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술혼술에 대하여

예전에 영국을 출장으로 많이 갈 때 펍에 많이 갔었다. 펍에 가보면 혼자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퇴근길에 혼자 펍에 들러서 한잔 할 수 있는 모습이 멋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이 엄청 외롭다고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COVID-19는 한국의 움주문화를 10년쯤 선진화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홈술혼술도 보편화 되었고, 회식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못 마시고 못 살던 시대에 회식은 연대감 형성이라는 미명하에 단백질 보충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위계질서 강한 집단에서 정신줄 살짝 놓고 평소 하지 못했던 말을 하는 역할도 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기능적 측면의 회식은 그 필요성이 반감된 것이 분명하다.

나는 창업 초기부터 언젠가 한국이 홈술과 혼술의 나라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부장님이 알아서 시켜주고 말아주는 소맥 말고 자신의 취향대로 선택한 술을 마시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투자유치 자료에도 그런 시장의 변화가 가장 중심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야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사실 나도 예전에 비하면 홈술과 혼술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주로 저녁에 집에서 축구를 보거나 넷플릭스 하나 틀어넣고 보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홀짝 홀짝 마시다보면 1-2캔 정도는 가볍게 비우고, 많이 마시면 3-4캔 정도를 마시게 된다. 내가 마시는 맥주들은 종종 도수가 높은 것들도 있어서 4캔을 마시는 날은 거의 만취가 된다. 최근에는 하이볼이나 진토닉도 종종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이렇게 홈술/혼술을 하는 것의 장점은 명확하다.

  1. 내가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신다.
  2. 내가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신다
  3.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동시에 하면서 마신다 (주로 컨텐츠를 시청하면서)

그런데 생각해보면 1번은 술을 더 많이 마시게 하는 요인이고, 2번은 술을 덜 마시게 하는 요인이다. 3번은 술을 마시는 핑계를 제공해주는 요인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2번 덕분에 나는 정확하게 나의 주량을 파악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알코올로 계산했을 때 몇 그램에서 몇 그램 사이에서 내가 취하는지 비교적 정확하게 알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더 자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홈술 혼술을 하다보니 더 자주, 부담없이 마시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한잔 두잔이라는 생각에 덜 죄책감이 드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집에서 마시다보니 일단 냉장고에 술이 들어 있기만 하면 접근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도 중요한 것 같다. 편의점에서 어차피 4캔 12000원에 파니까 사는 김에 잔뜩 사서 냉장고에 쟁여 놓으면 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게 과연 좋은 일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사람들이 각자 혼자 집에서 술을 마시는 세상이 좋은 것인가?

[full] 2024 중독사회 1부 – 젊고 멀쩡해 보이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나라 | 추적60분 1356회 KBS 240223 방송
2024 중독사회 1부 – 젊고 멀쩡해 보이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나라방송일시 : 2024년 2월 23일 금요일 밤 10시우리나라의 술 문화는 주로 단체생활에서 시작됐다. 대학 입학 후 성인으로서의 자유를 즐기며 동기, 선배들과 단합을 다지는 ‘의리주’부터 사회생활의 일환인 회식 자…

넷플릭스에서 How to Live 100 이라는 블루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 다큐멘터리는 장수마을에 대한 비밀을 취재하는 내용인데,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오래 사는 장수마을들의 공통점이 과연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채식, 운동, 적절한 노동, 정신적인 건강, 오래 지속되는 커뮤니티 등등 우리가 들으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그 중간에 갑자기 Wine 이 나온다. 그러니까 술들을 꽤 마신다는 점인데, 신기하지 않은가?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술을 마실 때 절대로 혼자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깔깔거리면서 즐겁게 마신다는 것이 바로 중요한 점이다. 집에서 혼자 TV를 보면서 마시는게 아니라, 친구들과 이웃들과 모여서 함께 즐겁게 대화를 하면서 마신다는 점이 주목할 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모두 각자 혼자 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회는 얼마나 우울한가?

How to Live to 100, Wherever You Are in the World
Dan Buettner’s Secrets of the Blue Zones docuseries reveals 12 habits that can add years to your life.

나는 우리나라 사회의 우울함에 대해서 종종 생각한다. 얼마전에 화제가 된 Mark Manson의 아래 유튜브를 보면 우리나라를 전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사회로 묘사하고 있다. 그 원인을 과도한 경쟁과 사회적인 압박감 등으로 돌리고 있다. 전쟁중인 우크라이나보다도 출산율이 낮은 대한민국 사회는 정말로 우울함과의 전쟁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는 요즘 종종 길을 걸을 때 검은색 패딩을 몇개를 보는지 카운팅한다. 길거리에 보이는 패딩 점퍼 중에서 검은색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외국을 다니면 겨울에 색색깔의 외투를 입은걸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검은색 패딩이 많다. 주차장에서는 흰색과 검은색 차의 비율을 한번 매겨본다. 그 외의 색깔의 차들의 비율은 정말 10% 이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종종 회색이 있을 뿐이다.

가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아주 작은 마을 같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아주 가깝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튀는 행동을 하면 온 마을이 쑥덕거린다. 그래서 절대로 어떤 이상한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 항상 남들이 바라보고 있음을 걱정해야 한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술 조차도 그런건 아닐까? 우리 동네인 광진구 광장동은 아파트가 많은 동네인데, 대개 이런 동네는 교육타운이 되고 만다. 아이들이 많고, 학부모들이 많고, 학원이 많아지다보니 자연스럽게 교육타운이 된다. 이런 교육타운의 특징 중에 하나는 술집이 없는 것이다. 종종 아이의 친구 부모들과 이야기해보면 애 교육에 쓸 돈도 없는데 술마실 돈이 어디 있겠느냐? 라는 말을 하신다. 그렇지만 변변한 호프집이나 펍도 없다는 것이 좀 의아했다.

그렇지만 종종 학부모들도 술을 마신다. 집에서 혼자. 혹은 부부끼리. 밖에서 마시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누가 볼까봐” 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동네에서 누가 볼까봐 술을 못마시는 것이다.

PUB의 어원은 Public House라고 한다. 모두가 모여서 술한잔 하면서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던 영국의 문화에서 서 나온 말이다. 퍼블릭 하우스가 그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었고, 펍에서 사람들은 하루의 피로를 풀고, 커뮤니티와 커뮤니케이션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마을마다 펍이 있고, 펍이 그 커뮤니티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술이라는 매개체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21세기 서울에서는 집에서 혼자 마셔야 한다.

이런 생각이 이요즘 내 업에 대한 관념을 흔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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