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컨설팅, 2012-2015

3년이 넘게 해오던 컨설팅을 접으려고 한다.

영원히 접을지 아니면 얼마 있다가 다시 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지난 3년을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글로 남긴다.

나의 컨설팅 커리어는 엄청 단순하다. PEG(Private Equity Group)에서 PE Client들을 서브한게 1년 반 정도, 외국계 맥주 회사를 서브한게 1년 반정도, 그리고 암스테르담 오피스에서 6개월간 근무했다. 중간 중간에 한국의 대기업 프로젝트를 두세개 했지만, 대기업과 일한 시간은 일부이다. 그렇게 3년 반의 시간은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눈에 띄게 나타나는 우리나라 산업의 변화를 실감했다. 그리고 그 트랜드를 글로 남겨 놓으려고 한다.

첫번째는 PE의 전방위적 부상이다.

PE들은 주로 연기금펀드에서 나오는 돈으로 운영되는데, 자금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들 PE(사모펀드)들은 엄청난 효율성과 철저한 성과보상체계로 기업들의 가치를 순식간에 상승시킨다. 그 과정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전문경영인, 변호사, 회계사 그리고 컨설턴트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PE들이 살 수 있는 회사들이 속한 산업에 명확한 제약이 있었다. 예컨대 PE들은 전통적인 산업중에 자신들이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고, 매출구조가 단순해서 따박따박 운영만 잘 하면 캐시가 나오는 산업을 선호했다. 한 순간에 망가지지 않을 산업도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IT업계, 즉 tech industry는 대상이 아니었다. Tech 산업은 엔젤투자자와 VC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내가 컨설팅에 몸담고 있던 몇년 동안 이러한 트랜드가 바뀌었다. 이제 PE들이 비단 전통산업에 머무르지 않고, 소셜커머스나 배달 앱시장, 음악 사이트 등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O2O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합현상으로 인해서 PE들이 투자하는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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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로엔 인수…어피너티 1조2천억 차익: http://www.ekn.kr/news/article.html?no=194576

며칠전에 나온 카카오의 로엔 인수 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에 집중하지만, 사실 업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어피니티의 대박에 주목했다. IRR이 거의 150%에 육박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4-5년만에 1조 2천억 이상의 시세차익을 거두었다. 앵커PE는 KKR과 함께 티몬을 인수했다. MBK 같은 PE도 아직은 전통산업 위주로 투자하지만 자산규모로는 두산그룹에 육박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이들을 거의 모른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제 3세, 4세로 넘어가면서 할아버지나 증조 할아버지가 만들어놓은 그룹 내의 비핵심 계열사를 매각하는 것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다. 이런 비핵심 계열사들을 PE들에게 넘겨서 높은 value를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행복하다. 피인수되는 회사의 경영진도 해피할 때가 많다. 평소 그룹에 속해있을 때에는 완전 찬밥신세였는데, 사실 PE 소유권하에서는 높은 인센티브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PE들은 business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경영진을 함부로 교체하기보다는 그들의 전문성을 이용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문제는 종업원들이다. 그들은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외국계 펀드가 자신의 회사를 인수한다는 것에 대해서 일단 정서적으로 납득을 못한다. 고용도 불안하게 느낀다. 한국적인 정서에서 그룹에 입사했는데, 알지도 못하는 외국계로 넘어간다는 것에 가족들마저 불안해한다.

하지만 PE의 부상은 어쩔 수 없는 대세이다. 우리 경제가 이미 제로 성장을 바라보고 있고, 불안한 미래를 위해서 많은 돈을 연기금에 넣고 있다. 국민연금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이를 보여준다. 그 돈들은 어떻게든 수익창출을 해야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고, 대부분은 채권과 주식, 부동산등에 들어가지만, 일부가 “대체투자”라는 이름으로 PE로 흘러들어온다. 아주 일부분이지만, 그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파급력은 클 수 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자본의 부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두번째는 한국 제조업의 끝장과 소비재와 유통의 부상이다.

컨설팅에 있다보면 프로젝트가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보인다. 8-10주에 몇십억을 써야 하는 전략 컨설팅 프로젝트에 돈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그 회사가 잘 되고 있거나, 혹은 아주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 내가 컨설팅에 몸담고 있던 지난 4-5년간 한국 제조업의 컨설팅 프로젝트는 현격하게 감소했고, 있더라도 대부분이 비용절감 프로젝트였다. 간혹 해외진출이 있긴 했지만, 거의 마지막 몸부림 수준이었다. 한국의 제조업이라 함은 조선, 철강, 건설, 자동차, 전자 등등이다. 한 시대가 끝나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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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에 소비재 회사들과 유통사로부터의 프로젝트는 간간히 들어온다. 거의 2가지 theme으로 요약되는데, 하나는 중국 진출이고, 다른 하나는 M&A이다. 즉, 경제성장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소비재/유통사들이 성장할 수 있는 macro는 결국 더 큰 시장으로 가거나, 자기들끼리 합쳐서 몸을 불리는 수 밖에 없다.

의외로 이런 파급력이 엄청나다. 아모레퍼시픽으로 대표되는 중국진출의 꿈은 모든 소비재, 유통사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중국에서 시장점유율 5%만 달성해도 valuation의 multiple이 달라진다. (아모레를 클라이언트로 일했다는 뜻은 아님, 앞서 밝혔듯이 나는 국내 대기업 프로젝트를 거의 하지 않았다)

세번째는 중국이 공장에서 시장, 그리고 이제는 투자자로 바뀐 점이다.

분명 내가 MBA를 가기 전인 201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전세계의 “공장”이었다.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이유는 원가 절감이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중국을 “시장”으로 보기 시작했다. 소비재와 전자제품 등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업계 전체에 팽배해졌다. 하지만 누구하나 중국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공불략의 중국시장을 공략하는 해법을 갖고 있거나, 혹은 중국 진출에 실패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만 하더라도 시장에서 높은 몸값을 받았다.

이것이 불과 1-2년 전 일이다.

그런데 요즘 시장에서 각광받는 인재는 중국을 공략할 줄 아는 인재가 아니다. ‘중국 투자자들과 한국의 기업을 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중국의 자본을 끌어다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에게 IMF 시절 검은머리 외국인이라고 불리우며 미국에서 자란 재미교포 한국인들을 연상케 했다. 이들은 겉으로는 한국인이라서 한국사람들과 막힘없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으나, 교육과 문화는 미국의 것을 받고 자라서 미국인들에게 한국 시장을 소개할 수 있다. 그 arbitrage 를 기반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 그런 사람들이 시장에 많이 등장할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일부 연루되었던 프로젝트 주제 중에서는 중국 투자자에게 한국의 기업 매물을 소개하거나, 한국의 기업에게 중국 투자자를 소개하는 프로젝트들이 더러 있었다. 이제 중국은 “공장”도, “시장”도 아닌 우리에게는 “사장”이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중국기업들이 대한민국 주요 기업들을 인수한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날들이 곧 올 것이다. 우리가 좋든 싫든.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최한일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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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우

    흠,,,,,,,,, 잘 읽었습니다

    • 자전거 잘 타고 있지?

      • 이상우

        ㅎㅎㅎ 형 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자전거 보고 생각나서 들어와 본 건데 ㅎㅎ 여긴 이제서야 날씨가 풀려서 좀 타보려구요 기어에 WD-40 좀 뿌려줘야겠어요 흐흐 형도 잘 지내죠? 맥주도 마니 마시고? 형이랑 놀던때가 그립네요

  • 이문희

    아 회사 그만뒀어? 싱가폴 출장 올일도 없겠네. 최근에 우연히 동네에서 노르웨이계 크래프트 맥주집을 발견했는데 네 생각 나더라. 새로 하는 일도 굿럭!

  • Sean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제조업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컨설팅이 정치적인 용도로만 활용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객관화된 컨설턴트의 권위를 빌린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