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vleteren Trappist Brewery (at Sint Sixtus) – 베스트플레터렌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3시간 정도를 달려서 Westvleteren에 도착했다. 이 곳은 그야말로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벨기에 플란더스 서쪽의 시골에 위치하고 있다. 가는 길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있고, 말이나 소가 풀을 뜯으면서 한가롭게 놀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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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vleteren은 도시 이름이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전체 인구가 300명 밖에 안되는 곳이기에 거의 마을 수준이다. 이 마을 가운데 위치한 ‘t heilig genot이라는 호텔을 예약했는데, 호텔이 아담하고 예쁘다. 사실상 Westvleteren으로 가서 술을 마시고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숙박을 하고 가거나, 아니면 가장 가까운 큰 도시인 Ypres 에서 숙박을 해야 한다.

호텔로 들어가는 입구

‘t heilig genot 호텔의 전경

나도 처음에는 Ypres를 고민했었는데, Ypres까지도 적어도 10km이상은 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그냥 이 마을에서 숙박을 찾았다. 이런 조그만 마을에 호텔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Sint Sixtus 수도원 맥주의 유명세 덕분에 운좋게 이런 호텔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상 Westvleteren에서 어느 정도 음주를 한 후에 숙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므로, 혹시라도 가 볼 사람들을 위해서 사진을 몇장 올리도록 하겠다)

마침 이스터라고 계란 모양의 초콜렛이 침대 위에 놓여져 있었다.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욕실

2층에 공용 공간에 초콜렛과 마시멜로, 커피 등을 놓아 두었다.

1층에 작은 바가 있었는데, 로컬 맥주들을 팔고 있었다.

호텔 주인이 친절하게 Abbey 까지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고, 심지어 자전거도 공짜로 대여해 주었다. 마을에서 Abbey까지는 약 3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안성맞춤인 거리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에는 특별히 볼만한 것은 없지만, 벨기에 시골의 풍경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플레미시 초원을 달려 Sint Sixtus에 도착.

이 곳에 오면서 느낀 것은 확실히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의 자연은 직선의 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일단 차로 달리면서 지평선이 한없이 보일 때가 많다. 가끔 땅에서 솟아난 것은 직선으로 쭉 뻗은 나무들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자연은 곡선이다. 산이나 구릉이 많아서 길도 둥글고, 강도 둥글고, 나무도 꾸불꾸불하게 난다. 직선의 자연은 단순하고 광활한 맛은 있지만, 아주 아기자기하다는 생각은 잘 안든다. 하지만 아주 평온하고 고요하다는 느낌을 줄 때는 많다. 플란더스나 프랑스 지역을 차로 여행해 보는 것은 평생 한번쯤은 해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크지는 않지만, 밖에서 봐도 아름다운 Abbey

St. Sixtus 수도원이라는 원래 이름보다는 Westvleteren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곳은 XII (12) 라는 Quadruple로 인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Westvleteren Brewery 는 바로 St. Sixtus 수도원에 딸린 트라피스트 브루어리이다. Ratebeer.com 등의 맥주 평가 사이트에서 몇년간 부동의 1위를 차지했던 XII맥주는, 수도원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마련할 정도의 Capacity만 생산한다는 맥주 생산 정책 덕분에 항상 공급 부족, 초과 수요에 시달린다. 현재는 차 한대 (혹은 한 사람)당 한 박스 이상은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정책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예상대로 수도원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수도원 자체는 매우 폐쇄적이라서 투어도 없고, 내부를 외부인들에게 절대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수도원 자체는 입장도 불가능하고 내부를 볼 수도 없다. 일부 맥주 전문가들에게 공개된 적이 있어서 내부 사진이 인터넷에 종종 돌기는 하지만, 수도원의 폐쇄적이고 약간은 고압적으로 느껴지는 정책들 덕분에 이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맥주에 대한 사람들의 appreciation이 더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술은 모두 세가지인데, XII, VIII, 그리고 Blond이다. XII는 원래는 정말로 12도짜리 맥주였으나, 1930년대에 높은 도수 때문에 효모가 살아남기 힘든 이유로 약 11도 정도인 지금의 도수로 낮춰졌다고 한다. 정확한 ABV는 현재는 10.2도로 표기되어 있다.

수도원 바로 맞은편에 있는 레스토랑이자 테이스팅룸인 In De Vrede

주변 경관이 훌륭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오기도 하는 것 같다.

수도원 앞에는 In de vrede 라는 레스토랑이 위치하고 있다. In de vrede 는 영어로는 In the peace라는 뜻이다. 이 곳에서는 Blond, VIII, XII를 모두 판매하고 있었으며, 음식은 주로 조리를 하지 않는 치즈, 빵, 샐러드 등의 cold food를 판매하고 있다.

XII가 단돈 5유로!!!

이 곳에 오자마자 일단 XII를 한잔 시켰다.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맥주라고 칭송받았던 그 맥주. 바로 이 곳 현지에서 한잔 마시고 싶었다. 일단 향을 맡으면 깊은 몰트 향이다. 그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아닌, 몰트 향 자체에 이렇게 충실할 수가 없다. 구수한 몰트 향이 짙은 가운데 약간의 나무 향마저도 느껴진다. 한 모금 들이키니 깊은 맛이 목구멍 깊숙히 전해진다. 탄산으로 인한 짜릿함도 함께 느껴지는 상쾌하면서도 나무스러운 깊은 맛. 역시 XII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입모아 칭찬하는 세계 최고의 맥주

원래는 약한 도수의 맥주부터 높은 도수로 올라가는 것이 맞겠지만 여기서는 어쩔 수 없이 역주행을 했다. 다음으로 마신 8(VIII)은 12(XII) 에 비해서 확실히 맛이나 깊이가 덜하다. 이렇게 말하면 VIII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괜히 마셨다 싶기도 하다.

XII한 잔이 불과 4.9유로. 암스테르담에서도 XII 를 병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15유로 정도는 주어야 한다. 전세계 최고의 맥주라고 칭송받는 이 맥주를 한국 돈으로 단돈 5천원 정도면 마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주변에 살고 있는 벨기에 주민들도 이 곳을 많이 찾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 인도 아니건데, 여전히 십자가 아래서 맥주 마시는 것이 어색한건 왜일까?

펍 내부를 어슬렁 어슬렁 구경하기 시작했다. 내부는 꼭 모던한 교회당 느낌이다. 그리고 수도사들을 스케치한 그림들이 벽에 많이 걸려 있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수도사들의 생활 스케치.

한쪽 끝에는 매점(?) 비슷한 곳이 하나 있는데, 수도원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비누, 향초, 치즈 등등 실제로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은 맥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원래는 여기서 병에 담긴 Westvleteren 맥주도 판매하는데, 내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라서 이미 판매가 종료되었다. 아침에 일찍 (11시 정도에) 오면 맥주를 살 수 있다고 한다.

한켠에 마련된 매점. 추파춥스부터 수도원에서 나오는 비누, 치즈, 향초까지 잡다한 것들이 있다.

디저트로는 트라피스트 맥주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이스크림에 XII 맥주를 곁들인 것이다.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했다. 한국에서 이런 짓(?)을 한다면 구하기도 힘들고 비싸디 비싼 XII로 장난친다면서 욕을 먹겠지만, 과연 Westvleteren 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아닌가? 과연 맥주가 곁들여진 아이스크림은 맛있을 것인가? 너무 궁금해하면서 먹어봤다.

아이스크림은 아주 훌륭했다. 맥주의 비터가 아이스크림의 단맛과 더불어져서 마리아주가 좋았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속에 있는 부서지는 느낌의 쿠키가 약간 들어 있는데, 이 것이 신의 한수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로 훌륭했다. 약간의 바닐라 향이 맥주의 쌉싸로움과 어우러지니 환상적인 맛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테라스로 향해서 XII를 한잔 더 마셨다. 테라스에서는 거의 지평선이 보일 정도의 플레미시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한참 술을 마시다보니 음악이 듣고 싶어져서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고 한참을 맥주를 음미했다. 한 벨기에 사람이 나와서는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묻는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가 나에게 ‘the best music and the best beer?’라고 말한다. 나는 흐뭇한 느낌으로 한참을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의외로 그는 한국에도 와 봤고 부산에서 몇달인가 일을 했다고 한다. 정확하게 무슨 일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원래 본인은 플레미시라고 했다.

그는 벨기에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자존심이 강한 나라들.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에 둘러싸여, 한번은 프랑스에게 한번은 스페인에게 또 한번은 독일에게 점령당해야 했던 슬픔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래도 너희는 좋은 맥주가 있다면서 위로했다. 그는 한국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도 너희와 비슷하다, 한번은 중국에 한번은 일본에 점령당하다시피했고, 그런 어려움에도 우리는 살아 남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의외로 벨기에와 우리는 공통점이 많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노을이 지고 있는 플레미시 하늘 아래서 XII를 한모금 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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