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 공급과잉 양상

 

 

한국에 돌아온지 딱 1주일. 아무래도 맥주와 관련된 곳들을 다니고, 맥주와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최근의 한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일관되게 계속해서 나오는 이야기가 시장의 과열양상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비해서는 너무 많은 맥주들이 공급되고 있거나 앞으로 공급될 예정이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불과 2-3년전에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수요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면서 이태원/경리단을 위주로 다양한 펍을 통해서 맥주가 퍼지던 양상과는 달리 완전 다른 형태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돌변하고 있다. 그 이름은 바로 ‘공급과잉’ 이다.

우리나라 같은 저성장 사회에서 최근에 크래프트 맥주와 같이 크게 붐을 일으키는 섹터는 참으로 오랜만에 나온 것 같다. 1년에 이자율이 2% 밖에 안되는 이 나라에서 연간 몇십 퍼센트 이상 성장하는 이런 분야에 많은 사람들의 돈이 몰리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게다가 맥주라는 것이 아주 기술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산업이 아니라서 기존에 식음료쪽에 종사하거나, 아니면 예전에 유행했던 하우스맥주 시절부터 어느 정도 맥주 업계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빠르게 크래프트 맥주 쪽으로 선회하였다. 즉, 흔히 말하는 진입장벽이 낮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일종의 쏠림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접근으로 비슷한 규모의 비슷한 설비들을 지어서 비슷한 맥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옥석이 가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긴 한데, 그 시간 동안에 시장에서는 당분간 혼란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일단 언론에 공개되거나, 본인들이 홍보하거나, 혹은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미 장비를 갖고 있거나 앞으로 장비 증설이 있는 곳을 쭉 적어 보았다. 사실 아래 적은 곳들 이외에도 10여군데가 더 있는데, 말할 수 없어서 여기에서는 제외했다. 세어보니 총 30 여 군데에 달한다.

 

Platinum (한국/ 중국)
장앤크래프트 (전라도)
7 Brau (경기도)
Ka Brew (경기도)
Weizen Haus (경기도)
Hand & Malt (경기도)
Korea Craft Brewery (충청도)
The Table (경기도)
Babarosa (경기도)
Magpie (서울/제주)
레비 (경기도 수원)
Playground (경기도 일산)
Hidden Track (서울)
갈매기 브루잉 (부산)
아키투 브루잉 (부산)
트레비 (울산)
화수 (울산)
Devil’s Door (서울)
Brew One (경기도 파주)
개돼지 브루어리/펍 (서울)
Craft Works (서울/ 강원도)
The Booth (경기도)

문제는 이 중에서 맥주에 대한 Qualtiy control이 확실히 되서 유통이 얼마든지 가능하거나, 아니면 자체적인 펍을 늘려나가면서 소비량을 늘려나갈 수 있는 곳들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증설되는 설비에서 나오는 맥주들은 모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마도 이 중에서 대부분은 영업을 통해서 각종 레스토랑 – 피자, 햄버거, 치킨집들이 1차적 대상이 되겠지만 – 들을 대상으로 유통을 늘려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신설 브루어리들이 이 점에서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많은 브루어리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해외의 대형 상업 수입 맥주 브랜드들 조차 국내 맥주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1% 를 달성하는 브랜드가 별로 없는 것이 한국 맥주의 현실. 그런데 단기간에 저변의 확대가 일어날 틈이 없이 너무 많은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가 생겨나고 있다. 여러 브루어리 및 수입사들의 행사에 가보면 내가 유럽을 떠나기 전이었던 2014년에 만났던 이른바 ‘맥덕’들만 계속 얼굴을 비추고 있다. 즉, 맥덕들만 계속 비슷한 행사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 그리고 그들이 대부분의 새로운 맥주 및 수입맥주를 마시고 있든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조금씩 조금씩 크래프트 맥주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긴 하지만, 브루어리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서 더디다. 계속 찻잔속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는데, 업계 사람들은 이 폭풍을 찻잔 밖으로 확산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그 찻잔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느낌마저 든다.

앞으로 공급과잉 상태에서 크래프트 브루어리들 서로간의 영업력 싸움이 당분간은 계속될 것임이 확실하다. 결국 가격경쟁력과 맥주 맛이 승부를 가르겠지만, 둘 중에서 굳이 더 중요한 것을 꼽자면 유통에 힘을 가질 수 있는 가격이다. 따라서 맥주시장의 특성상으로는 대형설비를 가지고 있어서 간접비 비중을 확 줄일 수 있는 업체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므로 설비 투자에 열을 올리고 가격을 더 낮춰서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버티는 자만이 살아남는 치킨게임이 지속될 것이며, 당연하겠지만 대형 브루어리 위주로 살아남거나 일정 설비 규모를 달성한 곳들, 그리고 아주 특색있는 곳들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나는 예측한다.

나머지 업체들은 2000년대 초반의 하우스 맥주 붐과 마찬가지로 모두 도태되거나 문을 닫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2000년대 초반의 하우스맥주 열풍 때 보다 한층 더 걱정되는 점은 2000년대 초반 하우스 맥주의 업장들은 지역 밀착형으로 주요 상권가에 위치했지만, 지금 생겨나는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은 반출을 목적으로 외곽에 지어진 곳들이 많아서 과연 도산할 경우에도 어느 정도라도 현상유지가 될 수 있을지, 설비자체라도 재판매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크래프트 브루어리들 이외에 수입맥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점이다. 최근에 방문해 본 바틀샵들에는 유럽의 벨기에의 웬만한 보틀샵들 보다도 희귀한 맥주들이 많이 수입되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즉, 대중성이 높은 맥주들 위주로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기 위한 수입보다는 ‘다양한 맥주 구색 맞추기’ 용 맥주들이 너무 많이 수입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맥주 종류는 정말 많이 늘어났는데, 막상 두번 세번 이상 마실만한 맥주는 없고, 한번정도 호기심으로 마실만한 맥주들만 늘어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맥주 수입상의 숫자 또한 크래프트 맥주의 저변이 넓어지는 속도에 비해서 너무 빨리 늘고 있고, 들어오는 맥주들도 너무 급속도로 그 종류가 늘고 있다.

지금까지 계속 맥주 저변의 이야기를 했는데, 맥주 저변이 넓어지는데에는 단순히 브루어리들만 생겨나서는 안되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맥주 축제도 그 한 축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맥주축제는 맥주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 제3의 업체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의미 또한 퇴색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크래프트 맥주 붐은 결국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니 미국을 보자. 미국은 여러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앞다투어 생긴 것도 발전의 큰 원동력이 되긴 했지만, 다른 부분들도 함께 발전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당장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5-10년 안에 생겨나야 할 것들은 다음의 다섯 가지 이다.

 

  • 반출과 유통을 목적으로 한 공장형 브루어리가 아닌, 지역사회와 지역주민 밀착형 크래프트 브루어리
  • 다양한 테마를 기반으로 한 맥주 축제 (크래프트 맥주, 맥주 장비, 음식 페어링 등등)
  • Brewers Association, BJCP,  Siebel, Cicerone 과 같은 협회 및 교육기관 그리고 그들이 발행하는 맥주에 대한 다양한 정보 책/ 가이드라인
  • Zymergy, Beeradvocate, Ratebeer 와 같은 맥주 관련 잡지 및 온라인 포럼
  • Wyeast, White Labs 와 같은 양조와 관련된 상업적 리서치 랩

 

이들이 함께 발전하지 않고 만약 누구의 맥주가 더 특이할 것인지, 누구의 맥주가 더 가격이 싼지, 누가 더 큰 설비를 짓는지에 대한 경쟁만 한다면 크래프트 맥주 계에 큰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산업에 진입한 사람들은 과연 제대로 주판을 튕겨보고, 계산을 해보고, 시장 조사도 해 보고 시작들 하시는 것인지 걱정도 된다. 한국에서 크래프트 맥주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려와 걱정의 소리, 그리고 약간의 쓴 소리를 써 봤다.

PS.

사진은 최근에 수입된 Two Hearted Ale — 이 맥주는 미국에서도 공급량이 딸려서 많이 유통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최근에 수입되었다. 이 맥주의 병당 가격은 매장에서 18000원에 달한다. 나는 이 맥주를 미국의 홀푸드에서 4병에 9달러 정도에 사서 마셨던것 같다. 이 맥주를 정말 좋아하는 팬이지만, 과연 상업적으로 이 맥주를 수입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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