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생각 + 근황
1
밤 늦게까지 일을 했다. 자료를 만들어야 할 것들이 많다. 주말에도 랩탑을 켜고 일을 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영업 하거나 관계형성을 하다가 최근에는 가만히 앉아서 재무제표를 꼼꼼이 보고, 현금과 재고 등을 더 깊숙히 보게 되면서 많은 반성을 한다.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조그 더 일찍 욕먹을 각오를 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더라면… 조금 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빨리 내려 놓았더라면… 후회가 든다. 대표는 욕 먹을 때 제대로 욕 먹는게 낫다. 뒤로 미루면 결국 더 큰 욕을 먹게 되니까 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기를…
2
비즈니스 미팅을 갔는데, 상대방이 나와 만나기 전에 이 블로그를 꼼꼼이 읽고 오셨다. 대충 읽고 오신게 아니라 꽤나 깊숙히.. 뿌듯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하다. 내가 도대체 여기다 뭐라고 끄적여 놓은 걸까? 블로그라는 곳이 뇌의 확장영역이기도 한데, 때로는 내가 여기 뭐를 저장해 놨는지 까먹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나의 뇌 속을 누군가가 들여다 봤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모르는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글을 쓰는 행위라는 것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나를 드러내는 것 뿐 아니라,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비춰볼 수 있으니…
3
불황이다. 괴담이 돈다. 최근에는 나도 투자자들을 모두 만나면서 회사 상황도 보고하고 올 한해를 마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두들 걱정이 많다. VC들은 포트폴리오 회사가 적어도 100개에서 많은 경우에는 200-300개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정말 다양한 산업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셈이다. 건설, 부동산 쪽은 아무래도 이자 부담이 큰 산업이다보니 흉흉한 이야기들이 계속 들렸지만, 이제는 제조는 물론 유통까지도 괴담이 돈다. 과거의 경제위기와 다른 점은 예전에는 이 정도의 분위기면 넘어지는 곳들도 나타났는데, 아직까지 이번 위기에서는 크게 넘어지는 회사가 없다는 점이 좀 신기하다. 그래서인지 몇몇 사람들은 아직 불황이 시작도 안했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자빠져야 시작의 시그널이 있다는 것이고, 터질 것들이 터져야 새로운 피가 돈다는 것이다.

4
오랫만에 다본데이를 갔다. 디캠프는 8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창업에 대한 꿈을 꾸던 시절에 늘상 가던 곳이다. 당시에 장병규 의장님과 스타트업 한국의 초고를 쓸 때였는데, 디캠프에서 미팅이 많이 있었다. 장병규 의장님도 오랫만에 오신다고 해서 잠시나마 얼굴도 뵐 겸 갔다. 정말 잠시 있다가 가셨지만, 역시 마음에 남는 말들 많이 해주고 가셨다. 다본데이는 친정같은 곳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꿈을 꾸었던 장소, 그런 꿈을 북돋워 주었던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그 꿈에 기름을 부어 준 사람들을 만난다. 나와 비슷한 팀이 100개 정도 더 있는 곳이다. 이런 혹독한 불황의 한 가운데에서도 투자를 받는 곳이 있고,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에너지를 얻고 왔다.
5
우리가 맥주를 망쳤다. 분명 더 잘 할 수 있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정신차리고 다시 좋은 맥주를 선보이면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은 있다. 맥주에서 와인으로, 와인에서 위스키로, 위스키에서 하이볼 등으로 계속해서 유행이 옮겨 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흐름들은 이제는 빠르고,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럴때일 수록 무엇이 바뀌는가? 라는 점 보다는 무엇이 변하지 않는가? 라는 점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항상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이 있고, 그것을 잡아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해 보면, 계속해서 요동치는 술의 트랜드 안에서 헤엄치다가, 인플루언서들의 뒤꽁무니를 쫓다가 올 한해가 간 느낌이다. 이럴 때 일수록 중심을 잡고 호흡을 하며 내년을 준비해야 한다.
6
날이 추워지면서 아침 수영에 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아침 수영을 나올 때 코끝에 느껴지는 대기의 온도도 확연히 달라졌고, 바깥 세상의 밝기도 너무나 어둡다. 이렇게 춥고 어두우니, 늘 오던 아침 수영 같은반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도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은 꾸준히 나온다. 특히나 잘 나오는 분들은 역시 중년 여성 분들이다. 이 분들은 분명 술도 많이 안드시고, 훨씬 규칙적으로 생활하시는 분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분들은 몇년이 지나도 계속 아침수영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분들이다. 지금의 불황도 마치 아침수영 같다. 어둡고 춥다. 주변에 살아남는 업체들이 줄어든다. 출석률이 떨어진다. 그래도 나오는 사람들은 꾸준히 나온다.
7
수영을 하고 냉탕에서 5-10분 정도 명상을 한다. 살을 에는듯한 냉수의 차가움을 느끼면서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찬 물 속에 앉아서… 행복이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인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나면,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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