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남성 우울증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유교적 관념과 관습이 여전히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남성들이 한번은 읽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근래 읽었던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얼마 전에 올린 ‘질병 해방’ 후반부에 짧게 등장한다. 질병해방의 저자가 이 책의 저자인 테리 리얼에게 상담을 받고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테리 리얼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고, 남성 우울증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권위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구하고 싶었다. 이 책의 한글판은 아쉽게도 절판되어서 구하지 못했다. 중고 서점도 뒤져봤지만, 별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영문판 ebook을 구해봤는데, 한국에서는 저작권이 막혀서 다운로드가 안됐다. 마지막 방법으로 영문판 서적을 이베이에서 구했다.
Terry Real Homepage
Build Extraordinary Relationships —for Yourself and Others Embark on a transformative journey to learn the powerful relational skills to restore and reignite meaningful connections. For Therapy Professionals For Couples & Individuals For Therapy Professionals For Couples & Individuals Let’s Connect!…
긴 배송기간이 지나고 나서 드디어 손에 넣어서 읽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불과 330페이지 정도의 책이었는데도 읽는 데 한달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이다. 심리학 책이다보니 어려운 단어들이 많이 있어서 핸드폰으로 네이버 사전을 펼쳐놓고 단어를 찾아보면서 읽었다. 첨엔 나 스스로도 끝까지 읽기는 힘들겠다 싶었는데, 결국 끝까지 읽었다. 한 챕터도 빼지 않고, 줄을 그으면서…
이 책에 따르면 남성 우울증은 두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일반적으로 잘 드러나는 overt depression이고, 두번째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잠재적이며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covert depression 이다. 책에서는 남성 우울증에 대해서 필자가 직접 상담했던 여러가지 사례를 제시하면서 다각도로 남성의 우울증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 책의 제목이 명확하게 시사하는 바와 같이 남성 우울증의 어려운 형태는 바로 covert depression 으로 대부분 나타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남성이 본인이 우울증인지 인식조차 못하거나, 우울한 감정이나 원인에 대해서 표현 하지도 못한다는 것. 저자는 covert depression의 유일한 치료법은 overt depression 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남성들이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오픈해서 이야기 하는 것부터가 첫걸음이다.
초반부에 기억에 남았던 점은 남성과 여성의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 대한 또래집단(peer group)의 반응이었다. 여성의 경우엔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있거나 하면 그 커뮤니티에서 해당 여성을 보호해주고 다독여주는 반면, 남성 커뮤니티에서는 우울증이 있다고 하면 배척되거나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들은 자신이 우울증이 있다는 점을 표현하는 것도 매우 힘들지만, 자기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 조차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종의 불감증도 있다. 요컨대 남자들은 수치심과 취약함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 조차도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인지하더라도 드러내 놓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은 어린 아이였을 때는 공통적으로 많은 애정을 받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남성은 애정받는 영역에서 밀려나게(pushed-out) 된다. 이렇게 밀려난 남성은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견뎌낼 것을 강요받고, 또래 집단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남자답게’ 우울증 따위는 이겨내야 한다는 pressure 도 겪게 된다.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친구 또는 동료에 대한 인식도 남성과 여성이 매우 다르다. 여성들은 품어주고 케어해 주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지만, 남성들 사이에서는 ‘나약해 빠진 놈’ 정도로 치부되거나 심지어는 ‘내가 놀리거나 약탈할 수 있는 대상’으로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I don’t want to talk about it’ 이라는 점 자체가 여러가지 의미를 갖게 되는데, 그만큼 남성 우울증은 당사자조차 말하기 싫어하는 토픽인 것이다.
한편, 한 연구에서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여성적(feminine)이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남성들과 소년들에게 남성적(masculine)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묘사해보라고 물어본 것이다. 여성들은 ‘공감하고’, ‘다른 사람을 돌봐주고’, ‘케어하는 등’ 마음을 쓰는 것 등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쓰는 반면, 남성들은 남성성을 묘사할 때 ‘의존적이지 않고’, ‘약하지 않은 것’ 등 부정적인 (not ~~~) 방식의 표현으로 묘사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성성이라는 것은 ‘여성성이 아닌 것’을 의미한다고 보이며, 소년들이 남성성을 얻어 간다는 것은 발달의 과정이라기 보다는 원래 인간이 가지고 있던 여성성을 버리는 과정(negative movement)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남성 우울증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중독, 관계(intimacy)의 단절, 그리고 부계를 타고 대대로 내려오는 레거시 또는 트라우마의 극복과 연관되어 있다는 내용이 깊이 공감되었다. 반대로 이는 남성 우울증이 발현되는 형태를 말하기도 하는데,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에도 많은 남성 우울증은 중독(또는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다음은 관계의 단절이 기다리고 있다. 남성들이란 기본적으로 친밀함을 장착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이 책에서는 친밀함의 회복(learning intimacy)이야 말로 남성 우울증 극복에 있어서 핵심이라는 것을 여러차례 설명한다.
우리가 잘 아는 나르시스 (Narcissus 또는 나르키소스) 이야기가 이 책에서 자주 나온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르시스 이야기의 주제는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사람에 대한 풍자나 경고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나르시스는 자존감이 매우 낮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가 계속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느라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연못을 바라본 것은 자기애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자존감이 높고 의존성이 낮은 사람이었다면 그곳을 과감하게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집착이나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 주체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언어적 또는 물리적으로)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중독에 빠지기도 하는 것을 나는 주변에서 많이 봤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지는 ‘남자다움’ 이라는 개념에 대한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된다. 저자는 폭력적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꽤 많이 하는데,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epilogue는 꽤 감동적이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게 되는 많은 심리적 부담(legacy), 아버지의 폭력성, 그리고 아버지의 중독적인 모습이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치는 남자다움의 가치 등이 많은 남성들에게 우울증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도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나는데, 내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어떤 틀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남성들은 자신의 아들을 보면서 ‘이 아이가 이렇게 나약해서는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텐데..’ 라고 걱정을 하면서 아들을 강인하게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누구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훈육이 들어가게 되고, 이것이 많은 남성들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교감이 많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이 부분이 무척 공감되었고, 반대로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공백감이 늘 컴플렉스로 남아 있기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남성들과 배우자 또는 파트너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특히 남성들이 여성성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대나 희망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감정이나, 여성이 어떤 일을 남자에게 부탁하거나 시킬 경우에 조심해야 하는 점들도 나온다. 남성들은 세상을 ‘능력이 뛰어나야 존중받을 수 있는 성과주의 세계’ 로 인식하는 반면, 여성들은 세상을 ‘관계중심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많은 남성과 여성이 바라보는 배우자/파트너로서의 관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도 중요하다.
특히 20세기부터 등장하는 산업화 시대에 성과주의에 물들여진 남자들은 자신이 가계를 부양해야 한다는 (breadwinner) 마인드셋 때문에 스스로의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경향도 있다. 이러한 개념은 사실 굉장히 최신의 것이라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산업화 시대 이전에는 가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업무가 비교적 평등하게 나뉘어져 있었고, 남성은 농장, 밭 등에서 일하고, 여성은 육아나 caregiver 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는데, 남성중심의 산업사회에서 남자는 돈벌어오고 여자는 집에서 하루종일 살림만 하고 라는 방식으로 나뉘면서 여성이 남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남성들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여성들은 집에 돌아오는 남성들의 무드와 표정을 잘 읽고, 그들이 다음날 아침 다시 힘차게 직장으로 나가서 돈을 벌어 올 수 있도록 하는 치어리더였다는 표현까지도 나온다. 그만큼의 부담감을 반대로 남성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성들의 과로, 성과주의에 대한 집착, 성공에 대한 집념 등을 과도하게 지니게 된다. 특히 20세기 영미적 산업주의와 자본주의를 택한 나라들에서 남성들의 우울증을 높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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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남성 우울증 극복의 중요한 열쇠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회복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남성은 원래 있던 곳에서 pushed out 되는 것과 같은 성장과정을 겪으면서 ‘남자다울 것’을 강요받게 되기 때문에 분리된 자아를 종종 가지게 되며, 자신의 솔직하고 연약한 내면을 방치하는 일도 생기게 된다.
자기 자신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남들과의 관계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는 다소 원리원칙적인 이야기를 이 책에서는 솔루션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성숙함 (maturity)라는 것이다. 아울러 ‘자존감’은 얻게 되는 status 가 아니라 행해지는 action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진심으로 대한민국 모든 남성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이 영문판밖에 없고, 그리고 어려운 단어 투성이라서 읽기 쉽지 않다는 점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이 책은 2000년대 미국의 작가가 쓴 책이지만 지금 2024년에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한 내 주변의 30, 40, 50 대 남성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례들과 도움이 되는 조언들이 가득하다. 가뜩이나 가부장적이고, 군대/학교/회사 모두에서 ‘남자다움’을 일상적으로 강요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우울증에 대해서 느끼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아 하는 남성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입을 열고, 관계를 회복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의 단초를 얻고 싶다면 다소 고통스럽지만 이 책을 한번 보는 것도…
질병 해방 – 피터 아티아, 빌 기퍼트
인간의 건강에 대한 개념이 점차로 바뀌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랜 기간 외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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