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맥주 여행의 시작

 

지벨(Siebel Institute)에서 수업을 듣다

 

시카고에 지벨 (Siebel Institute)이라는 맥주 교육기관이 있다. 이 곳은 독일계 이민자이자 브루어인 존 지벨(John Ewald Siebel)이 1872년에 세운 곳으로써 지난 100여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시카고 인근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양조 인력을 양성해 온 곳이다. 나는 맥주에 대한 관심을 키우던 중에 지인들로부터 지벨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내가 대학원을 다니던 시카고에도 잠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지벨에서 맥주 수업을 듣기로 결심했다.

 

수업은 1주일 정도로 그리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감별해 내는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맥주에서 본연의 맛 이외에 나서는 안되는 향이나 맛인 ‘이취(off-flavor)’를 감별해 내는 훈련을 받기도 했다. 이취를 감별해 내는 훈련은 가장 기본적인 맥주 중에 하나인 버드와이저에 다양한 시약을 타서 본래 맥주에서 나서는 안되는 산화취나 DMS(Dimethyl Sulfide), 일광취 등을 골라 내는 훈련이었다. 평소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나갔을 맥주의 맛과 향 중에서도 의외로 이취가 많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수업이었다. 일주일 간의 수업 중에서 마지막 이틀 정도는 맥주와 음식의 페어링(food pairing) 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이 수업을 통해서 나는 맥주에 대한 지식을 한 단계 더 깊게 발전 시킬 수 있었다. 맥주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빼놓을 수 없는 수확이었다. 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시카고 인근 브루어리의 직원들을 비롯하여 자신만의 브루어리를 열려고 준비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맥주 평론가, 맥주와 관련된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등, 맥주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지벨에 모여서 수업을 들으며 맥주에 대한 생각을 서로 공유하며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고 밤이 오면 시카고 인근에 ‘뜬다는’ 펍들과 브루어리들을 돌아다니면서 맥주를 마시면서 교류했다.

 

 

 

시카고의 힘

 

지벨에서 수업을 듣는 동안에는 시카고 지역의 전통의 강자인 구스 아일랜드(Goose Island)같은 곳 보다는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강자를 찾았다. 대표적인 시카고의 신흥 강자를 꼽으라면 아마도 레볼루션 브루잉(Revolution Brewing)과 하프 에이커)Half Acre)를 꼽을 것 같다.

 

먼저 Half Acre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브루어리이다. 2014년에 내가 방문한 당시에는 주방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메뉴에는 주변 식당 중에서 배달이 되는 곳들이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상황이었다. (참고로 미국의 브루펍에서는 메뉴에 주변 피자집이나 중국집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자유롭게 시켜 먹도록 하는 것이 드문 광경은 아니다) 최근에 이 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내가 대학원을 다녔던 노스웨스턴 대학(Northwestern Univ)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던 한 동생과 만나서였는데, 몇 시간 동안 최근에 마케팅 분야가 돌아가는 이야기와 그 친구의 논문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한국 유학생 사회의 이야기 등에 대해서 정신 없이 떠들면서 마셨다. 한쪽 구석에서는 기타, 드럼, 바이올린으로 이루어진 밴드가 남부에서나 연주 할 법한 컨트리 음악을 연주했고, 그 음악소리가 싫지는 않았지만, 우리 대화가 음악보다는 흥미진진했기에 목소리 높여서 떠들었다. 이렇게 목청껏 떠들면서도 목을 축이기 위해서 한 모금 들이킨 Daisy Cutter라는 페일 에일의 맛은 훌륭했다. 일단 이 맥주는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향으로 한번 압도하는 맥주이다. 데이지 커터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플로럴한 홉향기가 코를 확 한번 때려주는 ‘홉작렬’을 한번 맞고 나니, 다음날 일어나서도 이 맥주의 향이 그리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날 시카고 다운타운의 레스토랑들에서 Half Acre의 맥주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Daisy Cutter도 파는 곳이 있어서 한잔 더 마셨던 기억이 있다. 참고로 나에게는 이틀동안 같은 종류의 술을 두 번 마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레볼루션 브루잉 (The revolution brewing)은 내가 유학할 2010년 당시만 해도 새롭게 생긴 브루어리 축에 들었다. ‘앞으로 맥주가 기대되는’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브루어리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국내에서 레볼루션의 인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내가 레볼루션 브루잉의 힘을 진정으로 느낀 곳은 다름 아닌 시카고를 떠나는 순간이었다.

 

오헤어 공항의 5번 터미널은 국제선 터미널이다. 오헤어 공항의 터미널들 중에서 가장 작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다른 터미널 대비 이용객도 적은 편이다. 보통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는 여기서 타는데, 내가 유학하던 시절만해도 오헤어 공항 5번 터미널은 별다른 부대시설이 없었다. 일찍 티켓팅을 하고 게이트 쪽으로 들어가면 정말 휑한 곳이었는데, 최근에는 식당들도 좀 생기고 했다.

 

지벨에서 수업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도 마찬가지로 5번 터미널을 이용했다. 티켓을 끊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후에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게이트 앞에 있는 바에 낯익은 레볼루션 브루잉의 주먹모양 탭핸들이 달려 있는게 아닌가? 그렇다. 이제는 오헤어 공항 안에서도 어렵지 않고 레볼루션의 안티 히어로 IPA(Anti-Hero IPA)를 사서 마실 수 있는 것이다. English Pint로 이 맥주를 한잔 하고 나니 온 몸이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몇 발자국 발을 옮겨서 비행기에 올라타고 나니 한국까지 오는 1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에 비행기 안에서 숙면을 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내가 최근에 마지막으로 시카고를 떠날 때의 기억이고, 그 기억은 바로 Revolution의  Anti Hero와 함께였다.

 

 

암스테르담으로 가기로 떠나다

 

다시 지벨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지벨에서 강의했던 레이 다니엘스(Ray Daniels)와 랜디 모셔(Randy Mosher)는 두 사람 모두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와 홈브루잉 방면에 관련한 몇 권 이상의 책을 집필한 유명인이다.

 

레이 다니엘스는 시서론(Cicerone)이라는 맥주에 있어서 소믈리에와 같은 제도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며, 랜디 모셔는 홈브루잉의 대부(god father) 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다. 이 두 사람이 들려주는 맥주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맥주 테이스팅과 스타일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여행, 그리고 음식 등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다. 아직까지는 맥주를 단지 술로만 즐기는 나와는 달리 레이와 랜디는 맥주를 그들 삶의 일부분으로서 즐기고 있었다. 맥주를 즐기면서 사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하는 여행, 지역, 생활, 문화, 음식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록 나 또한 맥주에 대해서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벨에서 돌아와서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중에 나에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 자사 트랜스퍼 (교환근무)에 선발이 된 것이다. 여러 지역과 도시 중에서 나는 그 중에서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도쿄와 북경에서 살아 보기도 했고, 싱가폴과 상하이에서 장기간 일을 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대학원을 위해서 2년간 살아도 봤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한번도 살아보지 못했다. 레이와 랜디의 맥주 여행 이야기를 듣고 나서인지 몰라도 갑자기 마음 속에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이왕이면 벨기에나 독일 등 맥주의 본고장과 가까운 나라를 선택한 것이다.

 

네델란드로 떠나기로 마음 먹고 산 책이 하나 있다. 맥주 평론가로 유명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쓴’Great beers of Belgium’ 이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벨기에 맥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네델란드에 있는 동안에 이웃나라 벨기에로 맥주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물론 나의 여행이 벨기에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네덜란드와 이웃나라 독일도 네덜란드에서 가기에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은 나의 맥주 여행의 베이스캠프로서 적당한 위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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