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시기에 엄청나게 재밌게 읽었던 책인데 내용중에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내 블로그를 찾아보다가 리뷰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참에 그냥 다시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은 ‘부채’라는 것의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과연 부채라는 것이 인간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부채를 진다는 것, 부채를 갚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받을 ‘무언가’가 있다는 것 등의 철학적, 계급적, 역사적, 도덕적 의미를 곱씹어 본다. 저자는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가? 부채는 왜 생기며, 어떻게 없어지는가? 부채와 폭력, 부채와 권력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 ‘부채’라는 것과 관련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며 부채에 대해서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본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빌리다. 빌려주다. 빚지다. 갚다. 신세지다. 되갚다. 바치다. 보답하다. 등등 부채와 관련된 여러가지 표현들이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꼭 금전이 오고가지 않은 맥락에서 사용된다는 점에서 꼭 부채 또는 부채의식이 경제적 관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부채가 다른 단순한 의무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돈’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부채는 다른 형태의 의무들과는 달리 ‘돈’ 때문에 정확한 양이 정해지는데, 이로서 이전(transfer)가능한 것이 된다. 이 책의 상당부분은 도덕성을 객관적인 산수로 바꾸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무도하게 비쳤을 것들을 정당화하는 돈의 능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도덕성의 논란의 중심에는 폭력이 자리잡고 있다. 폭력이야말로 부채를 둘러싼 모든 논란에 혼란을 일으키는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배우다보면 수많은 국가와 정부가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부채를 쌓게 되고, 그로 인해서 멸망했다는 이야기를 배우게 된다. 국가와 폭력, 전쟁과 군대, 화폐와 부채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 책은 많은 설명을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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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부분에서는 물물교환이 신화라는 것에 대해서 상당부분을 할애한다. 일반적인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물물교환이 진행되다가 불편해서 화폐가 발생했고, 화폐가 점차 발생하여 신용화폐, 가상화폐로 점차 진화했다는 주장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사실 물물교환이 최초의 경제활동이라는 이야기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뻥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기는 하다. 물물교환이 일어나려면 ‘필요의 이중적 일치’가 필요한데, 즉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사람이 내가 가진 것을 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자연적으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음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인류학적으로 전세계의 많은 민족의 자료를 찾아봐도 순수하고 단순한 물물교환 경제에서 화폐가 탄생했다는 증거는 차치하고, 그런 물물 교환 경제의 예조차 지구상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한다. 확인 가능한 민속학적 자료를 보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물물교환은 이방인들이나 적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의 번역을 보면 이는 더욱 명백해진다. 이런 자료들을 추적해보면 물물교환보다는 신용거래가 더 앞서 일어났고, 심지어 이러한 신용 거래는 그 연대로 보건대 주화의 사용보다도 더 앞선다.
사실 돈이라는 것은 주로 관료들이 자원을 추적하고 각 부처들 사이에서 물건의 이동을 추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생겨났다. 민간에서의 대부분의 거래는 신용을 근거로 이뤄졌던 것이다. 즉, 신용은 현대에나 등장한 개념이라는 것이 아니라 주화보다도 오히려 앞서서 사용되었음을 우리는 짐작해 알 수 있다. 가상의 화폐가 가장 먼저 나오고 주화는 한참 뒤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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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는 것은 가치를 측정하기 위한 잣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면 돈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바로 부채라고 말한다. 하나의 주화는 사실상 하나의 차용증서나 다름 없는 개념으로 시작되었다. 통념적으로 은행권은 일정 금액의 ‘진짜화폐’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이고, 또 그런 약속이어야 한다. 닉슨이 금본위 화폐제도를 포기한 것은 1971년으로 불과 50여년 전인 것이다.
이를 좀 더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통화 한 단위의 가치는 어떤 물건의 가치를 측정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진 사람이 다른 인간 존재들에게 느끼는 신뢰를 측정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용과 부채를 측정하는 통일된 시스템이 있고, 이 시스템이 오랜 세월동안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부채를 통화로 삼았다고 말할 수 있다.
고대의 통치자들은 광산과 군인, 세금, 식량 사이의 관계를 놓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대부분의 통치차들은 화페와 주화를 사용하여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 병사들을 먹이고 입히는 데 편리할 뿐 아니라 여러모로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고대 역사들을 보면 전쟁과 왕을 기념한 주화들이 많이 등장하고, 이런 나라에서는 시장이 발전하기도 한다. 반대로 국가가 없는 경우 시장이 없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인도 유럽어에서 ‘부채’를 뜻하는 단어가 종종 ‘도덕직인 죄’ 또는 ‘종교적인 죄’를 뜻하는 단어와 동의어라고 한다. 독일어의 돈(geld), 고대 영어의 배상 또는 희생(geild), 고트어의 세금(gild), 그리고 죄책감(guilt) 등이 그런 예이다.
때로는 우리의 삶 자체가 누군가로부터 빌린 것이며, 빚을 진 상태로 원초적인 부채의식을 가지고 사는 개념이 종교적으로는 자주 등장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를 구세주(redeemer)로 언급하는데, 구원(redemption)의 일차적인 의미는 뭔가를 되사오거나 융자의 담보로 내놓았다가 포기한 것을 되찾아오는, 즉, 부채를 상환함으로써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다.
(어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덧붙이면 이자를 뜻하는 단어는 전세계 어디서나 ‘새끼’의 개념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양이나 소를 빌려주었을때 새끼를 낳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로 추정된다. 이기심 (self-interest)이라는 단어도 중세영어에 처음 등장했는데, 그 이전까지 자애를 뜻하는 self-love 와는 달리 self-interest 는 굉장히 계산적이고 수학적인 마인드를 말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연기하거나, 신에게 바치는 조공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 쉽게 노예제도나 계급의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대 세계에서 자유시민들은 대체로 세금을 내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피정복민들이 세금을 내거나 노예살이를 했는데, 이는 피정복민들이 사회와 국가에 부채를 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 부채가 너무 과도하게 쌓이면 사회적인 긴장감이 커진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역사적으로 ‘깨끗한 서판’ 칙령을 통해서 또는 유대인들의 ‘희년법’과 같이 부채를 탕감해주고 노예를 석방해 주는 제도도 역사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파산법은 부채 탕감을 위한 제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화폐는 물건을 구입하는데 쓰이기 보다는 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고 결혼을 성사시키고, 살인이나 상해로 인한 분쟁을 해결하는 데에 쓰이기 위한 용도로 시작되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명예를 훼손 하는 등 민사 소송의 경우 돈으로 그 죄의 값어치를 매기는 것으로 자리잡았다.
사회가 발달하고 국가가 체계를 갖출 수록 그 안에 사람들 간에는 분쟁이 생기고 여러가지 감정적으로 해결하거나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같은 원시적인 원칙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를 화폐가치로 측정하여 부채로 해결하는 것이 어찌보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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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는 계급의식을 수반한다. 예컨대 고대세계에서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사람들이 서로 돈을 빌려줄 때, 그 조건은 매우 관대했다. 이자를 물리지 않거나 이자가 있어도 매우 낮은 이율이었다. 따라서 부채를 진다는 것은 일종의 열등감을 수반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에서는 당신의 인권이나 평등을 영원히 팔 수 없도록 했다. (고대 사회에서는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음을 상상해 보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부채의 계급의식은 바로 사람의 성(sex)와 죽음(death)일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인신매매나 인신교환의 풍습이 있었음을 볼 수 있는 제도는 많다. 결혼제도에서도 신부를 사고 팔거나, 젊은 여성대 여성으로 교환하는 행위 등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의 목숨도 마찬가지인데, 죽음이야말로 부채를 통해서 계급의식을 상대방에서 심어주는 주요한 장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너의 (혹은 너의 가족의) 목숨을 살려줄테니 너는 나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 사회의 임금 노동은 (많은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묘사하듯이) 노예가 팔릴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자유를 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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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부채의 발전에 대해서 축의시대(BC 800 ~ AD 600), 중세(AD 600~AD 1450), 자본주의 제국시대(1450~1971), 그리고 1971 이후로 나눠서 시대순으로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현물 화폐 (주화/지폐)와 신용화폐는 어떤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진화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며, 국가의 필요, 전쟁 등의 이유로 그때그때 번갈아가면서 순환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이다.
- ‘신용 화폐’ 시대: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처럼 화폐보다는 비공식적인 신용 거래가 중심이었던 시대.
- ‘금속 화폐’ 시대: 기원전 800년경부터 로마 제국 시기까지, 전쟁과 약탈이 만연하며 금, 은 같은 금속 화폐가 군인들에게 보상으로 지급되면서 널리 퍼짐. 노예제도가 발달하면서 주화도 발전하기 시작하는데, 예컨대 로마 최초의 주화가 탄생한 시기와 부채 노예가 최종적으로 불법화된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주화가 사회적 갈등의 해결책으로 사용되었음을 뜻함(군사-주화-노예 복합체)
- ‘인간 중심 신용’ 시대: 앞서 이어진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세 시대에는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이자 받는 행위가 금지되거나 제약받으면서 공동체 내부의 신용 관계가 중요해짐. 전세계적으로 중세는 제국의 붕괴로 시작되었다는 점이 중요함. 군대가 해산되고 군인들도 토지를 받으면서 영주화 됨. 자연적으로 주화의 숫자도 감소. 인간성과 영혼을 탐구하고 윤리와 도덕의 새로운 바탕을 발견하려 노력함. 결과적으로 사회 운동들도 생김.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서 다양한 신용 화폐로 회귀하는 현상.
- ‘자본주의 제국’ 시대: 1450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럽 제국주의의 확장과 함께 금속 화폐 중심의 자본주의가 다시 부채를 폭력적으로 강제하는 형태로 돌아옴. 신세계 정복으로 인해서 유럽에 대량의 금과 은이 유입되면서, 금과 은으로 회귀. 임금이 높아지고, 부(wealth)가 보통 사람들의 수중으로 흘러 들어감. 유럽의 강국들이 다른 문명을 파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함 (중국의 명나라도 그런 위치였지만 유럽처럼 굴지는 않았다!) 이러한 유럽인들의 행동은 전세계적으로 화폐거래를 촉발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자를 받는 부채의 본질과 그런 부채에 매달리는 인간들의 야만적이고 계산적인 행동은 무엇보다 이방인들간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앞서 봤듯이 신뢰 기반의 사회에서는 평등에 기반한 신용거래가 일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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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본주의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과 함께 17~18세기 즈음에 등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금융조직들, 중앙은행과 채권시장, 공매도, 증권거래소, 투기버블, 증권화, 연금 등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법인과 공장, 임금노동 등이 존재하기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는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 자본을 갖지 못한 사람의 노동을 지배하는 체제라고 정의한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시장의 자유 정도로 본다. 시장에서 팔릴 잠재력이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자원을 끌어 모아서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 곧 시장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성장을 요구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이는 기업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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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중요한 내용들이 많아서 최대한 요약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모자란다. 이 책에는 너무나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다. 화폐와 부채, 경제제도와 국가/사회제도에 대해서 급진적이면서 세상 처음 듣지만 묘하게 설득적인 논리가 많이 들어 있다. 이 책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에 저자의 다른 책들도 구매했는데, 나의 책장에 다음 타석으로 대기중이다. 안타깝게도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2020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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