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의미

최근에 투자쪽과 컨설팅쪽에 있는 사람들과 쿠팡에 대해서 몇몇 사람들과 아주 깊이 있는 논의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지 못했던 몇가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기에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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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기업의 목을 겨누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스타트업들은 대부분이 대기업과는 별로 상관 없는 비즈니스를 했다. 네이버나 카카오는 검색, 블로그, 카페, 메신저 등 기존의 오너 기반의 대기업들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부분에서만 강점을 지녀왔다. 넥슨이나 엔씨, 네오위즈, 넷마블 등이 하던 게임 산업은 더더욱 대기업과 관련이 없는 분야였다. 물론 몇몇 커머스 업종은 기존 대기업이 하던 유통업의 영역을 슬금슬금 넘어오고 있었지만, 쿠팡과 같이 제대로 대기업들의 목을 겨누는 경우는 아마도 우리나라 기업의 역사상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대기업의 SI(Strategic Investor) 투자는 활발하지 않았다. 한국의 특성상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 위주의 기업환경에서 특히 B2C 스타트업을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만들어 내는 것은 오히려 미국보다 어렵지 않다는 설이 있다. 즉, top 20개의 도시를 리스트업을 해보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인구수의 측면이나 밀집도의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top 20개의 도시 이후이다. 미국은 top 30, 40, 50, 100개 도시까지 확장하거나, 아니면 해외로 확장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외국으로 지역 확장을 하거나 사업의 영역자체를 확장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다시 말해서 한국은 밀집되어 있다는 특성 때문에 몇몇 서비스는 오히려 처음 critical mass를 달성하기가 수월핟다는 것이었다.

물론 원론적인 M&A를 대기업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느 정도 크기를 달성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이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것 보다는 훨씬 쉽다. 하지만 어느 정도 크기를 달성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다면 대기업이 직접 만드는 것과 인수하는 것 차이에 경제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게다가 브랜드와 자금, 인력이라는 여러 요소를 이미 지니고 있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애써 스타트업을 인수하기보다는 자기들이 만드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쿠팡과 같이 대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경쟁하는 기업이 많이 나오면 대기업들은 아마도 지금까지와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M&A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잠재적 경쟁자의 제거라는 것이 있는데, 앞으로 대기업 중에서 스타트업이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와서 직접적인 경쟁자로 부각하리라고 생각한다면 SI로서의 M&A를 적극 고려할지도 모른다.

2. 1조 투자의 저주와 이마트의 반격 타이밍

소프트뱅크의 1조원 투자가 거의 말라간다는 것이 업계의 루머다. 그 현금이 어디에 얼마나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겠으나, 로켓배송을 위해서 너무 무리한 투자를 했고, 2등/3등 소셜커머스 업체와의 격차를 벌림과 동시에 이마트와 같은 전통적 유통공룡기업과 경쟁하려다보니 캐시가 많이 필요하기는 할 것이다. 많은 배송센터를 Sale & Lease Back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금이 부족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는 한다. 그런데 문제는 1조라는 투자를 받을 때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았기 때문에 후속투자에 있어서 이런 높은 밸류에이션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이보다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마트의 반격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는 평들이 많다. 상대방이 총알이 떨어질 때 즈음에 기관총과 대포를 쏴버렸다. 이러한 반격으로 쿠팡 입장에서는 꼬리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 아마도 현금 소진(cash burn)은 더 심해질 것이다. 문제는 2등, 3등 업체도 지금 열심히 투자를 받고, 성장을 해야 하는 입장인데, 2,3등도 함께 곤란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2, 3등이 투자를 받을 때 가장 강력한 벤치마크는 바로 1등이다. 1등이 이 정도 했는데, 우리는 그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요정도’는 할 수 있다 라는 식으로 투자 논리를 풀어야 할텐데, 1등이 총알이 말라서 고사할 상태이니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물론 내부의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관측은 어긋날 수도 있지만, 1등이 많이 곤란한 상황에서 2,3등의 투자가 수월하게 유치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합리적이다.

3. 쿠팡은 살아남을 것인가? 죽을 것인가?

쿠팡은 결국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면서 성장했다. 소프트뱅크의 1조 투자는 거의 한국 스타트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수준의 대규모 투자였다. 로켓배송은 우리 집사람을 포함해서 많은 한국의 소비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성공적인 서비스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지금 쿠팡의 내부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다.

불과 6개월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쿠팡이 이마트에게 원사이드 게임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두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높은 밸류에이션과 캐시의 부족이다. 한마디로 현금의 유입과 유출간에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면 쿠팡이 침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둘 다 해결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만 해결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높은 밸류에이션 때문에 더 이상 투자가 들어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인데, 결국 후속 투자를 할만한 곳은 소프트뱅크 밖에는 없다. 쿠팡이 침몰하면 소프트뱅크도 곤란한 상황이기 때문. 과연 소프트뱅크와 손정의 회장이 후속 투자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아마도 유지가 어려울 것이고, 자생력을 갖출 것을 투자자들이 요구할 수도 있다. 빠른 시일 내에 IPO를 통해서 자금 조달의 숨통을 틔울 필요도 있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현금의 유출을 줄이기 위해서 로켓배송 등을 중단할 것을 고려할 수도 있으나, 그 경우에는 차별화 포인트가 없어진다. 그러니까 로켓배송을 대신할 정도의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되 그 차별화 서비스는 로켓배송보다는 현금을 덜 써야 한다. 아니면 2,3등과의 격차를 확실하게 벌린 다음에 로켓배송이나 다른 차별화 포인트를 줄이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만으로 판단해보자면 쿠팡의 현금이 마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쿠팡이 살아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제대로 대기업의 목에 칼을 겨눈 스타트업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 미드웨스트

    좋은글 감사합니다.

  • 어떤 분이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해 주었는데, 의미가 있는 반론인듯 하여 답변합니다.

    1) 쿠팡의 로켓배송은 추가적인 지불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이 점이 간과된 것은 아닌가? 즉, cash가 소모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추가 지불의사가 있는 소비자에게 추가 비용을 청구하고 계속할 수 있는것 아닌가?
    2) 쿠팡 내부의 재정상황은 confidential 인데, 논의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가? 게다가 외부 루머로 이마트가 움직였다는 것에 의문이 든다. (이마트 내부에선 캐시가 많을지 추가 투자 약속이 이미 있는지 알 수 없다)
    3) 캐시가 없다면 이마트와 정면대결하기보다 차별성에 차액 지불용의 있는 충성고객만 안고 가면 되는 것인데 그러지 않는건 무슨의미일지? (아마도 1번과 같은 내용)

    답변을 드리자면

    1) 쿠팡의 로켓배송은 cash 가 많이 드는 서비스라서 지불용의가 큰 고객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뜻이고, 최근에 쿠팡이 하는 배송센터에 대한 sale & lease back 등을 볼 때 cash 상황이 좋지 않아 보인다는 점은 시장에서 모두 유추하고 있는 바입니다.
    2) 내부 재정상황을 실시간으로는 모르지만, 쿠팡이 실적 발표를 하고, 또 쿠팡에 투자를 한 사람들이 있어요. 투자를 받을 때 쿠팡의 내부 사정을 뻔히 본 투자은행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에게 이마트나 신세계는 사실 쿠팡이나 그 투자자보다 오랫동안 거래를 해 왔던 더 중요한 고객일 가능성이 있어요. 세세한 숫자까지 새지는 않겠지만, 쿠팡의 대략적인 상황 정도는 이마트에 정보가 흐르지 않느냐는 설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내부 사정이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 같아요.
    3) 급성장하는 산업에서 후속 투자는 반드시 필요한 상황. 배송센터 확충 등 추가적으로 투자가 필요한 부분들에서 아마 cash가 많이 필요할 것이다. (1번에 해당하는 내용은 이미 설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