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segmentation과 김구라의 포지셔닝

 

최근 내가 가장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은 2가지이다. 하나는 라디오스타, 다른 하나는 썰전이다. 두가지의 공통점은 김구라가 나온다는 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얼마 전까지는 무한도전이 제일 재미있었지만, 썰전의 성공과 함께 김구라가 공중파로 복귀한 다음부터는 단연 김구라의 방송을 최고로 꼽게 되었다. 물론 그 원인에는 계속 같은 포맷으로 약간은 지겨운 감이 있는 유재석(+무한도전)의 식상함도 조금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새삼 이렇게 김구라가 좋게 느껴진데에는, 그가 최근에 제대로 포지셔닝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계에서 흔하지 않은 포지셔닝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잡았는데, 그게 마침 최근의 트랜드와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김구라

최근 김구라의 활약이 대단하다

웃음의 Segmentation

곰곰히 생각해보니, 흔히 말하는 엔터테이너 혹은 코메디언 (개그맨)의 segment를 나누는 기준은 두가지가 있는 것 같았다.

  • 몸과 연기로 웃기기 (Action) vs. 말로 웃기기 (Talk)
  • 혼자서 웃기기 (individual basis) vs. 팀으로 웃기기 (team basis)

이 기준으로 최근의 개그맨들을 한번 매핑해 보면 아래와 같이 찍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래 맵은 내가 마음대로 그려본 것으로 읽는 분들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완전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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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그려본 국내 엔터테이너 포지셔닝 맵 (positioning map)

대표적으로 유재석/박명수와 같은 사람들은 흔히 슬랩스틱으로 표현되는 “몸개그”를 하는 사람들이고, 주로 개인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팀으로 움직이는 편이다. 그 밖의 팀플레이어로는 컬투나 개콘 멤버들이 있는 것 같다.

유재석박명수

유재석/박명수는 대표적인 팀플/Act(연기/꽁트) 위주의 유머를 구사하는 개그맨이다.

반면, 김구라의 경우에는 개인위주, Talk 위주의 유머를 구사하는 개그맨이라고 할 수 있다. 김구라와 같이 개인위주로 움직이면서 주로 Talk만 하는 사람으로는 윤종신(그를 개그맨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김재동, 박미선, 이휘재 정도가 있는 것 같다.

개인 기반으로, 행동위주의 개그를 하는 사람은 신동엽이 있는데, 신동엽은 얼핏 보기에는 talk위주인것 같지만, 최근에 SNL에서 그의 활약으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연기(꽁트)에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예전에 김원희와 ‘헤이 헤이 헤이’에서 보여주었던 꽁트들이 정말 웃겼다고 생각한다. 신동엽 이전에 Action위주의 개그를 혼자 하던 사람은 최양락이나 심형래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신동엽

신동엽은 대표적인 개인/Act(연기/꽁트) 개그맨이다.

지난 몇년간의 우리나라 예능프로그램의 대세는 팀플레이 중심의 Action (몸개그+연기) 였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무한도전/ 1박2일/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들이다. 이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을 주도해왔고, 그 중심에는 호흡이 잘 맞는 개그맨들의 몸개그와 연기가 바탕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종편이라는 새로운 물줄기를 만나면서 SNL과 같은 연기 위주의 예능프로그램마저 탄생시켰다. 미국에서는 예전부터 SNL이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한국에서의 성공은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대형 스타를 기용하지 않고, 연기에 시사풍자를 가미한 코메디로써는 한국에서 드물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방송된 유머일번지나, 웃으면 복이와요, 헤이헤이헤이 등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개콘이 그런 프로그램들의 명맥을 유지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개콘은 사회비판기능이 거의 상실되었다.

개콘

개콘은 전통적인 ACT(연기/몸개그) 라인을 계승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사회 비판기능이 거의 없다.

김형곤

과거 김형곤의 꽁트에는 사회비판적 요소가 꽤 많았다.

한편, Talk위주의 예능으로 눈을 다시 돌려보자. 서구권에서는 전통적으로 1인 토크쇼가 예능을 이끌어 왔으나, 한국에서는 유독 1인 토크쇼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과거에 서세원이나 주병진과 같은 사람들이 1인 토크쇼를 통해서 인기를 얻기는 했으나, 진행자는 바뀔 수 있다고 치더라도, 포맷 자체가 미국처럼 롱런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서세원

국내 1인 토크의 대가 – 서세원…. 그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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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제이레노나 코난 오브라이언과 같은 1인 토크가 꾸준히 대세를 구가한다.

미국에서는 개인/Talk 중심의 코메디언은 대안으로 스탠딩 코메디를 택할 수 있었겠지만 (혹은 반대로 스탠딩 코메디로 인기를 얻은 사람이 토크쇼를 진행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다대다” 토크를 많이 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라디오스타이다. 3-4명의 MC가 나와서 복수의 게스트들을 이끌어나가는 형식이다.

여기서 한단계 발전되면 이른바 ‘떼토크’라는 형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세바퀴’, ‘자기야’ 등이 이런 형식인데, 2-3명의 MC가 나오고, 게스트는 적게는 8-10명, 많으면 20-30명씩 나오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종편에서 유행하는 토크쇼 스타일이고, 공중파에서도 최근에 스타들의 가족을 아이템으로 내세우는 프로그램들 (붕어빵, 맘마미아 등)에서 채용하는 시스템이 바로 이런 떼토크이다.

떼토크

종편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떼토크는 high ROI 아이템이 아닌가 생각된다.

종편에서 출범 초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대형 드라마나 대형 오락프로들은 거의 다 망했지만, 떼토크는 적은 제작비에 비해서 광고 수익이나 입소문 (word of mouth) 효과가 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프로그램에서 떼토크를 많이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이미 케이블에는 너무 많은 비슷한 형식의 떼토크들이 넘쳐나고 있어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떼토크로는 추가적인 큰 시청률을 올리기는 어려워보이기도 한다.

김구라의 포지셔닝

이러한 형국이 진행되던 2012년 말/ 2013년 초에 걸쳐서 김구라는 개인적으로 자숙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뭔가 구상을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바로 ‘팀플’의 강화가 그의 새로운 포지셔닝 전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의 팀플 강화 전략이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썰전’이다. 김구라는 예전에도 숨겨져 있던 숨은 입담꾼을 발굴하는 역할을 하기는 했다. 예컨대 김태원 같은 사람도 그가 라디오스타에 섭외하면서 예능에 입성한 케이스이다. 하지만 썰전에서 그가 강용석, 이철희, 허지웅 등을 데리고 가는 형국을 보면 예전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아예 프로그램의 중앙에 포지셔닝을 시키고, 자신은 약간 한발 뒤로 물러서는 느낌이다.

이러한 김구라의 행동은 과거에 라디오스타에서 자기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게스트들은 ‘먹잇감’ 정도로 이용하던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게스트라기보다는 고정으로 인지도는 낮으나 포텐셜이 좋은 사람들을 포진해놓고, 자신은 한발 뒤에서 조정하는 형국이다.

김구라의 행보중에 한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종편이라는 비교적 low risk 채널을 등에 엎고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련된 talk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반면에 공중파에서는 ‘화신’과 같은 완전 ‘연예인 신변잡기 talk’에 출연해서, 그가 종편과 공중파에서 어떻게 포지셔닝을 분리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화신

화신과 썰전을 동시에 출연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종편과 지상파에서 자신의 포지셔닝을 완벽하게 구분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엔터테이너들의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컨텐츠 싸움 보다는 메세지 싸움으로 가게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가수들도 처음에는 기교, 가창력, 인기 등에 승부를 걸지만, 점점 그런 것들에 대한 중요성보다는 자신이 말하는 노랫말의 메시지가 자신이 팬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얼마 전에 ‘미스코리아’를 발표한 이효리 같은 경우다.

코메디언도 마찬가지라서 웃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무언가 울림을 주고 싶어한다. 과거에 이경규도 몰래카메라로 성공했지만, ‘이경규가 간다’ 와 같은 사회성이 담긴 프로그램을 했기 때문에 더 인정받을 수 있었다. 물론 좋은 PD를 만나야 가능한 일이지만….

김구라도 마찬가지로 좀더 메세지 있는 ‘비평’프로그램으로 가려고 하는 것 같다. ‘비판’이라는 부분은 분명 그의 DNA에 들어 있는 것이었지만, ‘비평’으로의 전이는 좀 색다르게 느껴진다. 김구라만큼 정치/연예/시사 전반에 걸쳐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연예인도 드물기 때문에 그가 ‘비판에서 비평으로’의 전환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움직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거에 이렇게 사회비판/정치비평을 했던 대표적인 코메디언은 앞서 언급한 ‘김형곤’정도가 있다. 다만 그는 Talk 보다는 Action (꽁트/연기) 위주로 사회비판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김형곤의 유머에는 지식이나 깊이에 의존했기 보다는 본인 스스로의 직설적이고 다소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캐릭터 때문에 잘 작용했던 점들이 더러 있었다. 김구라의 유머가 배경지식과 전문가 의견 등에 의존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

썰전

본격적으로 정치관련 Talk show를 하는 김구라. 과거 김형곤이 정치+꽁트 였다면 그는 정치+Talk로 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가며…

김구라의 포지셔닝과 그 변화를 지켜보면, 그냥 아무생각이 없이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분야를 잘 찾으면서 하려는 듯한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의 특성을 잘 간파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쇼비즈니스도 일반 비즈니스와 같이 전략/ 마케팅/ 브랜딩의 요소를 가미해서 바라보면, 이러한 부분들이 조금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분석해서 생각해보면, 여전히 어딘가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이 있으나,누구도 점유하고 있지 않는 포지션이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아직도 팀플레이 중심의 Talk 분야에는 공석인 부분이 많이 있다. 컬투가 있고, 유재석/박명수가 일부 만담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 호흡이 척척 맞는 talk중심 유머는 더 시장이 크게 있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개인/Actng 위주 혹은 팀/Acting 위주의 세그먼트에 비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경우에는 다운타운 같은 팀이 오랜 기간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컬투 정도만이 활약하고 있고, 그나마도 컬투는 꽁트와 Talk 를 적절하게 배합한 중간적인 형태라고 봐야 한다.

downtown

일본에서 장기간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개그 콤비 다운타운

 

거기에 한단계 더 나아가서 사회비판적 내용으로 할 것인지, 가족적 내용으로 할 것인지, 연예인 신변잡기로 갈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회에 감동을 주는 분야로 나갈 것인지 등에 따라서, Talk 분야에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한 깊이 더 나아간 segmentation이 가능하다.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포지셔닝을 고수할 수 있다면, 참 똑똑한 개그맨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김구라에게 유재석보다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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