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맥주에 빠져들게 되었는가? – 3. 한국에도 크래프트 맥주 바람이 불다

 

경리단길에 싹트던 크래프트 맥주 펍들 – 맥파이와 크래프트 웍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에 한동안은 크래프트 맥주를 맛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때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맥주의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기 보다는 시원한 물 대신으로 마시는 듯한 이상이 강하게 남아 있을 때였다.

 

한국에서 혹시라도 크래프트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의외로 2군데 정도를 추천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한군데는 경리단길에 있는 맥파이 브루잉(Magpie Brewing)이고, 다른 한곳은 역시 경리단 초입에 위치한 크래프트웍스(Craft Works)라는 곳이었다.두 군데를 모두 가보고 맥주 맛을 보았는데, 나는 맥파이의 페일에일과 포터 쪽이 크래프트 웍스의 맥주들보다 더 마음이 갔다. 맥파이는 작은 공간에 의자를 몇개 두고 맥주를 팔고 있었는데 반해서 크래프트웍스는 좁은 느낌과 왁자찌걸한 느낌이 드는 전형적인 펍이었다. 맥파이의 소박한 느낌이 좀 더 나의 마음을 끌었던것 같다

 

 

홈브루잉에 빠져들다

 

직장이 남대문쪽이었기 때문에 이태원의 경리단길은 가끔 퇴근 길에 들려서 목을 축이기에 안성 마춤인 곳이었다. 맥파이의 맥주를 즐기게 되면서 그 곳을 자주 찾게 되었고, 바에 앉아서 한잔, 두잔 마시다가 그 곳의 탭 마스터 분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 분이 바로 살찐돼지의 맥주광장 (http://fatpig.tistory.com)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이었다. 맥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 누구보다도 더 많은 상업맥주 시음기를 쓰시는 그런 분이었다. 살찐돼지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다음카페에 맥주만들기 동호회(줄여서 흔히 맥만동 이라고 부른다)라는 곳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맥만동에 가입해서 조금씩 우리나라에도 홈브루잉으로 맥주를 만들어서 즐기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 있을 때에는 대학 클럽 중에서 맥주를 만드는 친구들이 가끔 있었다. 그리고 서점을 가보면 홈브루잉 잡지들이 몇권 꽂혀 있곤 했다. 당시만해도 아주 관심깊게 홈브루잉을 보고 있지는 않았는데, 한국에 와서 워낙 크래프트 맥주가 드물다보니 이제는 한번 만들어서 마셔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맥주를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고,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재료들도 판매하는 굿비어 공방 (goodbeer.co.kr)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그 곳에서 맥주를 정말 사랑하며, 직접 만들어 마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굿비어 공방에 드나들며 맥주를 만들면서부터 맥만동 게시판에서 글로 맥주 만드는 법을 대할 때만해도 와닿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홉, 몰트, 효모, 물이라는 맥주의 4가지 요소에 대해서도 점차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맥주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재료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한국에도 맥주 축제가?

 

그렇게 가끔 맥주를 만들어서 마시다가 점차 이태원 경리단과 해방촌의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이태원에서도 맥주 축제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맥주 축제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같은 엄청난 규모의 축제를 상상할지도 모르겠지만, 경리단과 해방촌 인근에서 벌어지던 맥주 축제는 그런 규모는 아니었다. 몇몇 펍들이 홈브루어들에게 한켠을 내주고 그 공간에서 홈브루어들이 자신들이 만든 술을 맛보게 해주는 형태였다. 인터넷에서 티켓을 구매해서 한번에 5잔에서 10잔 정도까지, 여러 펍들을 돌면서 다양한 맥주를 맛 볼 수 있는 그런 형태였다.

 

이런 맥주 축제에 가면 맥주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고, 또한 홈브루어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자신만의 레시피로 맥주를 만들어서 마시는 홈브루어들만큼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여기서 만난 홈브루어들은 대부분이 주한 외국인들이긴 했지만, 간혹 한국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맥주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영어를 조금 못해도, 혹은 우리 말을 잘 못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맥주의 맛과 향에 대한 표현을 나타내는 단어 몇개만 외우고 있으면 누구든지 홈브루어들과 밤새도록 맥주에 대해서 토론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행법상으로는 홈브루어들이 맥주를 만드는 것은 자가소비용도로만 가능했고, 재료비보다 낮은 금액일지라도 돈을 받으면 안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암암리에 이런 맥주 축제들이 진행되고는 있었지만, 누군가가 용산구청에 신고를 한 이후로는 이태원에서 홈브루어들만의 맥주축제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문화가 변화하는 속도를 법률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 불어오는 크래프트 맥주 태풍

 

바쁜 회사생활과 일과 속에서도 이렇게 맥주 만들기와 맥주 축제, 그리고 수많은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재미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날이 한국에 수입되는 맥주의 종류와 양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더욱 기대되는 나날들이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코노미스트지 기자의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기사가 떴고, 그 기사 이후로는 언론과 국회위원 등 예전에는 맥주 커뮤니티에서 존재감을 찾아볼 수 없었던 사람들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원래부터 맥만동 등에서 맥주를 만들며, 맥주축제를 오가면서 소소하게 만나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국면이 열리는 계기였다. 국회에서 홈브루어들의 의견을 듣겠다며 초대를 하는 일도 있었고, 심심치 않게 유명 홈브루어들은 언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대기업들이 맥주 사업에 진출한다는 기사가 심심치않게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실질적인 변화는 수입되는 맥주의 질과 양이 급속도로 좋아지기 시작한 것과 한국 내에서도 독자적인 맥주를 만들어서 파는 곳들이 늘어난 점이다. 이른바 크래프트 맥주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펍을 한군데 꼽으라고 한다면 이태원의 크래프트 맥주 펍 ‘사계 (Four Seasons)’ 를 꼽겠다. 이 곳은 비어포럼(beerforum.co.kr)이라는 맥주 커뮤니티의 운영진들이 함께 만든 곳인데, 기본적으로 그들은 홈브루어들이다. 자기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낼 수 있었기에 그 레시피를 대용량의 맥주로 만들어주겠다는 곳만 있다면 얼마든지 펍을 운영할 수 있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만든 곳이다. 이 곳의 맥주들은 노을, 미리내, 밤톨이, 칠푼이 등과 같은 순수 한글 이름이다. 사계는 크래프트 맥주 쪽에 있어서는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는 곳이며, 늦은 저녁시간에 사계의 바에 앉아 있으면 많은 ‘맥덕’들을 만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이렇게 소속감을 주는 동호집단도 나에게는 드문 것 같다.

 

왜 크래프트 맥주인가? 왜 지금인가?

 

최근의 크래프트 맥주 붐은 2000년대 초반의 하우스맥주 붐과는 조금 다르다. 2000년대 초반의 하우스맥주 업체들은 대부분 필스너/바이젠/둥켈로 대변되는 독일식 라거 맥주를 만들던 곳들이다. 독일식 소시지를 파는 곳이 많았고, 브루잉 장비를 매장 내에 갖고 있는 브루펍들이 대부분이어서 매장의 규모도 작게는 몇십평, 크게는 백평이 넘는 곳들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의 크래프트 맥주 붐은 기본적으로는 미국과 영국 스타일의 에일과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대륙의 작은 브루어리들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에일 맥주 종류를 그 주력으로 삼는다. 미국에서 과거 영국과 벨기에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을 나름대로 재해석하면서 상업적으로 소비자들의 맛을 사로잡으면서 어느 정도 미식가들의 욕심도 채워줄 수 있는 제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에게 근본적으로 무엇이 달라졌기에 갑자기 이런 크래프트 맥주 붐이 일어났는지 대답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한마디로 ‘다양성’ 이라고 말하겠다.우리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한가지 가치를 꼽는다면 다양성이야말고 바로 그 핵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획일화된 교육제도, 직업관, 인생관을 강요받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수십년간 맥주마저도 2-3가지 선택지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렇게 와인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흥미로웠고, 갈수록 흥분되게 만드는 요소이다.

 

나 또한 그 흥분의 한가운데에서 지난 몇년간 우리나라의 크래프트 맥주 붐을 타며 다양한 맥주를 만들고, 마시고, 즐기며 보냈다. 지난 3-4년을 돌아보면 한국의 맥주 신(Scene)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또한 가끔 미국을 가보면 어쩌면 지금까지 일어났던 변화들은 별것 아닌 것이 될만큼 큰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대된다. 미국 뿐 아니라 크래프트 맥주 붐은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호주, 일본 등을 강타하고 있다. 대형 맥주 회사들을 좋은 크래프트 맥주 기업들을 사서 자신들의 일부로 만드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일들인 것이다.

 

그러던 중에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재미있는 제안을 한가지 해 주셨다. 바로 유럽에 가서 6개월 정도 근무할 기회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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