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맥주에 빠져들게 되었는가? – 2. 아메리칸 크래프트 그리고 미국 중서부의 유학생활

 

 

MBA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보통 3에서 10개 학교까지는 지원을 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서 가긴 하지만, 보통 학교의 랭킹(순위)대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인의 특징이다. 그 다음으로 고려하는 것이 바로 지역이나 그 학교만의 고유한 분야인데, 지역과 고유한 분야는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뉴욕에 있는 학교들은 아무래도 월스트리트와 가까워서 금융분야가 발달되어 있고,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인근에 있는 학교들은 테크 분야나 벤처 캐피털 등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한국에 돌아오게 되면 컨설팅 분야에 진출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 있었기에 졸업생들이 컨설팅 분야로 많이 진출하는 시카고 인근의 학교에 가게 되었다. 내가 지원했던 학교들 중에서 랭킹이 괜찮다는 것도 이유중에 하나였다. 시카고 인근으로 학교를 다닐 생각을 하다보니 가장 먼저 걱정했던 것은 날씨였다. 미국 중서부에서 겨울을 나본 사람은 아마도 이해하겠지만, 눈이 오는 양이나 추위의 매서운 정도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시카고는 도시의 별명 자체가 Windy City 즉, 바람이 도시이다. 겨울이면 오죽 하겠는가? 하지만 내가 맥주에 대해서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도 훨씬 더 미국의 중서부 생활을 즐겼으리라.

 

미국에 MBA유학을 처음 떠날 때만 해도 맥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상황이었다. 차츰 집 앞에 있는 홀푸드에서 맥주를 하나하나씩 사다먹어보면서 맥주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의외로 시카고 인근에 좋은 브루어리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중서부는 미국 이민 역사에서 독일이나 체코계 이민자들이 많이 이주해서 자리를 잡은 곳이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초기부터 좋은 브루어리들이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있는 주가 미주리 주인데, 인디애나의 세인트루이스에 가면 있는 곳이 바로 미국 최대의 맥주회사인 앤호이저부시(Anhesuer-Busch)이다. 회사의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그들이 만드는 맥주 버드와이저는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버드와이저는 지금 핫(hot)한 맥주는 아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떠오르는 맥주들은 모두 크래프트 맥주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제맥주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손으로 만다는 것은 아니기에 수제맥주라는 표현이 꼭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최근에 일고 있는 크래프트 맥주 붐은 미국식의 맥주들이 주도하고 있고, 물론 그 움직임을 처음에 이끌어 낸 것은 시에라 네바다 페일에일 (Sierra Nevada Pale Ale)을 만드는 미국 서부의 시에라네바다 브루잉 (Sierra Nevada Brewing Co.), 그리고 샘 아담스 (Samuel Adams)맥주를 만드는 동부의 보스톤 브루잉 컴퍼니 (Boston Brewing Company)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초대형 마이크로 브루어리 이외에도 수 많은 지역 특유의 브루어리들이 크래프트 맥주의 붐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중서부에 자리잡은 브루어리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을 꼽으라면 시카고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구스 아일랜드 (Goose Island), 미시건에 자리잡고 있는 파운더스 (Founders Brewing Co)와 벨스 (Bell’s), 그리고 인디애나에 자리잡고 있는 3플로이즈 브루잉(The Three Floyds’ Brewing) 등이다.

 

 

Goose Island

홀푸드에서 그들의 맥주를 하나씩 빼먹는데 조금씩 지루함을 느끼던 나는 호기심에 2학년때 부터는 한국 유학생들을 모아서 함께 브루어리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간 곳은 가까운 시카고 시내에 있는 구스 아일랜드였다. 이곳은 전통이 있는 곳이지만, 구스 아일랜드 브랜드는 미국 전역에서 병이나 캔으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전국적 브랜드인데, 최근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회사인 AB Inbev에 인수되기도 했다.

 

구스 아일랜드는 Honkers Ale같은 IPA나 312라는 라인업의 밀맥주 (Wheat Ale)등의 대중적인 맥주들이 대표적이고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이외에도  Sophie, Matilda 등의 이른바 ‘여자이름’ 빈티지 에일, 그리고 오크통에서 숙성한 베럴 에이징 맥주 등 실험적인 맥주 들도 많이 사랑을 받는다. 내가 살고 있던 에반스톤에서는 한국 유학생들이 종종 전철을 타고 시카고 컵스의 구장인 리글리 필드에 가서 야구 경기를 보고 오곤 했는데, 바로 리글리 필드 바로 앞에 구스 아일랜드의 펍이 있어서 종종 맥주를 즐기곤 했다. 시카고 시내의 웬만한 레스토랑에서는 모두 구스 아일랜드의 맥주를 팔기 때문에 시카고에 출장을 가거나 하면 나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구스 아일랜드를 마시면서 유학 시절을 추억하곤 한다.

 

 

 

 

Founders

 

맥주에 조금씩 빠져들던 나는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과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이웃에 위치한 주(state)인 미시건으로 차를 운전해서 가보기도 했다. 금요일에 출발해서 1박 2일로 다녀오기에는 적당한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는 길목에는 몇몇 와이너리들도 있어서, 와인을 한모금씩 마시면서 가보는 맛도 있었다. 미시건의 대표적인 맥주도시인 Grand Rapids에는 파운더스(Founders Brewing Co.)가 있고, 그 곳에서 살짝 떨어진 Galesburg 에는 Bell’s 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파운더스는 가장 좋아하는 브루어리인데, 당시의 여행에서의 여운이 너무 길게 남았기 때문이다.

 

파운더스 브루어리는 그랜드 래피즈라는 미시간의 한 도시 안에 자리잡고 있다. 브루어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브루펍은 그 내부가 모두 목재로 구성되어 있는데다가 테이블이 넓찍넓찍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여유있게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내가 친구들과 함께 차를 몰고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 시간이 오후 서너시쯤 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햇볓을 받으면서 온 식구들과 맥주를 즐기는 미국 중서부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부러움을 느꼈다. 한국에서 숨가쁜 직장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유학을 가거나 주재원으로 다녀온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여유로움’을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산다. 나에게는 미국에 대해서 ‘여유로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느꼈던 장면을 기억해보라고 하면, 파운더스 브루어리에 찾아가서 자녀들을 데리고 커다란 테이블에서 토요일 오후 서너시에 맥주를 마시던 가족들의 모습을 본 장면을 주저않고 꼽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파운더스의 맥주들은 KBS나 Breakfast Stout, Porter 등을 검은색 계열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파운더스 브루어리는 안주로 나오는 음식들도 꽤 괜찮은 편이라서 파운더스 브루펍을 다시 가면 나는 꼭 푸짐한 햄버거와 검은색 계열의 맥주를 마시곤 한다.

 

 

 

 

 

 


Bells

 

벨스(Bells)의 대표 맥주는 뭐니뭐니해도 Two Hearted Ale이다. 미국의 Zymergy (양조학이라는 뜻인데, 발음이 어려워도 두려워 말라. 이 잡지를 만든 사람이 직접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많은 미국인들도 이 단어 뜻을 모른다고 한다) 잡지에서 1년에 한번씩 맥주 순위를 발표하면 꼭 상위에 랭크되는 맥주이다. 하지만 나는 유학하면서 벨스 브루어리에 투어를 갔을 당시에는 이 맥주가 그렇게 대단한 맥주인지 몰라서 많이 마시지는 않았고, 그냥 샘플러로 맛만 보았을 뿐이다. 아마도 지금 다시 간다면 좀 더 오래 머물면서 많이 마셔볼텐데.

벨스 브루어리 또한 이미 전국적으로 유통이 되는 브랜드를 갖춘 브루어리이다. Two Hearted Ale 뿐 아니라 이미 다양한 맥주들이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유학시절에 Oberon Ale을 종종 사서 마셨는데, 이 맥주는 여름에 가볍게 마시기 좋은 Wheat Ale 스타일로서 냉장고에 6팩을 넣어 놓으면 더운 여름날도 별로 힘들지 않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맥주였다.

벨스 브루어리에 딸려 있는 펍은 파운더스의 브루펍처럼 넓고 쾌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는 아니다. 약간은 돔 형식으로 된 이 브루어리의 내부는 하나로 감싸안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벨스 브루펍에서는 벨스 브루어리에서 실험적으로 만들기만 하고 병입을 해서 유통하지 않는 맥주들을 다양하게 팔기 때문에 한번쯤은 가볼만 하다. 메뉴판에 “Experimental 2014년 XXX” 와 같은 이름을 가진 맥주들이 그런 맥주들이다. 벨스 브루어리의 이러한 실험적 맥주들은 벨스 브루어리의 펍이 아니면 맛볼 수 없기 때문에 미시건을 지나치는 나 같은 맥덕에게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목적지 중에 하나이다.

 

 

 

Three Floyds Brewing and Alpha King

 

시카고에서 가장 가까운 곳 중에서 미국 내 손꼽히는 크래프트 브루어리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3 Floyds Brewing을 꼽겠다. 시카고 남쪽으로 한시간 정도만 차를 몰고 가면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출장 중에 시카고에서 한나절 정도 머물 수 있다면 기꺼이 가볼 만 하다. 많은 사람들은 Dark Lord 혹은 Zombie Dust를 이 곳의 대표 맥주로 꼽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Alpha King이라는 맥주를 가장 좋아한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어떤 맥주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바로 Alpha king을 마주한 어떤 피자집에서의 가족식사가 그런 자리였다. 유학 막바지에 미국에서 아들이 태어나게 되어서 한국에서 우리 어머님이 늦깎이 막내아들이 낳은 손주를 봐 주시겠다면서 내가 살던 에반스톤이라는 도시로 오셔서 머문 적이 있다. 아이를 낳고 한두달이 지나면서 서서히 외출을 시도하게 되었고, 어느 날인가 에반스톤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유니온 피자 (Union Pizza)라는 피자집에서 피자를 시켜놓고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아들을 안고 가서 우리 어머님, 나, 와이프와 함께 피자와 함께 맥주를 마신 날이 하루 있었다. 그 때 마신 맥주가 바로 3 Floyds의 알파킹(Alpha King) 맥주였다. 홉향이 매우 강한 아메리칸 페일 에일 계열의 이 맥주를 칠순의 우리 어머님도 향긋하다면서 좋아하셨다.  유학 공부도 마치고, 아이도 태어나고, 어머님도 함께 집에 머물면서 살고 있던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어서 그랬던지, 그날 그 피자집에서 함께 가족과 보내던 시간이 지금도 많이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나는 알파킹 맥주를 볼 때면, 그날의 피자집에서의 저녁식사가 두고두고 기억이 나는 것이다.

 

어떤 맥주를 마셨는가보다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마셨는가에 따라서 그 맥주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며…

 

시카고에 유학갈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시카고의 마트를 전전하면서 맥주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즈음엔 미국이 크래프트 맥주들에 대해서 아쉬움과 그리움을 가질 정도가 되었다. 이미 맥주에 흠뻑 빠져버린 나를 발견한 것이다. 아이도 이제 100일을 갓 지난 상태였고, 새롭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이었기에 너무 바쁜 일들이 주변에 많았다. 하지만, 맥주에 대한 관심이 열정으로 바뀌고 있는 내 내면은 주변 사람들의 눈에도 쉽게 보일 정도였다.

주: Bell’s 및 3 Floyds 방문 사진은 업데이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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