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3개월 정도 채식을 하다가 사업상의 이유로 중단했다. 2020년 4월에 다시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이제는 스스로 비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완전한 비건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비건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지향점이며 라이프 스타일이므로.
비건은 일종의 취향으로 간주되지만, 다른 취향과 좀 다르다. 비건은 자신이 비건이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으로부터 ‘왜?’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만약 당신이 동성애자라면 자신의 성적 취향을 밝혔을 때 상대방이 ‘왜?’라고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그냥 넘어갈 확률이 99%다. 하지만 당신이 비건이라고 한다면 거의 99% 이상의 확률로 ‘왜?’ 혹은 ‘어떤 이유로?’ 라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나는 상대방이 ‘왜?’라고 물어볼 때 마다 대답을 고민한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비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격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느끼지 못해도 상대방이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 이에 나는 최대한 공격적이지 않고 논리적/이성적/합리적으로 왜 내가 비건의 삶을 택했는지, 그리고 유지하는지 최대한 공격적이지 않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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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맥주 사업을 한다. 따라서 많은 술자리를 갖는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의 술 자리에는 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외가는 혈관 관련 이슈가 많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도 혈관 이슈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혈관 관련 이슈로 고생을 하고 계시다. 나 또한 외탁을 많이 했다. 마흔을 넘기면서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졌고, 내가 섭취하는 술과 고기의 양 그리고 유전적 영향을 고려할 때 놀랍지 않았다. 중학교때부터 나를 봐주시는 광진구 구의동 장미영 내과의 장미영 선생님은 ‘지금 태경씨는 길가다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아요. 약을 써야 합니다’ 라고 하셨다. 대신에 그 약은 한번 먹으면 계속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몇차례 채식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고, 채식이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음을 알았기에, 선생님에게 채식을 좀 해보고 그래도 정 안되면 약을 쓰자고 제안했다. 3개월만에 나의 LDL 콜레스테롤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2. 우리 회사 브루어리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데, 주변에 우사와 돈사가 많다. 나는 소나 돼지를 키우는 분들을 몇몇 알게 되었는데, 이분들의 반응 중에 공통적인 것이 있었다. 자신이 키운 가축은 먹지 않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가축과도 어느 정도의 감정 교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자식처럼 키웠다’ 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나도 소나 돼지와 눈이 마주치고 제자리에 오랜 시간 서 있었던 경험이 있다. 아무리 봐도 그들은 음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나의 송곳니로 그들의 가죽을 뚫고 그 밑에 숨겨진 살과 내장과 피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은 내 앞에 있는 생명이었다. 수명이 10년이 넘는 닭의 대부분이 1-2개월 안에 죽는데, 그것은 단지 우리가 잡아먹기 위해서 이들을 기르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소나 돼지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 생명들은 단지 우리에게 잡아 먹히기 위해서 존재해야 할까?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3. 나는 대중적 인문과학서적을 좋아한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책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 등이다. 이 책들에서 나 나름대로 얻은 인사이트가 하나 있다. 인류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는데, 야만은 나와 다른 것을 타자화(他者化)하는 것이고, 문명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능력을 기르면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다른 성별의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역량과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수백년이 흘렀다. 다른 계급의 사람들도 나와 같이 감정을 느끼는 것을 깨닫는데 인류는 수백년이 흘렀다. 다른 인종의 사람들도 역시 나와 같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깨닫는데 수백년이 흘렀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을 조금 더 확대해보면 동물들도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죽기 싫어 한다고 느낀다. 인간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이 세상을 공유하는 많은 존재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인류의 흐름 속에서 다른 생명체의 아픔을 당연하게 여기는 쪽 보다는 그 고통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쪽에 서고 싶었다. 내가 가장 애청하는 프로그램 중에서는 ‘개는 훌륭하다’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느낀다. 다 똑같다.
4. 인터넷에는 많은 다큐멘터리, 통계, 단체들, 그리고 그들이 올리는 많은 데이터들이 있다. 물론 이들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몇몇 영상들은 나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도축을 하는 장면이 그랬다. 도축을 하는 장면은 아무리 좋게 설명하려고 해도 ‘잔인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보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보고 난 다음에는 그 장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특히 유튜브에 있는 Vegan 2020 다큐멘터리는 징그러운 장면이 없고, 매년 발행되는 Vegan 20xx 시리즈 중에서 가장 최고라고 생각한다. 꼭 보기 바란다.
5. 비건으로의 삶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람들은 단백질에 대해서 많이 물어본다. 그런데 Netflix 에 올라와 있는 ‘The Game Changers’ 와 같은 다큐멘터리에도 나와 있다시피 채식은 프로 운동선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운동 퍼포먼스를 오히려 향상시킨다. 통계적으로 인류 100%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단백질 문제는 허구라고 생각한다. 지구상에 근육이 많은 말, 코끼리, 황소, 기린 모두 채식동물이다. 70년대 인당 5kg 수준이었던 연간 육류 소비량이 2020년에는 50kg 이상 늘어났다. 그러면 사람들의 몸 속에 있는 지방과 단백질은 10배가 되었을까? 아니다. 사람들은 10배나 힘이 강해졌을까? 단백질과 관련된 믿음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모르지만 거짓인 것 같다. 나 또한 채식을 하고 나서 단백질에 전혀 문제를 못 느낀다. 콩, 버섯, 시금치 등을 통해서 충분한 단백질을 얻고 있다. 진화적으로도 인류는 최근에2~3세대의 인류만큼 육식을 많이 한 적이 없을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식단의 3~5% 이하로 육식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가 힘들 지경이다. 진화를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 몸이 이 정도의 급격한 변화를 견디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How Not To Die’라는 책은Plant Based Diet (채식) 관련하여 지금까지 본 책 중에 가장 좋았다.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
6. 비건 식단을 하면서 먹는 즐거움이 커졌다. 먼저 무엇을 먹든지 양껏 먹는다. 육식을 할 때 느꼈던 ‘배불러 죽겠다’ 라는 느낌이 없다. 그리고 식사 후에 몰려오는 식곤증에서 해방되었다. 예전에는 고기를 많이 먹으면 일단 눕고 싶었다. 지금은 먹고 나도 가볍다. 그리고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해서 의식이 많이 생겼다. 먹는 것에 대해서 의식이 생겼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내가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와는 조금 다른,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다. 내가 먹는 것들에 대해서 맛을 제대로 느끼고, 하나하나에 대해서 신경을 쓰면서 산다.
7. 나는 기후변화를 믿는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의 기후는 분명 다르다. 내가 처음 태어난 1979년부터 지난 40년간 지구의 인구는 2배가 되었다. 예전에는 40년이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정말 짧은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시간동안 불어난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이 지구상에서 우리는 소, 닭, 돼지를 더 많이 키우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키우기 위한 사료를 생산하기 위한 토지는 더 더 더 계속해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많은 숲이 개발되고 있다. 분명 기후변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다. 기후변화에서 이 요소가 가장 큰 주범인가? 라는 질문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비건으로 살면 이 문제가 덜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소/돼지/닭이 내뿜는 메탄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 중에 하나라는 이론이 있는데 통계적으로 증명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저 플라스틱을 덜 쓰면 해양의 미세플라스틱이나 토양의 오염이 덜해지므로 플라스틱을 덜 쓰자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냥 내 주변에서 내가 작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다.
8. 동물들도 전염병을 겪는다는 것을 알았다. 왜 ‘무항생제 돼지’ 같은 말들이 나오는지 알게 되었고, 왜 닭에게도 항생제를 그렇게 먹이는지 알게 되었다. 동물의 전염병이 사람에게도 옮겨지는 ‘인수공통감염병’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며,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바이러스가 돌면 왜 수 만 마리의 소/돼지/닭을 땅에 묻어서 죽일 수 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코로나로 들썩이는 2020년, 뉴스는 잘 다루지 않지만 조류독감으로 1000만 마리 이상의 닭이 살처분 되었다.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가 돌 때, 사람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격리를 시킬 수 있지만, 다닥다닥 붙어 사는 가축들은 모두 죽여버리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코로나 이전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는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그냥 그런 생각들이 더 강화되었다. 동물들도 코로나 같은 판데믹을 를 겪고 있었는데, 단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고, 그들은 백신도 사회적 거리두기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살처분을 하고 있는거다. 그들이 그렇게 다닥다닥 모여서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에게 잡아먹힐 날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9.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어머님이 절에 가실 때 모셔다 드리는 사이비 신도이다. 하지만 부처님이 살생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안다. 살생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인지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은 안다. 부처님은 절대자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오랫동안 명상과 생각으로 깨달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붓다(Budda)’라는 말도 ‘신’의 뜻이 아니라 ‘깨달은 자’라는 의미라는 것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살생을 하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좀 더 나은 삶이라는 점을 깨달으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불교에서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앙적인 색채를 빼고 심리, 철학, 명상의 측면에서만 다룬 책으로는 프린스턴대학 진화심리학 출신인 로버트 라이트의 ‘Why Buddhism Is True’라는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명상도 강추.
10.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 내가 지구상에서 많은 다른 동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행복감이 조금 더 높아졌다. 이 부분은 생각보다 상당히 큰 기쁨을 주었다.
2021년 1월 7일
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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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1. 직원들과 고기 회식을 못하는 점은 불편하다. 나는 버섯을 구워 먹지만, 많은 동질감을 잃었다. 빨리 한국에도 비건 인구가 늘어나서 비건 직원들이 많이 들어와서 비건 회식을 하면 좋겠다.
2. 중국 출장 중에 비건이라고 말했다가 업체 실무자가 나 때문에 비건 레스토랑 (수차이)을 찾느라 한 시간 이상 고생한 적이 있었다. 일반 레스토랑에서 야채 메뉴 먹으면 된다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상대방은 괜찮다면서 계속 찾았다. 처음부터 말하지 말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로는 잘 밝히지 않게 되었다.
3. 볶음밥 등에 저며진 채로 나오는 고기 혹은 스톡(고기나 뼈로 우린 국물)은 조금씩 먹는다. 피하고 싶지만 힘들다.
4 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 이 늘어나는 현상이 좋다. 플렉시테리언은 비건이라기 보다는 때때로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을 말한다. 대부분이 체중 조절을 위한 다이어트 때문이지만, 행동이 바뀌면 의식도 따라온다. 월요일에는 고기 안먹기 같은 No Meat Monday 같은 운동이 그것이다. 주말에 고기를 많이 먹으니 하루쯤 고기를 안먹는 것도 괜찮을 거다. 덕분에 비건 레스토랑이 많이 생기고 있다.
5. 마켓컬리에 비건 카테고리가 생겼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숨겨져 있어서 찾기 어렵다.
6. 내 아이는 아직 성장기이기 때문에 고기를 먹게 한다. 스무살 쯤 되었을 때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란다.
7.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아래 사진은 상하이에 있는 복화혜 (Fu He Hui) 라는 채식 레스토랑의 메뉴 사진중 몇가지이다.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마파두부밥은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미슐랭 별 1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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