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김지윤의 지식Play에 소개되어서 구매했고, 읽었다.
이 책의 부제는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이다. 사실 천년까지는 아니고 대략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인터넷 정보혁명, AI 등 인간의 기술이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마일스톤들을 돌이켜보면서 과연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경제학자 또는 대학의 교수님이 보실 때에는 흥미로운 연구주제일지 모르지만, 스타트업 업계에서 본다면 이러한 질문은 좀 진부할지도 모른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사업의 혁신성을 평가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얼마나 많은 인력을 감소시킬 수 있는가?’ 라는 것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마존이 얼마나 많은 서점을 문닫게 할 수 있는가? 우버가 얼마나 많은 택시기사를 집으로 보낼 수 있는가? 이런 면에서 보면 그 산업 또는 서비스가 발달함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노동을 감소시킬 수 있는가에 과연 그 기업의 기업가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기술적인 진보라는 것은 원래는 고용주로 하여금 잉여의 자본으로 더 많은 노동력을 고용하고, 더 많은 투자를 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저자는 이를 productivity bandwagon (생산성 밴드왜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컨베이어 벨트, 분업, 자동화, 로봇 등은 잉여의 자본으로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 것 같지만 고용주는 오히려 더 인력을 줄인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노동은 더욱 세분화되고 자율성이 제한되어 노동의 질 자체도 저하되는 경우를 인류의 역사에서 여러번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노동자들의 삶을 더 낫게 하는가? 저자의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의 삶을 향상시킬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희생자들이 발생하기도 하고, 먼 길을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 발전이 정보를 더 균등하고 효율적으로 전파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정치적 편향성을 더 강화시키는 것도 이러한 사례중에 하나이다. 기술적인 진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의 부작용을 낳는 것이다. 오른쪽 사람들은 더 우경화 되고, 왼쪽 사람들은 더 좌경화 되는 경향을 심화시킬 뿐이고,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더 강화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편향성만 증대했고, 여기에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이익극대화를 위한 알고리즘이 큰 몫을 했던 것이다.
정치적 진보도 그렇다. 흔히 진보정당이라고 부르는 정당들은 자신들의 주장대로 정책이 집행될 때,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사람들의 삶이 상대적으로 더 평등하게 부를 분배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진보정당들이 주장하는 정책들이 실행되었을 때 거꾸로 불평등이 커지는 경우도 보게 된다. 진보 정당들은 종종 규제와 통제를 강조하기도 하는데, 규제와 통제가 강화될 수록 오히려 몇몇 기업들이 규제 안에서 (새로운 시장진입 없이) 아주 편하게 부를 독과점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 책에는 앞서 언급한 사례들 이외에도 노동운동, 노예해방, 인공지능, 디지털 화폐 등 재미있는 주제들이 많이 다뤄진다. 요약하고 나면 아주 자명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헷갈리는 주제이다. 과연 기술적인 진보는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가? 그렇지 않은 경우들과 과연 기술의 진보에서 어떤 맹점들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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