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꾸준히 읽는 편이다. 나 나름대로 갖고 있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다. 어릴때 그다지 영특한 학생이 아니었던 내가 그래도 꾸역꾸역 (이 표현이 나의 대학 진학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인것 같다.)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나의 책읽기는 부끄러움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극성맞은 곳이었다. 한자, 컴퓨터, 수영, 스케이트, 스키 등의 특기에 1급부터 10급까지 ‘급수’를 부여하고, 80년대 후반 당시에 교복을 입히고 급식을 했다. 당시 어렵지 않은 집안 형편 덕분에 나는 이런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부잣집 자제분들과 그 가운데에서도 뛰어난 어린이들에게 치여서 존재감 없이 수줍게 보냈다. 여담이지만, 중1때 반창회에서 만난 여학생들 중에서 나를 기억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다.얼마나 존재감이 없었던가..
이 극성맞은 초등학교에서 독서시험 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책을 몇권 정해주고, 그 내용을 시험으로 보는 것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삼국지에서 조조가 세운 나라의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 것이었다. 아마도 삼국지가 권장 도서 목록에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나는 삼국지를 읽지 않았고, 시험에는 엉뚱한 답을 적었다.
나중에 시험 결과를 채점한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시험들을 잘 보는 학생도 아니었는데, 유독 그 독서시험의 결과는 부끄러웠다. 물론 중요한 시험도 아니니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 성적표를 보여줘야 하는 그런 시험도 아니었을텐데, 이렇게 20여년이 지나고도 부끄러움이 깊게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나 스스로에게 나의 무식함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내 기억에 그 초등학교에는 교실 한쪽 벽에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래서 책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이렇게 쓰여진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내가 먼저 읽자 50권’ 그 문구 또한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 즈음에 책을 한두권씩 읽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다양하게 읽었다.
하지만 나의 책읽기는 조숙했다. 아마도 10살 많은 형의 영향일터이다. 중학교때 이미 우리 집에는 시드니 셀던의 소설들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읽었는데, 야한 장면이 많아서 두근거리며 읽은 기억도 있다. 대학 1-2학년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읽고 꽤나 사색에 잠긴 (척했던) 기억도 있다. 결국 그때 읽었던 하루키의 소설들을 몇년 지나고 나서 다시 읽은 것들도 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내용들은 절대로 그 나이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
나는 책에 대해서는 편식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번 소설을 읽으면, 그 다음에는 인문학책을, 그 다음에는 자연과학책을,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류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한번 한국책을 읽으면, 그 다음에는 영문책을, 그 다음에는 일본, 그 다음에는 프랑스나 남미.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잘 읽고 싶지 않은 책은 주로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류의 책이다. 왠지 그 책들은 한 사람의 인생의 한 단면만을 놓고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말들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서 싫어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라면서 읽지 않았다. 하지만 MBA를 준비하면서 이런 책들도 많이 읽게 되었는데, 주로 리더십에 대해서 배우고, 에세이에 써먹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김성근 감독의 책이나 히딩크 리더십 같은 책도 그 당시에야 읽게 되었다.
책을 가장 활발하게 읽은 것은 아마도 군대에 있을 때였을 것이다. 카투사여서 외부 물건의 반입이 비교적 자유로웠고, 시간이 사방에서 나에게 덤빌만큼 많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많이 읽었다.
기억나는 가장 힘들었던 책은 잘 폴 샤르트르의 ‘구토’였다.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서 고생고생하다가 중간에 포기했다. 그리고나서 한때 불면증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책을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잠이 잘 왔다.
요즘은 아무래도 책을 읽을 여유가 부족하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말은 거짓말’ 이라는 얘기와 ‘수불석권’을 철칙으로 여기고 살았는데, 요즘은 교과서와 HBR 읽기도 벅차다. 미국의 교육에서 수업 전에 수업 내용에 대한 reading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교육적 의미가 크고, 또한 교육 방식상 이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책을 읽을 여유가 줄어드는 것은 슬프다.
예전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교할때, 김영삼 대통령은 옥살이를 하면 단식을 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책을 읽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의 캐릭터에 대해서 극명하게 비교하는 부분이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서 더 공감했던 것 같고, 그가 더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양한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옥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자세만 봐도 다른 부분을 짐작케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책을 읽어나가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동시에 단순히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어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아니 국민학교를 다닐 때의 교과서의 제목은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그리고 탐구생활이었다. (탐구생활을 빼놓으면 안된다) 나는 여전히 초등학생처럼 책을 읽으면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그리고 탐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독서에 대해서 갖고 있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