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시 이야기

암스테르담에 살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참 도시가 작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그나마 몇 달 혹은 몇년 씩 살아본 도시는 서울, 도쿄, 베이징, 시카고이다. 이 도시들은 정말 괴물처럼 어마어마하게 커서 도시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을 가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인데, 암스테르담은 그 크기가 아담하다. 서울로 치면 송파구, 강남구, 서초구 정도를 합쳐 놓은 듯한 크기인데, 어쩌면 강남구+서초구 정도 밖에 안될지도 모른다.

AMS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기준으로 방사형으로 뻗어져 있는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암스테르담은 중앙역 인근의 도심을 제외하고는 번화가가 잘 없어서 서울처럼 여러개의 부도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컨대 서울은 광화문 일대를 제외하고라도 강남, 신촌, 삼성동, 종로 등등 여러개의 번화가가 존재하지만, 암스테르담은 그렇게까지 거대한 여러 번화가는 존재하지 않고, 작고 아담한 상점가들이 군데군데 분포하고 있는 구조이다.

또 한가지 특징은 우리가 세계지리 시간에 모두 배운 바와 같이, 네덜란드라는 나라 자체가 해수면을 메꾸면서 세워진 나라라서 암스테르담에는 산, 구릉이 없고, 모두 평지이다. 도시가 작고 평지로 이뤄진 곳이다보니 자전거로 돌아다니기가 정말 좋은 것이고, 그런 이유로 자전거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는 점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일부 한국 사람들 중에서 왜 한국은 네덜란드처럼 자전거 도로와 신호등 체계를 따로 하면 안되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지형적인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는 말로 들린다. 나도 자전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지형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자전거 도로만 확충해 놓는다고해서 사람들이 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지는 않을 것이다.

도시가 작고, 자전거로 다니기 편하다보니 생활이 간편하고 단촐한 느낌이 든다. 출근하는데 자전거로 15분, 장보러 가는데 자전거로 5분, 주말에 브런치 먹으러 가는 곳은 자전거로 10분 거리이다. 우리집에서 중앙역까지도 15분 정도만 자전거를 타면 갈 수 있으니, 사실 도시 내에서 왠만한 곳은 다 자전거로 20분 내의 거리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보니 퇴근 후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여유가 생긴다. 나는 컨설팅에 있어서 좀 예외지만, 네덜란드 근로자들은 4시 반에서 6시 사이에 대부분 퇴근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집에 가도 5-6시 정도, 그리고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어도 6시면 식사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이 정도가 되어야 저녁이 있는 삶을 논할 환경이 되는 것 같다.

우리 서울은 퇴근하는 것 자체도 늦지만, 누군가를 만나러 움직이기도 힘들고, 또 그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여정이 길다. 그런 상황에서는 마음에 여유가 많이 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자체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를 꼽자면 아마도 물가, 교통, 치안, 출산율 등등이 있을텐데, 서울은 이런 모든 것들에서 아마 나쁜 지표를 보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때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는 먹고 살 것들이 부족해서 모두 서울에 모여서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서울의 끝자락을 한손으로 붙잡고 아웅다웅 살다가 잠시 외유 나온 사람으로서 할 말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일단 회사와 학교들이 모두 서울에 모여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회사와 학교들이 서울에 모여 있는 이상, 나도 그 밖을 벗어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나라도 좀 도시들의 기능과 집중도를 분산시키면, ‘작은 도시’ 건설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좀 해봤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도시 기능의 분산, 교통수단의 체계적인 수립 등이 꼭 필요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헤이그 같은 주변도시로 상업, 무역, 행정 등의 기능이 잘 분산되어 있고, 그 도시간에 거리가 불과 1시간 정도 밖에 안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대학도 암스테르담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좋은 대학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소개되지만, 도시의 기능과 기업과 학교의 이전 없이는 계속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현상이 불가피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교통이 혼잡해지고 물가가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아들이 커 가면서 우리나라에도 작은도시들이 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그러면 나의 생활을 조금 희생하고서라도 작은 도시에 살 것 같은데 말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