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예의

어느 덧 창업 8년차 . 우리 회사는 업계에서는 평균 근속 기간이 긴 편이지만, 그래도 퇴사자는 늘 나온다. 이제는 우리 회사를 거쳐 간 사람의 숫자도 꽤 된다. 수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한 셈이다.

많은 유형을 보게 되는데, 역시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들어올 때보다는 나갈 때 잘 하고 나가야 한다. 어떻게 떠나는지가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한다. 들어올 때야 온갖 좋은 말들과 기대감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얼굴 붉힐 일이 없지만, 나갈 때는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

지금까지 고용자 입장에서 내 나름대로 정리해본 퇴사에 대한 예의이다.

  1. 후임자를 찾을 시간을 주자. 아주 드물게는 다음날, 혹은 종종 일주일 또는 그 다음주 까지만 나오겠다는 사람이 있다. 내가 아는 한 얼마의 기간을 두고 퇴사를 할 수 있는지, 또는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없다. 회사에서 내규로 ‘최소한 한달 전에는 이야기 해야 한다’ 라는 식으로 정해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퇴사자가 삼일 후에 퇴사한다고 해도 회사에서는 그 사람을 잡을 법적인 명분은 없다. 퇴사자는 떠나도, 회사는 돌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고용관계는 서로 상호적으로 이루어진다. 퇴사 날짜라고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다. 종종 다음 직장에서 몇월 몇일까지는 나와야 하기 때문에 나는 이날까지만 근무하겠다 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전에 미리 조율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면 고마웠을 것이다. 우리 회사의 경우에도 다음 직장에서 빨리 오라고 해서 우리가 대체자를 구할 수 있는 시간보다 일찍 퇴사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가 추후에 후임자를 지정한 이후에 (다른 회사를 다니던 중이었지만 시간을 쪼개서) 며칠 정도 우리 회사에 나와서 인수인계 마무리를 해주었다. 그 고마움은 잊지 않는다.
  2. 디테일한 업무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하던 업무들에 대한 명확한 인수인계자를 지정해 주어야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하던 일들 중에서 이 일은 누구에게 문의하라 라는 식으로 이메일이나 포스팅을 정리해주고 가면 좋으련만, 나가는 날이 다가오면 다들 바쁘게 나가버린다. 물론 상급자나 HR에서 그 사람이 하던 업무들을 일일이 챙겨서 후임자를 지정해주면 좋겠지만, 어떤 일들을 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인수인계 목록을 만들어서 업무를 지정해주는 것이 가장 좋고, 이메일에도 퇴사 직전 한주 정도는 ‘나는 언제까지만 근무하니 해당 업무는 누구에게 문의하라’ 라고 명시해주면 좋다.
  3. 퇴사하겠다는 이야기는 자신의 상사, HR, 대표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주변의 동료나 부하직원에게 이야기하라. 아직 본인의 상사나 HR 또는 대표에게 퇴사를 이야기 하지 않은채 여러 사람에게 본인이 퇴사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 다음에 마지막에 통보하듯이 회사에게 (이 경우는 상사, 대표, HR)에게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본인은 퇴사하더라도 남은 사람들은 남아서 일을 계속 해야 한다. 하지만 퇴사라는 것은 회사와 합의가 되기 전까지는 결정된 것이 아닌데, 본인의 마음의 결정만으로 주변인들에게 두루두루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후의 일들에 대해서 회사가 미리 플랜을 세울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 사람의 퇴사에 대해서 언제 어떻게 사람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지도 중요한데, 먼저 다 이야기 하고 나서 회사에 말하면 회사는 굉장히 곤란해진다. 동료들이나 회사 내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지에 대해서도 HR, 대표, 상사 등과 논의를 해 준다면 더 고맙다.
  4. 하기로 한 일은 마무리 하고 나가라. 퇴사를 하면서 기존에 하기로 한 일들은 그냥 뭉개고 나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나는 이제 퇴사를 하니까 이건 그냥 안할게~ 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해당 업무를 하라고 지시를 했는데, 두달 동안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연발하다가 결국은 안하고 나간 경우도 있다.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선에서는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게 되는데, 이 경우에도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퇴사 날짜를 정하는 것은 근로자의 몫인데, 한달 뒤에 퇴사하겠다고 이야기해놓고, 한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가 퇴사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경우라고 본다.
  5. 외부 이해관계자 (거래처, 고객, 투자자 등)에 직접 이야기 하고 나가주면 좋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해주어야 한다. 너무 일러도, 너무 늦어도 안된다. 2주~1달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인수인계 기간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에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미팅에도 자신의 후임자를 데려가서 인사를 할 기회를 주고, 앞으로는 이 사람이 업무를 할 것이라고 해주는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상대방 입장에서도 담당자에게 연락했는데 연락이 안되거나, 갑자기 다른 사람이 등장해서 그 사람은 퇴사했으니 이제부터 나에게 말하라는 식으로 나오면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6. 문자 통보나 이메일 통보는 정말 하지 말 것. 정말 황당하다. 대부분 몸이 안좋다는 핑계이거나, 현실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사실 이 정도 되면 그냥 ‘뽑은 내가 잘못이지’ 라고 생각하고 넘길 정도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매너를 보인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로 잊지 않는다. 우리 회사의 경우 신규 점포 오픈 당시에 헤드 쉐프로 뽑은 사람이 있었는데, 오픈 한달 쯤 전에 뽑아서 메뉴를 익히고, 주방 셋팅 등 오픈 준비작업을 시켰더랬다. 준비 과정에서부터 헤드 쉐프 역량으로는 좀 모라자서, 팀원들이 불평을 표시하기도 했고, 나도 약간은 긴가민가 했는데, 결국 오픈 하루전에 문자로 퇴사하겠다고 통보했다. 한달치 급여만 받고, 오픈 바로 전날에 퇴사했다. 7년이 지난 오늘까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7. 365+1일에 퇴사하지는 말자. 퇴직금 받고, 새로 생기는 연차 모두 받아서 1.5개월 정도치의 급여를 더 챙겨서 퇴직하는 경우다. 내 경험상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그 중에서도 외식업이나 육체적인 강도가 센 업종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생각하기 보다는 1년만 채우자는 마인드로 일하는 직원들이 많은 경우에 이런 퇴사자가 가끔 발생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해프닝이 한번 있었다. 노동부에 신고한 입사 날짜가 하루 늦어서 자신이 계산한 입사 날짜보다 실제로 노동부에는 입사 날짜가 늦게 신고가 된 경우였다. 물론 우리도 고의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처음 입사할 때 일할계산으로 준 급여는 맞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참 후에야 이 사람에게 퇴직금 + 새로 생긴연차 만큼의 급여를 준 것이 적법한지 조사가 나와서 우리도 알게 되었다. (잘 생각해보면 지인을 이런식으로 회사에 입퇴사 시켜서 회사 돈을 횡령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 아무튼 이런 일들도 발생할 수 있으니, 아무리 퇴직금을 받고 바로 퇴사하고 싶어도 며칠 정도, 넉넉하게 2~3주 이상 정도는 더 다니고 퇴사하라. 물론 366일째에 퇴사하겠다고 하면서 퇴직금 받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회사도 감정이 있는 인간들의 집단이다. 그리고 자신의 reputation은 계속 따라 다닌다.
  8. 퇴사하더라도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여럿 데리고 경쟁사로 가지는 말자. 우리 회사의 경우에는 퇴사를 한 직원이 경쟁사로 옮긴 경우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직원이 추후에 다시 우리 회사에 놀러 와서 현역 직원들과 회식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 다니느 회사로 옮겨 오라고 회유했다. 나는 이 보고를 듣고 매우 놀랐다. 경쟁사 임원이 우리 직원들을 모아 놓고 회식을 했다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것이 직원을 빼가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우리 직원들은 옛날 직장 동료가 와서 밥을 산다니까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나간 것이었는데, 나중에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보고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행동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9. 퇴사 후의 계획에 대해서 거짓말은 하지 말자. 경쟁사로 옮기지 않는다고 해 놓고 경쟁사로 옮기는 경우가 대표적인데,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아무 말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회사 내의 중요한 정보나 노하우를 경쟁사가 사람을 빼가면서 자연스럽게 가져가는 경우를 중소기업단에서 막기는 어렵다. 그 정보가 중요한 정보이며, 회사의 영업기밀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고, 그런 소송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 자체가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멘붕이 오기는 한다. 그 밖에도 간단한 퇴사 후 계획은 이야기 해 주는 것이 좋다. 당분간 쉴 계획이거나, 아니면 다른 분야에 대해서 좀 알아볼 생각이라거나, 자기 사업을 해볼 생각이라거나… 등등. 실제로 나는 퇴사하는 직원들의 이후 커리어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거나, 취업을 알선해준 경우도 꽤 많다. 대표도 나갈 때 잘 하고 나가는 직원은 도와주고 싶다.
  10. 자발적으로 퇴사하면서 실업급여 해달라고 하지 말자. 일단 불법이다. 내 경험상으로는 이런 경우가 너무 많다. 어차피 고용주도 (특히 우리같은 소비재 회사는) 퇴사자 역시도 회사 문 밖을 나가면 우리의 고객이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마음 다치지 않게 내보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실업급여의 재정상의 부담이 점차 커지고 있고, 이와 관련된 사회적 문제들도 벌어지고 있다. 우리도 자발적 퇴사자에 대해서 실업급여는 안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불법이다.

지난 8년간 사업을 하면서 우리나라 노동법이 대기업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노동자에 비해서 사업주가 큰 힘을 갖기 때문에 갑을의 관계가 성립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회사에 비해서 노동자가 결코 열위에 놓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떤 업무에는 그 사람 한명 밖에 없어서 당장 그 사람이 퇴사하면 업무가 마비되는 경우도 있다. 좁고 좁은 업계에서 경쟁사가 사람을 빼가거나, 그 사람이 빠지면 회사의 영업력, 기술력, 노하우에 타격을 입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이런 경우 일일이 대응하지 못한다.

요즘 노무사들은 중소기업들의 고용주는 사실상 아무런 힘이 없다는 말도 한다. 게다가 최근 MZ세대들이 대거 고용시장에 진출하면서 이들과 기존 세대가 갖고 있던 직장에 대한 절박함의 강도는 다른다. 더 절실한 사람이 약자가 되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서 사람을 구하기도, 트레이닝을 시키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퇴사 만큼은 더 쉬운 느낌이다.

퇴사를 할 때 하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나중에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답글 남기기

mbabloggernet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