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 선거, 끝나도 잊어서는 안될 3가지 문제에 대하여

 

대선이 몇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이 끝나면 TV나 매체들에서는 새로운 지도자의 탄생을 기리는 방송으로 뒤덮겠지만, 대선이 끝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 것 같아서 글로 남기려고 한다.

1. 극단적 대립구도

우리 사회의 양극화(polarization)이 더 심해지고 있다. 영어표현 polarization을 굳이 적은 이유는, 이 표현이 polar (극), 즉 북극과 남극으로 더 몰린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기 때문이다. 한자어도 마찬가지의 뜻이다. 양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뜻이다.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건간에 그 사람은 50%의 찬성과 50%의 반대를 동시에 얻은 사람이 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사회의 갈등이 ‘선거’라는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그리고 그 선거과정에서 아무리 통합을 외친다고 해도, 절대로 봉합되지 않는 상처로 남을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트윗이나 페북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성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지인들이 많았는데, 사실 그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후보를 ‘지양’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물론 그러한 방식이 선거에서 자신이 원하는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0.001% 라도 높이는 방식임에는 분명하지만, 점점 더 사람들의 마음속에 ‘상대방의 후보는 절대 안된다’ 라는 사고방식이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후보들의 중간으로 수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단순히 정책을 몇가지 받아들이거나, 진보는 보수/ 보수는 진보의 인사들을 영입한다고 해서 중간수렴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상대방의 인사들을 정권의 요직에 앉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행동들을 정권 나눠먹기라고 비판하는 논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변한 척 하는 것 보다는,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인력을 끌어안고, 그들에게의 권한 위임이 더 적절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2. 토론의 질

토론을 잘 하는 사람이 대통령의 역할을 잘 할 것인가? 즉, 토론의 능력이 국정수행능력의 proxy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논지를 명확하게 가지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생각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자신들의 참모들이나 보좌관들과 일을 해 나갈지에 대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개인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수행역할과 토론능력의 상관관계가 꽤나 높을 것이라고 확신하는데, 이번 우리 선거에서 보여준 후보들의 토론능력은 수준 이하였을 뿐 아니라, 상식 밖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왔다.

물론 토론의 질이 너무 낮았던 것에는 후보들의 탓도 있지만, 선관위와 방송국의 진행상에 있어서도 많은 헛점과 오류가 있었다. 애매한 질문에는 애매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는데, 질문 자체가 너무 터무니없이 개념적이고 허무맹랑한 질문들이 많았다. ‘잘 있었냐?’ 라고 물어보면 ‘잘 지내’ 혹은 ‘아니’ 라고 밖에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질문을 잘 해야 대답을 잘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대선 토론의 질 저하에는 너무나 애매모호한 질문을 통해서 자신에게 튈 정치적 불똥만을 피하려고 한 선관위/방송사들이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토론의 질 향상은 5년에 한번 선거때문 힘 준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 토론 등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한 검증을 정치인 검증의 하나의 필수 과정으로 여기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과 정당이 함께 힘써줘야 하는데, 정치인에게 ‘베일에 싸인 신비감’을 조성해주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는 전술이 필요하다. 아울러 후보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웅크리고 있다가 짠 하고 나타나는 쇼를 하기 보다는 5년이라는 과정에서 서서히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보여주면서 부상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결국 해결책은 토론을 잘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후보들이 나와 주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토론의 구성 자체에 대해서도 관련된 정당/ 방송국/ 선관위 등이 중지를 모아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여기에 유권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 다음의 문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3. 유권자 중심의 선거

우리나라의 선거문화는 아무리 봐도 유권자 중심의 선거문화가 아니다. 철저하게 정당과 정치인을 위한 선거문화인 것 같다. 그 단적인 예가 선관위나 방송국, 정당 관계자들이 지나치게 자신들의 몸을 사리고, 면피를 하려는 자세들이다. 토론문화의 질 저하에도 한 몫 했음은 위에도 언급한 바이며, 선거과정에서 과연 선관위/방송국이 유권자의 입장에서 정보를 전달하고,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선거 중반에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밑도 끝도 없는 정당들의 공약 현수막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반값등록금 무조건 실현’같은 문구가 유권자들을 매우 호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딱히 적용할 법이 없다’라는 이유로 이런 현수막들을 방치했다. 기업의 과대과장광고는 문구 하나에도 물고 늘어지면서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정당들의 문구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선관위, 방송국, 정당의 권력자들을 임명하는 권한은 유권자가 가져야 한다. 선관위, 방송국, 정당의 고객이 바로 유권자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들에 대한 임명권을 정당이나 권력이 쥐고 있기 때문에, 계속 이들이 정당과 권력의 눈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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