나, 결함 있는 제품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을 처리하는 고객 서비스 담당자가 있다. (예: 프로이트가 말한 이미 깨끗한 집안 위생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가정주부 신경증 (housewife’s neurosis)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 형식서류 작성직원 (또는 체크리스트 담당자) (Box Tickers): 이들은 순전히 관료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직업으로, 조직이 실제로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서류 작업, 보고서 또는 절차를 만들고 유지한다. 실제로는 자체 품질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회사의 품질 보증 관리자나, 보고서만 작성할 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권한이 없는 다양성 담당관 등이 좋은 예시이다. 그들이 만든 보고서를 전부 다 읽은 사람은 없다.
  • 작업반장 (Taskmasters):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무의미한 일을 시키거나 감시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이다.이들은 주로 다른 관리자들을 관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중간 관리자인 경우가 많다. 이 범주는 두 가지 하위 유형을 포함합니다. 하나는 감시할 필요가 없는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부하 직원에게 무의미한 작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끝없이 불필요한 회의를 여는 관리자가 대표적인 예.

이러한 불쉿 잡 종사자들은 작가에게 자신의 직업이 얼마나 쓸데 없는지에 대해서 말하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작가는 이들이 자기 스스로의 반응에 당황한 듯 보인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가? 이 책의 3장의 제목은 ‘불쉿 직업을 가진 이들은 왜 걸핏하면 불행하다고 말할까?’ 인데, 4장의 제목은 ‘불쉿 직업에 종사하면 어떤 기분일까?’이다. 3장에서 의문을 던지고 4장에서 스스로 답하는 형식인데, 불쉿 직업이 인간 정신에 행하는 폭력은 4장의 챕터의 소제목들만 나열해봐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모호함과 강요된 시늉으로 인한 비참함
  • 스스로가 원인이 되지 못할때 느끼는 비참함
  • 감내할 만한 가치가 없는 고통을 받을 때의 비참함
  • 자신이 해를 끼치고 있음을 알 때의 비참함 (죄책감과 공포심 포함)

안타깝게도 불쉿 잡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정보 노동(information work)라는 서비스 분야의 한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직업의 종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업은 우리가 흔히 짐작하듯이 금융/은행, 보험, 부동산, 공공행정 업무, 컨설팅/ 마케팅, 학사행정 등에 해당하는 직업들이다. 이들은 평생 무엇하나 직접 만들거나 해결하는 등의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지만, ‘정보’를 취급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엑셀 스프레드시트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로 무장한채 실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대하여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그들 위에서 군림한다. 그 이유는 조직 내에서 형식적인 서류작성이 실제로 어떤 행동이 실행된 것 자체보다 더 중요시 되기 때문이다.

실상은 그들 또한 권력을 가진자들의 편의 때문에 생겨나게 된 계급에 불과하다. 중세의 봉건주의와 같이 현대의 자본가들은 자신의 권력을 봉건 영주들에게 나누어주듯이 기업의 ‘감독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계속해서 주었다. 이러한 금융부분과 임원계급 (말하자면 다양한 기업 관료제의 상층부)은 역사적으로 보자면 1970년대부터 미국의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융합되기 시작했다. CEO들은 스톡옵션으로 보수를 받기 시작했고, 전혀 관계가 없는 회사들을 이리저리 오가면서 자신이 해고할 수 있는 직원 숫자를 놓고 으스대기 시작했다. 이것은 더 이상 기업에 충성심을 갖지 못하는 기업 CEO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충성심도 느끼지 못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감독과 관리가 점점 더 심해지는 악순환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조금 더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논의를 이어간다. 이를테면 과연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논의하기 위해서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영어에서 가치(value)와 가치들(values)는 조금 다르게 쓰이는데, 어떤 물건이나 금융상품 따위의 경제적인 가치를 말할 때는 전자인 단수형 value를, 가족/종교/정치/미/진리 등의 가치를 말할 때는 복수형의 values를 쓴다. 노동의 가치를 말할 때 우리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돈을 버는지 뿐 아니라 얼마나 의미 있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므로, 이 두가지를 모두 고려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의 사회적 가치와 그 대가로 받는 금액이 반비례 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소방관이나 의료연구가 등이 그 노동의 적절한 댓가만큼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종종 우리는 사회에서 이러한 일을 해줄 사람들의 숫자가 실제로 필요한 것 보다 낮음을 볼 때가 있다. 작가는 유명 대학의 홍보담당자를 반례로 들며, 실제로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점점 숫자도 늘고 연봉도 더 많이 받아가는 것을 지적한다. 정작 사회적으로 필요한 직업은 금전적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없고, 그러다보니 점차 지원자도 줄어들게 되는데, 막상 어떤 가치를 만드는지 알 수 없는 직업은 연봉도 많이 받게 되고, 종사자 숫자도 늘어난다. value와 values의 차이가 더 커지는 것이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직업에 대한 지나친 신성화와 직업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한다는 생각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책의 말미에 작가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정치적인 솔루션 제시에 대해서 극도로 조심스러워 하면서 말을 이어간다. 왜냐하면 이런 대안을 제시하면 사람들은 그것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이 주장을 하려고 그렇게 긴 설명을 한 것인가?’ 와 같이 결론을 지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그의 역사의식을 이해해야만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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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의 컨설턴트 시절에 대해서 생각이 났다. 무의미한 슬라이드, 엑셀작업 등. 클라이언트는 과연 내가 만든 자료를 얼마나 읽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던 하루하루. 아무리 많은 연봉을 받고, 아무리 좋은 곳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해도 채워지지 않던 공허함이 있었다. 직접 제품을 만들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창업을 했고, 10년을 했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지금 돌아보면 과연 제조와 유통에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대해서 오히려 의문을 갖게 만든 10년이었다. 과연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아마도 그 해답은 기술과 의술이라는 생각이 얼핏 든다. 하지만 의술은 사람을 살리는 측면에서 분명한 가치를 만드는 반면, 최근에 등장하는 기술이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애는지 경쟁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로인해서 케인즈가 말한 주 15시간 근무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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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불쉿 잡은 아마도 준법 감시자들일 것이다. 이 책의 본문 271페이지에서도 언급하듯이 준법감시 같은 일은 정부의 규제가 없었다면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을 직업들이다. 그렇다면 불필요한 규제가 난무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해보라. 예컨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이라는 보건부 산하의 기관에서는 모든 주류회사들이 올리는 소셜미디어를 감시한다. 그들은 모든 주류 관련 소셜미디어에 과음경고문구가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는데, 예컨대 내가 우리 양조장에 자주 찾아오는 고양이 동영상을 올리고 우리 양조장 이름을 해쉬태그로 달았을 때 조차도 과음경고문구가 없다고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했다. ‘XXX을 편의점에서 만나보세요’ 라는 글을 올리면, 술을 권유하면 안된다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법적 근거를 들이밀면서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 이들은 메일로 이러한 게시물들을 정기적으로 모든 업체에 보내주는데, 다른 업체들에게 내려진 수정사항도 모두 볼 수 있다. 대략의 업무량만 생각해봐도 이들이 국내 주류회사들의 소셜미디어를 모두 감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숫자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들과 싸우기 귀찮아서 게시물들을 모두 수정하기는 하지만, 정작 화가 나는 것은 이들에게 내 세금으로 급여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이들이 하는 공무가 우리 국민의 건강증진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은행원들도 만만치 않지만, 그들은 AI의 발전과 함께 곧 사라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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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평소 내가 취업 및 고용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과 똑같은 생각이 이 책의 중간중간 나와서 놀랐다. 내가 직장인으로 일했던 10여년의 시간과, 내가 고용주로 일했던 10여년의 시간, 도합 20년을 회사라는 곳에 다니면서 느꼈던 부분을 작가가 잘 표현한 것 같다. 그 생각의 핵심은 ‘시간을 판다’는 현대의 직장의 개념이 말도 안된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서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시간을 컨트롤 하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현대 한국 사회의 노동법이 모순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고용주가 노동자의 시간을 산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고용주들을 악독하게, 노동자들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좋은 고용주-노동자 관계는 시간에서 벗어나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을 이어왔음에도 딱 부러지는 결론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 책에서 언급된 내용들이 나의 생각과 일치할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좀 더 깊이 있는 것 같아서, 다소 길지만 그 부분을 발췌하여 아래에 적어둔다. 아마도 이 글은 가끔 들어와서 읽어볼 것 같다.

“당신이 내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당신이 노닥거리라고 봉급을 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현대의 도덕성은 아주 다르다. 이것은 자신의 것이 강탈당한다고 느끼는 사람의 분노다. 노동자의 시간은 노동자의 것이 아니고, 그 시간을 구매한 사람에게 속한다. 일하지 않는 고용인은 고용주가 많은 돈을 낸 (혹은 한 주가 끝나면 많은 돈을 주기로 약속한) 어떤 것을 훔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도덕적 논리에 의하면 게으름은 위험한 것이 아니다. 게으름은 도둑질이다. (중략) 한 인간의 시간이 타인에게 속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실로 아주 특이하기 때문이다. 이제껏 존재한 거의 모든 인간 사회는 그런 생각을 절대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위대한 고전학자 모지스 핀리는 이렇게 지적했다.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은 도자기공을 보고 그의 도자기를 산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또는 도자기공을 사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고대 세계에서 노예제는 흔히 있는 제도였으니까. 하지만 도자기공의 ‘시간’을 살 수 있다는 생각 앞에서는 말 그대로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중략) 시간을 어떻게 산다는 말인가? 시간은 추상적인 것인데! 그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생각은 도자기공을 일정한 기간 동안 (예를 들면 하루정도) 노예로 빌려준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도자기공은 노예처럼 주인이 지시하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이 이유로, 도자기공이 그런 조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일시적이더라도 노예가 된다는 것, 자유의지를 강제로 포기하고 타인의 일개 수단이 된다는 것은 한 인간(자유민)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일로 여겨졌다. 그 결과 고대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임금노동 사례는 이미 노예인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중략)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 즉, 민주국가의 자유 시민들이 자신을 이런 식으로 임대하는 것이 완전히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보스가 ‘그의’ 시간의 매순간에 부하 직원들이 일하고 있지 않으면 분노하는 이런 현상은 어떻게 해서 벌어졌을까? (중략) 시간은 일을 측정하는 좌표가 아니다. 일 자체가 척도이기 때문이다. (중략) 걸핏하면 고용주의 도덕성과 고용인들의 상식 간의 정면충돌로 이어지는 이 역사를 알지 못하면 현대 노동의 정신적 폭력을 이해할 수 없다. 고용인들은 아무리 초등학교에서 시간 규율에 훈련되었다 하더라도 할 일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하루 여덟 시간씩 꾸준한 속도로 일하라는 요구를 들으면 상식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시받은 일만을 위한 일을 지독하게 분통 터지는 일로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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