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문답 11 – 왜 수입맥주에선 외국에서 마시던 그 맛이 안 나나요?

70년대

역사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맥주를 점차 마시게 된 것은 70년대 후반 이후로 본다. 그 이전까지는 소주와 탁주의 시대였는데,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식생활도 서서히 서구화되면서 맥주 소비량이 늘어난 것이다. 방송에서 종종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가 70년대 말 대학가의 중요한 아이콘이었다고 하는데, 이 점은 지금의 대학가에 대비해서 보면 안된다. 80년대 대학진학률은 30%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생으로서 청바지, 통기타와 함께 생맥주를 즐기는 것은 굉장히 브르주아 문화였다. 필자의 친형님은 88학번인데, 그때만 해도 맥주는 매우 비싼 술이었기 때문에 졸업한 선배들이 와서 사줄 때나 마실 수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70년대 후반과 80년대에 최초로 맥주에 눈을 뜨고 본격적인 소비를 시작한 사람들은 그래도 소득이 높고, 대학을 나오고, 서구식 식문화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80년대

맥주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88년 서울올림픽으로 본다. 86 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를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변방의 작은 나라로 인식하고 있던 세계의 시민들에게 ‘발전하고 있는 신흥 국가’로 인식하는데 일조하였다. 86/88년의 대규모 국제 행사를 기점으로 정부 또한 대대적으로 사회를 서구화, 국제화 하는 방향으로 개편하고자 하였고, 그 과정에서 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이 최초로 생기는 등 식음적인 측면에서도 의미있는 변화들이 이루어졌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어렸을 때 사립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부유한 집안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그 중에 한 친구가 잠실 갤러리아 (한화쇼핑) 근처에 있던 맥도날드에서 생일파티를 했었는데, 그 사건(?)이 9시 뉴스에 나와서 일부 부유층 자제들이 외국계 레스토랑에서 생일파티를 했다고 앵커가 말했다. 어린시절이었지만 그 충격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외국에서 들어온 것들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졌는지 살펴볼 수도 있는 기억이다.

90년대

90년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는 아마도 1989년에 이루어진 해외여행 자율화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을 자유롭게 왕래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33년 전 이라니 MZ세대 여러분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해외를 나가려면 복잡한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90년대 대학생들에게는 해외 배낭여행을 갈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신혼부부들도 제주도가 아닌 외국으로 신혼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여행에서 가장 큰 재미는 무엇보다 그 지역의 음식과 술을 맛볼 수 있는 것. 9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일본은 물론 멀리는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면서 그들의 맥주를 못보게 되었고, 이들은 지금까지 한국의 맥주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차원의 맥주에 놀라게 되었다. 특히 여행중에 해외의 양조장 투어라도 한 사람이라면 투어 막판에 양조장에서 시음한 그 맥주이 맛을 평생 잊을 수 없어했다.

2000년대

86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맥주 소비량 증가를 본격적으로 앞당겼다고 한다면 2002년 월드컵은 그야말로 온 나라를 축제 분위기로 만들면서 맥주가 대중의 술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생산량과 소비량 측면에서 맥주는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마트와 편의점이라는 보다 현대화된 유통채널이 보급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대학생들은 MT에서 막걸리보다 맥주를 마시는 것이 더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고, 맥주를 마신다는 것이 부르주아적인 장면으로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적, 서민적인 모습으로 보여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수입맥주는 여전히 비싼 것이라서 쉽게 마시기는 어려웠다. 서울의 주요 유흥가에 ‘와바’ 같은 브랜드의 수입맥주 전문점들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들 점포에서 팔리는 수입맥주는 주로 각 나라의 1등 라거들이었다. 마트나 편의점에도 수입맥주가 일부 도입되기는 했지만, 프리미엄 맥주로 포지셔닝 되면서 꽤나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국산 맥주보다 해외의 맥주가 더 맛있다는 인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2010년대

2006년 한국 칠레 FTA를 시작으로 한국은 다양한 나라들과 FTA를 맺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 중반인 2011년에는 EU, 2012년에는 미국과 FTA가 체결되었다. 다양한 품목들이 그 혜택을 봤겠지만, 아마도 일반적인 시민들 입장에서는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이 바로 수입맥주 4캔 만원이었을 것이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으나, 2012년에 한 대형마트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수입맥주 4캔만원 교차할인은 한국 맥주 역사상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다. 높아진 국민소득과 서구화된 식생활, 거기에 모던한 유통채널인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전세계 대표맥주들을 아무것이나 골라 담에서 4캔에 만원에 살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파격이었다. 소비자들은 해외여행에서 맛보았던 다양한 맥주들을 드디어 집 근처 마트와 편의점에서 자유롭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2013~2015년 즈음에는 서울의 이태원, 경리단을 중심으로 수제맥주가 조금씩 도입되었고, 수입맥주의 항목에 ‘수제맥주’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상이 대략적으로 요약해본 7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수입맥주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요약이다. 그런데 잘 읽어보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수입맥주가 도입된 것은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맥주문화라는 것 자체가 대중화 된 것이 불과 30년 남짓이다. 한 100년 쯤 후에 우리나라의 맥주 역사를 돌아본다면 지금의 수입맥주는 아주 초기단계에 불과했다고 기록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수입맥주는 ‘각 나라 1등 라거’ 또는 ‘글로벌 수준으로 유명한 에일맥주’ (독일 바이젠, 아일랜드 스타우트) 정도로 요약할 수 있고, 생각보다 다양한 주종이 수입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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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사업을 하고, 양조장까지 운영한다고 하니 내 주변에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맥주는 말이야… 제가 XYZ 나라에 갔을때, ABC 양조장에 갔을 때 투어를 하고 마셨던 그 맥주가 가장 맛있었거든요. 왜 국내에 수입이 되는 수입맥주에서는 제가 그 나라에 가서 맛보던 그 맛이 나지 않을까요?’

사실 이 질문은 여러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어서 한마디로 대답하기 쉽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음의 5가지 이유 중에 하나일 것 같다.

1) 온도 때문에 변질된 경우

맥주 최대의 적 3가지는 온도, 햇빛, 산소이다. 맥주의 제조과정과 유통과정은 이 세가지를 차단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포장기술이 발달해서 햇빛과 산소는 완벽에 가깝게 차단이 되지만, 온도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맥주는 단위 부피에 비해서 원가가 매우 낮은 제품이므로 거의 항공운송은 안하고 대부분이 해상운송을 하는데, 유럽에서 우리나라로 올 때 해상으로 수입되는 경우에는 적도를 돌아서 오는 경우도 많다.그 과정에서 컨테이너 안의 온다고 얼마나 올라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데, 이 과정에서 맥주의 맛이 변화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2) 양조장에서 마신 맥주의 신선도

맥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쉽게 무시하는 것이 맥주의 신선도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로컬맥주, 지역양조장의 개념이 강하지만 우리나라는 땅도 좁고 2~3개 회사만 존재해 와서 그런지 가까운 곳에서 최근에 생산된 맥주가 신선하다는 생각을 잘 못한다. 하지만 실제로 양조장에서 갓 만든 신선한 맥주를 맛보면 정말 다르다고 느낄 수 있다.

3) 경험

사람들은 자신이 맛에 대해서 민감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수많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한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절대미각을 가진 사람이 간혹 있을 수는 있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맥주를 맛보는 환경이나, 맥주에 대한 사전지식 또는 설명 등에 쉽게 좌우된다. 예컨대 종종 국제대회에서 맥주 심사보는 심사관들끼리의 불문율 중에 하나는 각자 개별 맥주에 대해서 심사를 끝마칠 때까지 절대로 자기가 느끼는 맛과 향을 주위 사람들 귀에 들릴 정도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맥주에서 사과향이 난다고 해서 ‘사과향이 나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단어를 듣는 주변의 사람들은 실제로 그 맥주에서 사과향이 나는지, 나지 않는지와 상관없이 사과향이 난다고 느낄 수 있다. 그만큼 맥주의 맛는 주변의 환경이나 단어 또는 사전 설명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이상 해당 맥주에 대해서 얼마나 공들여 만들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좋은 재료로 만들었는지 등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그 다음에 그 맥주를 마신다면 맛있을 확률이 크다. 투어로 인해서 긴 거리를 걷느라고 피로해진 탓에 목이 말랐던 당신의 상태는 둘째로 치더라도 말이다.

4) 진짜로 다른 맥주일 수도…

실제로 양조장에서 서빙해준 맥주와 국내로 수입되는 맥주는 다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수입유통상의 여러가지 요소 때문에 대부분 수출하는 맥주는 양조장에서 멸균을 해서 출고한다. 하지만 투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양조장에서 서빙하는 맥주는 효모를 멸균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나라마다 식품의약안전법이나 주세법이 조금씩 상이해서 해당 나라에 맞게 제품을 조금씩 변경해서 출고하기도 한다. 따라서 당신이 양조장 투어에 가서 마신 맥주와 한국의 편의점에서 사서 마시는 그 맥주는 브랜드는 같아도 전혀 다른 맥주일 수도 있다.

5) 양조장이 다른 경우

같은 맥주회사의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양조장은 세계적으로 여러 군데에 분포하기도 한다. 예컨대 아사히 맥주의 경우 한때 한국에 들어오는 생산분이 중국 아사히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던 버드와이저와 호가든 맥주도 한때는 오비맥주의 광주공장에서 국내 생산으로 만들기도 했다. 양조장이 다르면 아무리 본토의 맛을 똑같이 구현한다고 해도 조금은 맛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대기업의 경우에는 다른 생산공장의 제품들을 주기적으로 수거해서 맛을 보고 품질에 대해서 엄격하게 관리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게 엄격하게 관리해도 생산 공장이 다르다면 물/몰트/홉 등 원재료, 유통과정, 신선도 등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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