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바쁘시죠? 라는 질문과 시간에 대한 단상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서 하나가 바로 이거다

‘많이 바쁘시죠?’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한가합니다’

 

상대방이 당황한다.

하지만, 진짜로 한가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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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시간이 내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회사의 것이었다. 내가 월급이라는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회사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라는 투입물(input)을 팔았지만, 나는 내가 결과물(output)을 팔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매출, 더 높은 M/S, 더 훌륭한 브랜드, 더 좋은 전략, 더 나은 컨설팅

 

하지만 실제로 내가 회사에 월급을 대가로 판 것은 나의 시간이었다.

9시 출근, 6시 퇴근은 내가 판 기본 옵션이다.

돈을 더 주면 야근, 더 많이 주면 주에 100시간, 그리고 진급이나 보너스 같은 미래의 Cash flow를 약속해주기만 하면, 나는 주에 140 시간까지도 팔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과물을 판 것은 아니었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성공적인 중국 시장 진출을, 높은 시장 점유율을, 역사적인 M&A를 내가 장담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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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을 하고나니, 내 시간은 내 시간이다.

하루에 몇시간을 일하는지, 아니면 일주일에 몇 시간을 일하는지 정확하게 카운팅 하지는 않지만,

과거 컨설팅 회사를 다닐때 평균과 비교하면 약간 더 짧게 일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시간이 나에게 가장 희소한 자원이었기 때문에 항상 우선순위 (priority)를 정해놓고 일했다.

정해진 시간 동안에 최대한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중요한 일을 순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업무 우선순위를 정했고, 이것을 나의 상사들과 항상 공유했다.

내가 중요한 일들부터 처리하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틀리지 않았음을 그들에게 넌즈시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창업을 한지, 1년.

지금도 시간이 나에게 가장 희소한 자원이다.

하지만 나의 ‘업무우선순위’라는 것은 내 아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바뀌듯 바뀔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A가 제일 중요하다가도, 내일이 되면 B가 갑자기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창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기업에서 일어나는 다반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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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1년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초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별로 안중요하고,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 중에서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생겼다.

시시각각 방향이 변하고, 내용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오히려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사업을 하면서, 나는  A라는 업무가 가장 중요하고, 무조건 그것을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B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더러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하다보면,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서 누군가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경우에 그 이야기에 귀기울여 듣게 된다.

저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해 줄 것 같은 기대감과 촉이 올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누군가가 나에게 ‘많이 바쁘시죠?’ 라고 물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대화, 어떤 주제를 던지느냐에 따라서 나의 바쁨의 정도는 순식간에 달라진다.

그러다보니 나는 나의 시간에 항상 10-20% 정도의 여유 시간을 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 첫번째 이유는 작은 일이나 감정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큰 그림에서 시야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며,

두번째 이유는 위에서 말했던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으로 내가 ‘옳다’고 믿었던 수 많은 가정들이 갑자기 나의 방향성을 뒤집어 놓는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세번째 이유는 내가 커리어를 시작했던 직장에서 어떤 선배에게 무슨 질문인가를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나는 지금 너무 바빠서..’라면서 나의 1분짜리 질문에 답을 해줄 시간이 없다고 했을때, ‘나는 절대로 이다음에 후배들에게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럼에 생각해보면

나는 요즘 한가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