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돌아오니 보이는 것들

짧은 암스테르담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도쿄, 시카고, 베이징과 대학교 때 했던 6개월 간의 배낭여행까지 포함하면 이번 나의 암스테르담 생활은 그래도 짧게는 몇 달, 그리고 길게는 몇 년을 떠나 있다가 한국에 돌아온 다섯번째 경험이다. 이렇게 오랜 동안 한국을 떠나 있다가 돌아오면 우리나라의 변화된 모습이나, 혹은 그 이전에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된다.

1. 서울의 교통

금요일 오후에 인천 공항에서 강변역 집까지 오는 길은 정말 길었다. 거리상으로는 약 70km정도로 차로 달리면 한시간 정도에 충분히 올 수 있는 시간이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두배 정도인 2시간이 걸렸다. 특히 유럽의 도시들은 그 크기가 작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멀리 떨어진 공항에서 이동할 일입 별로 없는데다가 내가 살던 암스테르담은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많아서 이런 교통체증은 오랜만이었다. 물론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 근처도 밀릴 때는 엄청 밀리지만 이렇게 두시간 내내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느낌은 분명 익숙한 광경이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서울이라는 한 패에 모든 것을 건 도박을 하고 있다. 교육, 문화, 경제, 행정의 모든 기능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과밀화 되어 버렸다. 서울이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실패할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서울이라는 괴물같은 도시를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저마다의 이유로 떠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MERS 사태와 같이 심각한 전염병이 퍼지면 더 큰일이다. 전 인구의 1/4, 서울 인근의 위성도시까지 포함하면 1/3 가량이 한 지역에 모여살고 있는 현실이 때로는 심각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한 곳에 몰빵을 하면 결국 리스크 분산이 안 된다. 행정/의료/치안 등이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면서 발생하는 돈으로는 계산조차 할 수 없는 비효율은 또 어떤가? 통근버스에 몸을 싣고 하루에 한시간, 두시간씩 허비하는 직장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전세대란, 월세대란, 임대차 문제 등등, 서울이라는 괴물이 만들어내는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에서 작은 가게를 자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게 렌트비를 걱정하면서 사업을 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미국이나 유럽처럼 혁신적이고 재미있는 리테일이 발달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월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 중심에 서울의 과밀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을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유명 도시들조차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고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대부분 인구가 과밀화 되어 있는 도시들은 아시아에 몰려 있거나,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수탈 창구로 사용되던 도시들. 유럽은 정책적으로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역사/문화적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인지는 몰라도 도시들이 분산되어 있다. 빌딩이 높지 않아서 늘 하늘을 볼 수 있고, 차가 밀리는 구간이 길지 않고, 도시 끝에서 끝까지 약속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그런 곳들이 많았던 것 같다.

도시계획이나 인구분산 같은 큰 그림이야말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 과연 우리 정부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지…

2. 요리

시차 적응 중이라서 새벽 2시부터 일어나서 TV를 좀 봤다. 확실히 요즘 한국은 요리가 대세인 것 같다. 엄청나게 많은 요리 프로그램들이 케이블 TV채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은 과거에 무한도전이 한창 인기였을 때 거의 모든 케이블 TV 에서 재방송이 나오고 있던 것을 연상케 할 만큼, 다양한 채널에서 재방송이 송출되고 있었다. 꼭 냉장고를 부탁해 뿐 아니라, 다양한 버전의 요리 프로그램들이 채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침 인터넷을 들어가보니 강레오 쉐프와 최현석 쉐프라는 두 사람간의 디스 및 오해 풀기 내용이 인기 검색어에 오르고 있다. 사실관계야 내가 알 수 없지만, 흔히 말하는 스타 쉐프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의 요리 붐은 내가 볼 때에서는 3 가지 측면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언론과 TV프로그램들이 만들어 낸 소재 찾기의 한 측면
두 번째는 스타쉐프 및 그들의 레스토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증폭 측면
마지막은 일반 대중들이 먹거리에 대해서 관심이 생활의 중심을 차지한 측면이다.

첫번째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서로 똑같은 컨텐트를 찍어내고 있으니, 한 두명의 승자로 압축이 되고, 나머지는 자연도태된다. 단기적인 트랜드.

두번째는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외식비율이 증가하고, 맛집 트랜드가 민감해지고, 덩달아서 맛집브로거나 일부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Zagat, Michelin 같은 정보에 대한 니즈가 늘어나는 등의 효과를 수반했다. Wolfgang같은 뉴욕 최고의 스테이크 하우스가 급기야 한국에 지점을 냈다고 한다. 처음에는 엄청 비싼 가격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할 수록 미국이나 유럽에서 고급 스테이크를 먹어도 10만원 이상 하기가 어려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볼프강이 들어오기 전부터 10만원 정도의 스테이크는 강남에서 발에 차일 정도였다. 도쿄를 보면 유럽의 웬만한 도시보다 더 좋은 레스토랑이 많은데, 우리나라도 사람들의 관심에 힘입어 결국에는 고가의 좋은 레스토랑들이 더 많이 생기고 사람들의 미식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것 같다. 좀 더 중-장기적인 트랜드.

마지막은 중요한 변화다. 사람들이 요리프로그램을 집에서 시청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게다가 요리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식재료들 중에서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지만, 의외로 과거에 보지 못했던 것들도 많다. 나는 최근까지 한국의 프리미엄 수퍼마켓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좀 있었는데, 이런 추세라면 홀푸드나 Dean & Deluca 같은 프리미엄 수퍼마켓들도 얼마든지 많이 생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외국에서는 반조리 혹은 간단 조리만으로 집에서 요리를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서비스 혹은 기업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곧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 같다. (이미 그런 회사들이 있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다) 이 트렌드는 아주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사람들의 생활을 더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3. 가뭄과 역병

분명 장마라고 했는데, 서울의 날씨는 쨍하고 더워서 놀랐다. 내가 탄 비행기는 분명 암스테르담 출발 인천 도착 KLM 직항 편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2014년 이래 MERS발병 기록이 없는 곳인데, 한국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많다.

역사책으로만 보던 가뭄과 역병이 피부로 느껴졌다. 암스테르담의 친구들도 뉴스를 통해서 한국의 소식을 접해 듣고 모두 알고는 가끔 내 가족의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북한도 가뭄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많이 했다. 프랑스 혁명이나 중국의 왕조 교체 등 역사적으로 국가의 흥망에는 가뭄이 큰 역할을 했다는 증거들을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대한민국정부는 민주적인 정권교체가 되는 곳이니 대통령이 욕먹고 지지율 떨어지고 선거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얻는 정도라고 쳐도, 북한은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러다가 정말 혁명이나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는 귀국길이었다. 물론 그들은 아직까지는 가뭄과 역병중에서 역병은 크게 겪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또 사태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불안하다.

4. 상담원의 친절함

이 부분은 처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외국을 다녀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으로 우리나라 상담원들은 친절하다. 공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물론 정지해 놓았던 핸드폰 계정을 다시 살리는 일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상담원과 통화하는 일 자체가 오랜 시간의 기다림을 수반하는 일인데, 우리나라는 어쩌면 이렇게 빨리 연결이 되고, 게다가 또 친절한지 모르겠다. 그만큼 많은 감정노동자들이 고용되고 낮은 가격에 착취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그 내막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고객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또 기분이 좋다.

내 나라의 말로 나에게 친절하게 상담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기분 좋은 것은 외국에 다녀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불친절하고 느려터진 상담원들에게 시달리다가 한국에 오면, 나는 한국에서는 다시는 어떤 상담원에게도 컴플레인을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5 thoughts on “유럽에서 돌아오니 보이는 것들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읽던 중, 딘 앤 델루카는 이미 진출해서 신세계 지하 음식 매장들에 입점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2. 그 친절한 상담원들이 그렇게 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일을 하고 있다고 해요… L사에서는 상담원 자살도 있었다고 하는데, 손님이 왕이니 진상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ㅠ 근데우리나라 물가는 정말이지 너무 비싼것 같습니다. 강남 음식들 가성비 너무 낮아요… 뉴욕에서는 50-60불 정도로 이름난 스테이크집에 갔었는데, 강남에선 파스타도 2.5-3만원씩 하는곳이 수두룩해요.. 우리나라의 프리미엄은 약간 비싸기만한 측면이 있어보입니다ㅠ

  3. 다시 한국 가셨냐봅니다 🙂 파리에 살고 있으면서 석사 알아보다가 들어왔는데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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